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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삶을 바꾼 것들 ⑩] 다방

커피향 변함없건만 DJ는 떠나고…

2005.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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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은 예나 지금이나 만인의 사랑방이다. 커피나 차 한 잔을 마시며 세상을 논하고 인생을 이야기하는 약속과 만남의 대명사 격인 공간이다. 일제시대에 처음 생긴 다방은 이후 카페·음악다방·커피숍·프랜차이즈점으로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등장했다. 다방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단순히 차나 커피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문화를 소비하는 장소였다.


다방’이 서울의 명물로 자리 잡은 것은 1930년대부터다. 골목마다 다방 없는 곳이 없었고, 이름도 처음에는 다방이었다가 나중에는 ‘다실(茶室)’ ‘찻집’ 등으로 불렸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카페’가 등장한 것은 다방이 생겨난 시기와 비슷한 무렵이었다. 카페가 서울 충무로 2가 큰길에 일본의 ‘아카다마’ 분점으로 처음 문을 열었고, 같은 동네에 ‘명과’라는 다방이 일본 메이지(明治)제과의 분점으로 첫 출발선을 끊었다.

초기에는 제과점에서 홍차나 커피도 함께 팔았는데, 차츰 커피 맛을 찾아 모여드는 손님 때문에 요즘의 다방 모습으로 변모해 갔다. 이 다방이 당시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자 그 맞은편에 ‘금강산’이라는 다방이 생겨나기도 했다.

서구사회에서 카페라는 존재는 근대문명을 형성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다방도 피란 시절과 서울 수복 후인 1950∼1960년대에 일종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다실’로 시작, 한때 ‘음악다방’ 풍미

‘제대로 된 클럽 같은 것을 갖지 못했던 문인들은 대개 손쉬운 단골 다방을 정해 놓고 한담도 나누고 연락처로 활용했다. 해방 후 많은 문인이 자주 드나들던 다방으로 대표적인 것은 당시 소공동에 자리했던 ‘플라워’라는 다방이었다. 문인들은 이런 다방에서 출판기념회도 열고 크고 작은 모임도 자주 가졌다.

또 6·25전쟁으로 인한 부산 피란 시절 ‘밀다원’ ‘금강’ 등 다방에는 약속이나 특별한 용무가 없으면서도 언제나 문인들이 모여 북적댔다. 휴전협정으로 포성이 그친 서울 거리는 거의 폐허나 진배없었으나 그 와중에도 다방은 건재했다. 이 중 남대문로 2가 문예빌딩에 위치했던 ‘문예싸롱(살롱)’은 문예잡지인 <문예>를 함께 발간하기도 했다.

1960년대 들어서면서 명동에 ‘갈채다방’이 들어선다. ‘갈채다방’은 우리나라 다방사에 한 획을 그은 시대의 명물 중 하나였다. 갈채다방이 다른 다방과 판이하게 달랐던 풍경은, 카운터 탁자에 언제나 증정본 잡지와 원고청탁서 그리고 출판기념회 초청장 등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는 점이다. 경제적으로 궁색했던 당시 예술가들에게 언제나 지적 풍족감을 만끽하게 해 주었던 것이다.

문학한다는 사람치고 ‘갈채다방’에 드나들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이곳은 젊은 낭만이 꽃피던 음악감상실 ‘돌체’, 센티멘털리즘 작가 이봉구 씨의 푸념이 구성지던 대폿집 ‘은성’과 더불어 서울 명동의 4대 명소 가운데 하나였다. 이러한 다방문화는 명동이 통기타와 청바지문화에 주도권을 넘겨주기 전까지 거의 15년 동안 계속됐다.

1970년대에는 음악다방이 등장했다. 차 한 잔 값이 100원 정도 하던 시절, 음악다방은 마땅히 갈 곳 없고 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았던 사회 초년생들이나 대학생, 젊은 직장인들에게 거의 유일하고 가장 인기 있는 휴식처 역할을 했다. 음악다방의 인기는 한때 하늘로 치솟았다. 이 무렵의 다방은 또 세계 챔피언을 많이 배출한 한국 프로복싱의 타이틀매치 경기를 TV로 시청하던 ‘열광의 공간’이기도 했다.

권투 중계 때면 ‘문전성시’

음악다방의 주인공은 단연 DJ였다. 유리창 너머 뮤직박스 속에서 신청곡을 받아 LP판 레코드를 찾아 전축에 얹어 음악을 들려주던 DJ들. 그들의 인기를 좌우하는 것은 음악을 들려주는 사이사이 집어넣는 코멘트와 사연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모습이 얼마나 멋지고 경외스러웠던지, 그 시절 젊은이들은 누구나 한 번쯤 DJ를 꿈꾸기도 했다.

그 시절, 길거리에 ‘약속다방’이라는 이름은 왜 그리도 흔했던지. 그 약속다방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약속과 기다림, 헤어짐이 있었을까? 그때가 그립지만 요즘 추억의 음악다방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중반까지 한국의 다방문화는 ‘커피숍’이라고 불리는, 다소 어정쩡한 업소가 주도했다. ‘문화’라고까지 할 것도 없이 커피숍은 도시의 비즈니스타운과 주변부의 상가·주택가에까지 둥지를 틀었다. 커피숍에서는 멀건 원두커피와 함께 이른바 ‘프림’과 설탕을 듬뿍 넣는 ‘다방커피’가 공존했고, 20대와 50대가 같이 드나들어 이전까지의 다방 풍경과는 색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지방 도시와 농촌의 소읍에는 또 ‘티켓다방’이라는 이름의 별난 영업 방식이 등장했다. 티켓다방은 시간당 티켓 값으로 얼마간의 대가를 주고 ‘아가씨와 노는’ 노골적이고 저급한 성매매 문화의 기층을 형성했다.

‘스타벅스’, 새로운 문화 코드

2000년대 들어서부터는 주로 미국의 커피숍 프랜차이즈가 새로운 경향을 대표하고 나섰다. 1999년 ‘스타벅스’ 이대앞 매장이 그 신호탄이었다. 이와 함께 ‘자바시티’ ‘커피 빈’ 등은 한국 20∼30대 젊은이들의 새로운 놀이터가 됐다. 집도, 회사도 아니면서 여유롭고 편안하게 자기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제3의 장소’라는 개념으로 치장한 공간이다.

외국어로 토론하는 외국인과 한국 대학생들, 조용히 앉아 책을 읽는 아가씨들, 영어로 엄마에게 포크를 달라고 하는 동양 아이…. 이곳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장소가 아니라 문화를 소비하는 장소다. 1,000원짜리를 사더라도 1,000원 이상의 ‘무언가’를 원하는 세대. 그 무언가는 단순히 상품이 아니며, 그것은 이 시대의 이미지 혹은 문화적 코드가 됐다.

(자료 : 코리아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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