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어르신들 50명보다 공무원 120명 목소리가 더 작나?”
지난 4월 화천군청 월례조회. 최문순 화천군수는 훈시에 앞서 공무원들이 부른 애국가를 탓했다. 전날 화천군 노인대학 행사장에서 노인들이 불렀던 애국가와 공무원들이 부른 애국가 소리 크기의 차이를 말한 거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지의 공식행사에는 식순이란 게 있다.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큰 틀에서 보면 비슷하다. 개식과 국민의례, 유공자 포상, 훈시, 폐식 순이다. 국민의례엔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이 포함돼 있다.
공무원들이 참여한 공식행사에서 참가자에 비해 애국가 소리가 작다는 지적이 있다. 필자가 소속된 화천군청만 그럴까? 아니다. 전국 광역자치단체가 그렇고, 정부 주관 행사 또한 마찬가지다. 애국가는 나라사랑의 숭고한 뜻을 목소리로 표출하는 행위다. 노인들이 생각하는 애국가, 그리고 젊은 세대들이 바라보는 애국가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화천군청 월례조회. 최문순 화천군수는 공무원들의 애국가 소리가 작은 데에 대한 개선방안을 지시했다. |
# 애국가가 4절까지 있어요?
“크게 신경 안 써. 얌마, 음악만 크게 나오면 되지 학생들 목소리가 뭐가 중요하냐?”
친구 중 고등학교 교사인 한 녀석을 만났다. 애국가에 대한 학생들 반응을 물었다. 요즘 아이들 공부하기 바쁜데 그런 것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거다. 애국가 제창 시 음악만 크게 나오면 되지 학생들의 목소리 크기가 뭐 중요하냐는 말투다.
“내 생각은 다르다. 반주 소리가 크다는 것은 목소리 크기를 유도하기 위함이다. 부탁이 하나 있는데, 네가 담당하고 있는 고3 학생들에게 애국가 4절까지 아는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알아봐 줄래?”라는 말을 한 지이틀이 지났다.
“너 기사 쓸 거지? 어느 학교라고 밝히지 않는 조건이면 알려줄게. 심각하다. 반 아이들 30명 중 한 명도 없더라. 학교명을 거론하려거든 2/3 이상 알고 있더라고 써줘라.”
녀석도 의외였나보다. 옆 반 동료 선생에게 물어도 마찬가지더란다. 다시 말해서 다수의 학생들이 애국가 4절까지 모른다는 말이다. “어떤 학생은 ‘애국가가 4절까지 있어요?’라로 묻더라”는 말에 할 말을 잃었다.
# 어릴 적 교육의 중요성, 그래서 부탁했다
이강엽 화천군 용암초등학교 교감선생님, 그를 페이스북에서 만났다. 교육철학이 멋진 분이다. |
“교감선생님. 늘 고생 많으시죠? 다름이 아니라 제가 애국가와 관련된 기사를 기획하다가 생각나서 말씀드리는 건데요. 아이들에게 애국가 4절까지 써오기 숙제를 내시면 어떨까요? 의외로 모르는 아이들이 많을 것 같아서요. 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외운 국민교육헌장을 지금까지 외우고 있어요. 어렸을 때 기억이 오래 남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이강엽 강원도 화천 용암초등학교 교감선생님은 페이스북에서 만난 사람이다. 타임라인에 올려진 그의 글. 아이들 교육에 대한 철학이 참 신선하다는 생각을 했다. 쪽지를 통해 아이들에게 ‘애국가 4절까지 써오기’ 숙제를 제안했더니, ‘제 마음과 같습니다. 꼭 해 보겠습니다.’라는 답 메시지를 보냈다.
난 초등학교 2학년 때 국민교육헌장과 애국가를 4절까지 모두 외웠다. 50여 명의 산골 분교 학생 중 제일 빨리 외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별히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다. 선생님께서 가장 빨리 외우는 아이에게 공책을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가난했다. 노트 살 형편도 되지 못했다. 어머님은 쓰레기장에서 아이들이 다 쓰고 버린 노트 뒤편에 간혹 몇 장 붙어있는 부분을 오려 공책을 만들어주곤 하셨다. 새 공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어른이 된 지금까지 그 의미조차 어려운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있다. 애국가 또한 4절까지 또렷하다. 어렸을 때 기억은 참 오래 간다고 생각했다. 이강엽 교감선생님께 그 같은 제의를 한 이유다.
