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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껍질? 돼지 껍데기?

2008.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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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불 가에 마주 앉아 밤새 속삭이네. 저 멀리 달그림자 시원한 파도소리. 여름밤은 깊어만 가고 잠은 오지 않네….’

필자가 대학 시절에 많이 부르던 노래다. 가수 윤형주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들려 준 이 노래를 통기타 반주에 맞춰 많이 불렀다. 특히 여름 바닷가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노래와 분위기에 젖었다. 청평이나 춘천 위도에 놀러 가서도 마지막 밤에는 모닥불을 가운데 놓고 모두가 이 노래로 끝을 맺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 노랫말에 잘못된 단어가 있다고 자주 이야기된다. 바로 ‘조개껍질’이다. ‘조개껍데기’가 맞는 표현이란다. 실제로 ‘조개껍질’은 틀리고 ‘조개껍데기’가 맞다는 문제가 텔레비전 퀴즈 프로와 학교 시험 문제에 자주 출제됐다.

‘껍질’과 ‘껍데기’의 차이를 사전으로 검색하면 ‘껍질’은 ‘딱딱하지 않은 물체의 겉을 싸고 있는 질긴 물질의 켜’로, ‘껍데기’는 ‘달걀이나 조개 따위의 겉을 싸고 있는 단단한 물질’로 설명하고 있다.

조개껍질도 맞고 조개껍데기도 맞다

이렇게 볼 때 달걀, 굴, 호두의 겉부분은 껍데기라고 하고 사과, 귤, 바나나의 겉부분은 껍질이라고 해야 자연스럽다. 이런 논리로 접근하면 노랫말의 ‘조개껍질’은 틀리고 ‘조개껍데기’가 맞는 표현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조개껍질’과 ‘조개껍데기’가 모두 나온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조개껍질’을 ‘조개껍데기’로 설명하며 ‘모처럼 얻어 내는 조개껍질이야말로 잔칫상을 차리기에는 오금이 저리게 즐거운 그릇이었다’는 최명희의 소설 ‘혼불’의 한 구절을 예로 들고 있다.

또 ‘조개껍데기’은 ‘조갯살을 겉에서 싸고 있는 단단한 물질’로 설명하며 ‘이리저리 깎이고 닳아서 형체가 몹시 이지러진 수많은 조개껍데기들이 바닥에 하얗게 박혀 있었다’는 윤흥길의 소설 ‘묵시의 바다’를 예로 들고 있다.


사전은 이미 ‘조개껍질’을 표제어로 올려 놓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뿐만 아니라, 한글학회가 발행한 ‘우리말 큰사전’도 ‘조개껍질’을 ‘조가비’와 같은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무턱대고 ‘조개’는 겉을 싸고 있는 물질이 단단하기 때문에 ‘조개껍데기’만 바른 표현이라고 하는 것은 궁색하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경우는 명백한 오류다.

- 그 역시 김밥과 풀빵, 뻥튀기, 과일 등을 팔며 고학으로 경북 포항 동지상고 야간부를 졸업했다. 그는 이 시기를 “귤 껍데기처럼 우리 대가족에게 들러붙은 가난은 내가 스무 살이 넘어서도 떨어질 줄 몰랐다”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 껍질을 깨는 아픔 없이는 국가이익도 없다.
- 새 생명의 역사를 위해 껍질을 깨는 변화와 개혁의 아픔을 통과해야만 한다.

여기에서 ‘귤 껍데기’는 ‘귤껍질’로 써야 한다. 뒤의 표현도 일반적으로 많이 쓰고 있는데 잘못됐다. ‘껍데기’는 깰 수 있지만 ‘껍질’은 깨는 게 이상하다. 벗는다고 해야 바른 표현이다.

돼지껍질이 문법적으론 맞다지만…

그러면 ‘돼지 껍질’과 ‘돼지 껍데기’를 혼용해서 쓰고 있는데, 이 현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여기서도 ‘껍질’이라는 사전적 의미에만 집착하면 ‘돼지껍질’만이 바른 표현이다. 그리고 우리 속담에 ‘껍질 상치 않게 호랑이를 잡을까’(호랑이 가죽이 상하지 않고서 호랑이를 잡을 수 없다는 뜻으로, 힘들여 애써야 일을 이룰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껍질 없는 털이 있을까’(바탕이 있어야 그 위에 무엇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동물의 표피는 ‘껍질’로 쓰니 당연히 ‘돼지껍질’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또한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할 문제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돼지 껍질’과 함께 ‘돼지 껍데기’도 많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굴 껍질/굴 껍데기, 나무 껍질/나무 껍데기, 소라 껍질/소라 껍데기, 호두 껍질/호두 껍데기도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고 있다.

‘껍질’과 ‘껍데기’ 표현이 동시에 가능한 경우는 생물이다. 이들은 외피가 모두 단단하고 두껍다. 이들의 경우 본체와 붙어 있을 때는 ‘-껍질’이라고 하다가 본체에서 분리된 다음에는 ‘-껍데기’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돼지 껍데기’도 이러한 의식의 작용으로 사용하게 된 단어다.

반면 감자 껍질, 밤 껍질, 사과 껍질, 양파 껍질, 참외 껍질과 이불 껍데기, 베개 껍데기, 과자 껍데기는 ‘-껍질’과 ‘-껍데기’의 결합이 분명하다.

기계적으로 문법에 맞추면 위험

여기에서도 규칙성이 발견된다. 우선 ‘-껍질’과 강한 결합력을 나타내는 단어는 내용물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내용물은 대부분 생물로 본래의 것에 붙어 있어서 떼어 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껍데기’는 내용과 쉽게 분리될 수 있는 단어에 붙어 있다. 그리고 ‘-껍데기’가 붙은 단어 모두 무생물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껍질’과 ‘-껍데기’를 기계적으로 대입하는 것은 위험한 사고다. 사전에 이미 이러한 현상까지 반영해서 표제어로 올려 놓았는데도 학교에서 경직된 문법적 사고를 보이는 사례가 있다. 언중의 현실을 반영한 교육이 있어야 한다. 이런 논란거리는 오히려 아이들과 열어놓고 토의하면 좋은 교육 재료가 될 수 있다. 노력해 볼 일이다.

┃국정넷포터 윤재열(http://tyoonkr.kll.co.kr)

윤재열님은 현재 수원 장안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수필가로 활동합니다. 일상적인 삶에서 느끼는 단상들을 글쓰기 소재로 많이 활용합니다. 특히 우리의 언어생활을 성찰하고, 바른 언어생활을 추구하는 데 앞장섭니다. 저서는 시해설서 ‘즐거운 시여행’(공저), 수필집 ‘나의 글밭엔 어린 천사가 숨쉰다’, ‘삶의 향기를 엮는 에세이’, ‘행복한 바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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