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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문 비상구가 ‘비상’이다!

비상구 물건 적치 많아 재난 발생 시 위험천만

2012.12.07 정책기자 박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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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비상계단에 물건을 쌓아둬 화재라도 나면 어디로 대피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물건을 보관할 마땅한 공간이 없으니 잠시라도 비상구에 쌓아두는수밖에 없어요,”

‘생명의 문’이라 일컫는 ‘비상구’에 요즘 ‘비상’이 걸렸다. 지난 달 20일 소방방재청 주관으로 다중이용시설 비상구 안전점검이 이뤄졌다. 비상구 운영이 잘 되겠거니 생각하고, 토요일 시내 모처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대형 백화점을 찾았다.

주말이라 백화점을 방문한 고객들로 매장마다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북적댔다. 그런데 비상구에 들어서는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비상구인지 창고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당시 눈에 들어온 대로라면 물건을 쌓아두는 창고라고 표현해야 더 맞을 것 같다.

비상구인지 창고인지 헷갈릴 정도로 비상구 계단에 물건 박스, 술상자 등이 가득 놓여 있어 화재라도 발생하면 제구실을 할지 의구심이 든다.
비상구인지 창고인지 헷깔릴 정도로 비상구 계단에 물건 박스, 술상자 등이 가득 놓여 있어 화재라도 발생하면 제구실을 할지 의구심이 든다.

비상구는 화재 시 시설물 이용자의 고귀한 목숨을 구하는 생명문이다. 비상구를 폐쇄하거나 훼손 및 장애물을 쌓아둘 경우 2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 않고 층층이 물건 박스를 쌓아놓은 모습이었다. 한 사람이 겨우 비집고 다닐 정도다.

특히 의류 매장이 있는 곳은 옷걸이를 비상구 계단에까지 내놓아 보행에 불편을 주고 있었다. 적치 물건들로 인해 비상구 표시등이 전부 가려져 아예 보이지 않았다. 백화점의 경우, 계단 이용자의 대부분이 직원들이어서 그런 지 고객 편의는 뒷전인 듯 보였다.

만일 화재라도 발생하면 직원뿐만 아니라 방문 고객들이 대다수 계단을 이용해 대피해야 한다는 점은 감안할 때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 아니다. 화재 발생 시 비상구에 쌓아둔 물건들은 화재를 더욱 부추기고 유독가스까지 분출해 통행을 어렵게 할 것은 뻔한 이치다. 한마디로 안전불감증의 표본이다.

한 건물 벽에 부착된 ‘비상구’안내판과 소방서에서 캠페인용으로 부착한 스티커 ‘비상구는 생명의 문!’문구가 선명하다.
한 건물 벽에 부착된 ‘비상구’ 안내판과 소방서에서 캠페인용으로 부착한 스티커 ‘비상구는 생명의 문!’이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뿐만 아니라 매장 직원들이 아예 비상구 계단 통로 바닥에서 박스를 펼치고 물건을 늘어놓고는 작업까지 진행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비상구의 좁은 공간에서 직원들이 쪼그리고 앉아 작업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그들 사이로 직원들이 오르락 내리락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안타깝고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가 하면 일부 건물 비상구 계단에는 담배 꽁초가 널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흡연은 화재예방과 쾌적한 근무환경을 위하여 지정된 장소에서만 가능합니다. 이곳은 금연구역이며 흡연 시 과태료가 행위자에게 부과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무색해 보일 정도였다.  

‘우리 어머니 또는 할머니가 청소합니다. 침 뱉지도 말고, 담배 피우지도 맙시다. 제발 깨끗이 합시다.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을 가집시다.’라는 문구도 보였다. 한 대형 의류매장에는 비상구에서 흡연 시 벨을 눌러달라는 문구와 함께 금연벨이 설치돼 있기도 했다.

백화점 직원들이 비상구 계단 통로에서 물건 박스를 펼쳐놓고 작업을 하고 있다.
백화점 직원들이 비상구 계단 통로에서 물건 박스를 펼쳐놓고 작업을 하고 있다.

다중시설인 병의원, 어린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원, PC방의 비상구도 별반 차이는 없었다. 크고 작은 화분을 비롯해 시설물 홍보용 배너와 현수막 등이 비상구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아이들의 몸에 부딪혀 세워둔 현수막이 쓰러지기도 하고, 이런 것을 피해다니느라 많은 불편을 느끼기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비상구 이용 공간이 좁아질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목욕탕에서도 비상구에 잡다한 물건들을 적치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불법 설치물, 청소용구나 가재도구 등 불필요한 것들이 눈에 띄었다.

동대문, 남대문과 같은 대형 의류 매장에는 의류를 가득 담은 비닐 뭉치들이 비상통로에 가득했다. 의류 공장에서 받아 팔 것, 또 상인들에게 택배로 보낼 짐들이다. 더욱이 이들 의류매장은 거의가 소규모 면적이라 벽에 걸고 진열대에 쌓아 판매하는데, 더 이상 내부에 둘 공간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물품들은 고객들이 다니는 통로에 쌓아두고 있다.

