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개정 도서정가제가 21일부터 전격 시행됐다. 과열경쟁으로 그간 안정을 찾지 못했던 도서시장이 나아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제껏 대형 서점들이 마일리지 적립 혹은 무료 배송의 방법으로 출판시장을 독식해왔던 점에 비춰 출판시장이 안정화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소비자의 가격 부담과 또 다른 형태의 시장 왜곡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개정 도서정가제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는 가운데, 도서정가제가 정착 단계에 있는 해외 사례를 통해 그 해법을 모색해봤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7월 8일,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도서정가제 개정 볍률’, 이른바 ‘아마존 법’을 공포했다. 아마존 법은 미국 대형 온라인서점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으로, 아마존이 프랑스에서 사업을 시작하면서 초래된 가격 경쟁으로 소형서점들이 문을 닫게 된 데 따른 타계책으로 마련된 법이다. 이 법안은 상원과 하원의 만장일치 하에 통과됐고,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는 프랑스에서 나온 것인 만큼 더욱 주목을 받았다.
지난 7월 10일, 프랑스에서는 이른바 ‘아마존 법’이라고 불리는 ‘도서정가제’가 실시됐다.(사진=르 조날드 긱)
실제로 프랑스는 아마존법이 재정되기 전부터 소규모 지역서점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왔다. 베스트셀러 등 회전이 빠른 책만 파는 대형 슈퍼마켓과는 달리 교양서나 전문서적 등 회전이 느린 책을 함께 파는 서점들이 감소해 프랑스 정부는 물론 국민들도 문화적으로 위기의식을 느껴오던 터였다.

이에 따라 1981년 프랑스 문화부는 지역서점에 이익을 주어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도서정가제’를 실시하기 시작했고,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자크랑’의 이름을 따 ‘랑법’ 이라고 칭하게 된다. 랑법의 목적은 다음과 같았다. 프랑스 어느 지역에 가든 같은 값으로 책을 살 수 있어야 할 것, 전국서점들이 좀 더 강력한 서점망을 유지할 수 있게 할 것. 그리고 출판문화의 다양성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랑법의 시행으로 프랑스 출판사들은 도서의 ‘정가’를 정할 수 있게 됐고 서점이나 슈퍼마켓 등에서는 5%까지만 할인할 수 있게 만들어 대규모 체인점이 소규모 경쟁자들과 공격적인 할인경쟁을 벌이는 것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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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랑(Jack Lang) 프랑스 전 문화부 장관. 도서정가제를 세계 최초로 법률로 재정했다.(사진=리베라시옹) |
랑법은 그 동안 민간 협정으로 유지돼온 도서정가제를 세계 최초로 법률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이후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독일 등지에서도 잇따라 도서정가제를 법률로 재정하게 돼 유럽 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랑법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2000년에 들어 대형 온라인서점 ‘아마존’이 프랑스에 상륙하면서 점점 그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실제로 2013년 프랑스 신간 도서시장에서는 구매의 18%가 온라인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3년에는 3.2%에 불과하던 것과 비교해보면 상당한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소규모 서점들은 불공정 경쟁에 시달리게 하는 대규모 온라인 서점들을 비판하기 시작했고. 특히 아마존에 대해서는 처음에 책값을 덤핑해서 팔다가 이후 소규모 상점들을 비롯한 경쟁 업체들이 줄어들면 다시 책값을 올릴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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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도서정가제법 개정안 수정 내용(사진=‘한국 출판저작권 연구소’ 논문 발췌) |
이에 따라 프랑스 정부는 지난 7월부터 온라인 서점들이 책값을 일체 할인해 판매할 수 없고 무료배송도 할 수 없게 하는 등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도서정가제 안을 만들어낸다. 이에 따라 온라인 서점은 기존 랑법에서 허용됐던 5% 할인마저 금지된 데다 추가적으로 무료 배송도 할 수 없게 됐다.
이처럼 도서정가제 개정법안이 시행되자 ‘아마존 프랑스’는 배송료를 최소의 화폐 단위인 1유로센터로 매겼다. 이에 따라 프랑스에서는 10유로인 책을 살 경우 일반 서점에서는 최대 5% 할인된 9.5유로에 구입할 수 있지만, 인터넷 서점에서는 배송료를 유함해 10.01유로를 지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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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9일자 ‘르몽드’. 도서정가제 개정안을 인포그래픽으로 설명하고 있다.(사진=‘한국 출판저작권 연구소’ 논문 발췌) |
‘문화의 다양성’은 프랑스인들에게 ‘취향의 다양성’과도 연결 지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인들은 음식을 먹을 때 코스별로 선택권이 다양해 개인의 취향에 맞는 소스와 와인, 디저트 등을 고를 수 있다. 그날 자신에게 어울릴 만한 식사가 무엇인지 웨이터와 상의하는 모습 등은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른 프랑스 고유의 식문화다.
2009년 영화 ‘타인의 취향’이 프랑스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한 것도 이런 프랑스인들의 취향을 대변한다. 이처럼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프랑스 사회에서 ‘책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영화 ‘타인의 취향’.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프랑스인들의 취향을 대변해준다.
개인적으로 이번 개정 도서정가제가 프랑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문화의 다양성’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형 서점과는 달리 소형 서점에서 책을 구매함으로써 얻는 이득을 꼽자면 바로 서점 주인과의 교우이다. 좋은 책을 읽고 싶은데 취향에 맞는 책이 무엇인지 잘 모를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서점 주인이다. 대형 서점에서는 책을 골라 계산하기에 바쁜 반면, 동네 서점에서는 주인들과의 친교를 바탕으로 책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기에 좀 더 용이다.

책에 대한 개인의 취향이란 것도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는 것인 만큼, 책을 쉽게, 많이 접하고, 책과 관련된 대화를 편히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을 때 좀 더 단단해질 거라는 생각이다. 베스트셀러나 노벨문학상 작가들의 책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책이라고 얘기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좋은 책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책의 가치를 돈으로만 판단해볼 게 아니라 내 삶을 진정으로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책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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