# 애국가, 크고 웅장하게 부를 때 조직에 힘이 생긴다
“어르신들이 우렁차게 애국가를 부르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글쎄, 난 할머님, 할아버님들의 애국심이라고 생각해.”
식사 자리에서 만난 최문순 화천군수. 그는 애국심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젊은이들은 그 못지않단 말인가!’라는 생각을 할 즈음 그는 “한국전 참전용사회 행사에 가면 알 수 있지. 연세가 90 가까이 되신 분들이 어디서 그런 목소리가 나오는지 쩌렁쩌렁하거든. 할머니, 할아버지들 또한 한국전쟁과 국가의 위기를 겪으신 분들이라 국가사랑 마인드가 목소리로 표출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라고 설명했다.
오세개 화천군 노인회장님. 왜 어르신들의 애국가 소리가 우렁찬지 물었다. |
난 궁금증을 오래 갖고 있지 못하는 성격이다. 지난 4월 11일, 오세개(79세) 화천군 노인회장을 찾았다. “군수께서 공무원들의 애국가 소리가 어르신들보다 훨씬 작다고 말씀하셨습니다.”라는 내 말에 회장님은 ‘그거 물어보러 왔냐?’며 ‘별 싱거운 사람 다 보겠네’라는 표정을 지으셨다.
“딱 두 가지로 요약이 되네. 하나는 애국심, 다른 하나는 신바람이라고 생각해.”
어르신은 화천이 수복지역임을 강조하셨다. 일제의 억압을 받아오다가 해방이 되고 38선이 그어지면서 이북영토에 놓였던 화천. 노인들 다수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신 분들이란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와 국가의 중요성을 생명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 애국가를 크게 부르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되물으셨다.
‘신바람’은 뭔지에 대한 질문엔 “국가 정책이 그렇기 때문이겠지만, 우리 군은 특히 노인 일자리 제공이나 경로당 난방비 지원 등 노인 복지에 선도적이다. 노인들 누구나 밖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신나는 일이지. 그렇기 때문에 노인들이 활기가 넘치는 게야.”라며 “애국가 소리를 들으면 그 조직의 힘을 판가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국가를 상징하는 노래인 만큼 웅장하고 힘차게 부를 때 나라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되는 거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 애국가의 의미 그리고 역사
애국가 악보 (출처=네이버) |
그렇다면 애국가의 역사와 그 상징적 의미는 뭘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와 <두산백과사전>의 내용을 정리했다.
국가(國歌)는 한 나라를 상징하는 공식적인 노래인 데 비해 애국가는 공식·비공식 여부를 떠나 나라를 사랑하는 내용을 담은 노래라는 점에서 구분된다. 애국가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국가로 제정된 애국가는 나라를 상징하는 의식적 음악 구실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애국가는 여러 종류가 있었다. 갑오경장 이후 각종 애국가가 널리 불리기 시작하여 1896년 무렵에 각 지방에서 불린 애국가만도 10여 종류에 이르렀다.
그중 배재학당 학도들이 부른 <애국가>는 스코틀랜드 민요인 <Auld lang syne>의 곡조를 따서 부른 것이고, 1898년 무관학도들이 부른 <애국가>는 영국 국가인 <God save the king>의 가사 내용과 곡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행 <애국가> 노랫말 지은이는 윤치호(尹致昊)라는 설도 있으나 작가 미상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우리나라 애국가는 16소절의 간결하고 정중한 곡으로 1930년대 후반 안익태(安益泰)가 빈에서 유학 중 작곡한 것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국가로 제정됐다. 2005년 3월 16일 안익태의 부인인 ‘로리타 안’이 애국가의 저작권을 한국 정부에 기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