병의원, 학원 등의 비상구에 대형 화분과 배너 현수막 등을 설치해두는 경우가 있는데 유사시 장애물이 된다.
병의원, 학원 등의 비상구에 대형 화분과 배너 현수막 등을 설치해두는 경우가 있는데 유사시 장애물이 된다.
목욕탕 입구 비상구 공간에 설치한 구조물, 구석에 쌓아둔 가재도구, 통로 중앙에 버젓이 세워둔 짐수레 등이 눈에 거슬린다.
목욕탕 입구 비상구 공간에 설치한 구조물, 구석에 쌓아둔 가재도구, 통로 중앙에 버젓이 세워둔 짐수레 등이 눈에 거슬린다.

화재 등 재난이라도 발생하면 통로를 제대로 빠져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게다가 쌓아놓은 짐들은 모두 비닐에 싸둬 화재에 취약하고 불이라도 붙게 되면 유독가스를 분출해 심한 호흡장애를 일으키게 된다. 이런 점을 유의해 상인연합회나 개별 상인 모두 평소 안전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일반 다가구 주택이나 아파트 비상구 역시 물건 적치가 심했다. 여러 가구가 함께 사는 다가구 주택의 경우, 아이들이 사용하는 용품들이 많았다. 자전거를 비롯해 장난감, 다 읽은 어린이 책들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둔 경우가 많았다. 또 집안 공간이 좁다보니 가재도구 등을 비상구에 내놓은 모습도 보였다.

대형 의류매점 통로, 겨우 한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인데 짐뭉치들이 군데군데 쌓여 있다.
대형 의류매점 통로. 한 사람이 겨구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인데 짐뭉치들이 군데군데 쌓여 있다.

아파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올해 들어 자전거타기 붐이 일어 가정마다 자전거 한두 대는 다 소유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아파트 안팎으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이 자전거다. 문제는 자전거 보관대에 있어야 할 자전거가 아파트 내부 비상구를 막고 있는 점이다.

게다가 화재시 긴급히 사용해야할 소화 전 입구를 막아선 경우도 볼 수 있었다. 모두 불법이다. 한 아파트 주민은 “자전거를 밖에 두면 훔쳐가는 경우가 있다. 벌써 두 대나 절도 당했다.”며 “관리소에서 복도에 두지 말라고 방송도 자주 하고, 불법인줄 알지만 비상구 복도에 세워 둘 수 밖에 없다. 이 역시도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다가구 주택의 비상구 계단에는 어린 아이 자전거, 각종 가재도구들이 가득 쌓여 있다.
다가구 주택의 비상구 계단에는 어린 아이 자전거, 각종 가재도구들이 가득 쌓여 있다.
아파트의 경우 자전거들이 비상구 통로를 가로막고, 심지어 소화전까지 막아 선 경우도 있다.
아파트의 경우 자전거들이 비상구 통로를 가로막고, 심지어 소화전까지 막아 선 경우도 있다.
 
반면, 물건 적치나 불법 구조물 설치 없이 비상구를 잘 관리하고 있는는 곳도 많았다. 일반적으로 계단 바닥이 반질반질해 미끄러지기 쉬운데, 신발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미끄럼 방지 테이프를 부착하거나, 신발이 닫는 계단 앞쪽에 홈을 내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비상구 통로 폭이 넓은 경우, 보행에 방해가 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코너나 벽쪽에 꽃을 장식해 둔 것도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이 역시 평상시에는 보기 좋지만 재난 발생 시에는 대피자의 보행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소방방재청 소방제도과 조형래 씨는 “비상구에 장애물을 적치하는 행위를 신고해 포상하는 제도를 운영중”이라며 “관할 소방관서에 전화로도 신고가 가능하며, 접수 후 관계공무원이 현장을 확인해 결과를 통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제10조에 의거 관련규정 위반 시에는 과태료 처분도 하고 있다.

물건 적치없이 시원하게 뚫린 비상구, 말끔하기까지 한 계단이 보기도 아름답고 안전해 보인다.
물건 적치없이 시원하게 뚫린 비상구, 말끔하기까지 한 계단이 보기에도 아름답고 안전해 보인다.
비상구 통로에 시각장애인용 보도블럭까지 설치하여 시설을 찾은 보행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한 것을 볼 수 있다.
비상구 통로에 시각장애인용 보도블럭까지 설치해 시설을 찾은 보행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한 것을 볼 수 있다.

바라건대 다중시설 업주는 근무 종사자와 방문자의 안전을 위해 비상구 관리를 제대로 했으면 한다. 소방 점검 때만 제대로 하는 척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안전불감증과 무신경으로 손놓는 경우가 많은데 위험천만한 일이다. 비상구나 비상문 표시등은 항상 점등 상태여야 한다.

또 화재 시 피난통로(복도, 계단) 및 소방시설(발신기, 소화기, 소화전) 주위 물품 적치는 절대 금지된다. 물건 박스는 비상 통로에 쌓지 말고 매장에 두어 정리하고, 자전거는 외부 거치대로 옮겨야 한다. 특히, 대형 상가 등에 있어 피난통로 확보를 위한 복도 경계선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아울러 관련 당국은 다중시설의 비상구 관리운용에 따른 지도와 단속을 일회성으로 그치지 말고, 지속적으로 펼쳐나가 비상구에서만큼은 단 한 건의 불상사도 발생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으면 한다.

정책기자 박동현(회사원) qlove1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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