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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헤아리며 서촌을 걷다

[광복절 특집 ①] ‘알쓸신기’ 팀이 일상에서 찾아낸 해방 전후의 모습들

2017.08.15 정책기자 한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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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광복 72주년 되는 해입니다. 광복 72주년을 맞아 법학, 식품공학, 국문학 전공의 정책기자 3명이 ‘알쓸신기(알면 쓸데 있고 신비한 기자단)’ 팀으로 뭉쳐, 해방 전후 격동기를 견뎌낸 민중들의 이야기를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문학, 공연, 음식, 그리고 우리 동네에 얽힌 해방 당시 우리네 이야기입니다.

더 이상 ‘시(詩)’를 읽지 않는 시대. 팍팍한 우리네 일상은 시를 읊을 시간과 책 한 권 꺼내 읽을 여유조차 앗아간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별이 된 시인의 작품을 읽으며, 다시 ‘윤동주’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의 시대, 찬란하게 빛났던 시인 윤동주. 광복 72주년이자 시인 윤동주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첫 주제로 암흑의 시대 속 별빛 내린 그의 흔적을 따라 걸어보고자 합니다.<편집자주>  

“동(冬)섣달 꽃과 같은,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와 같은 조선 청년.” 시인 정지용이 쓴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서문에는 얼음 같은 냉혹한 현실을 아파한 청년 윤동주가 숨쉬고 있다. 식민지 현실 속 떳떳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가득했던 시인. 조국의 독립을 그토록 바랐지만, 광복을 6개월 앞둔 채 ‘별’이 된 시인, 윤동주.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자리한 ‘윤동주문학관’에서, 우리는 그와 마주했다. 

인왕산 자락아래 한 폭의 산수화처럼 드리워진 안개가 걷히면, ‘윤동주문학관’이 한 눈에 들어온다. 2012년에 지어진 흰 색의 소담한 건물은 우리가 그리는 시인 윤동주의 모습과 많이도 닮았다.
인왕산 자락 아래 한 폭의 산수화처럼 드리워진 안개가 걷히면, ‘윤동주문학관’이 한 눈에 들어온다. 2012년에 지어진 흰색의 소담한 건물은 우리가 그리는 시인 윤동주의 모습과 많이도 닮았다.


파란 하늘과 환한 햇살이 어우러질 때 더욱 아름답다는 ‘윤동주문학관’은 인왕산 아래 버려진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만든 곳이다. 윤동주문학관은 3개의 전시실과 ‘시인의 언덕’이라는 산책로로 구성돼 있다.

그중 제1전시실에는 시인의 일생을 정리한 자료와 친필 원고 영인본이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그의 시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에서 모티프를 얻은 제2, 3전시실은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퇴적 속 시인 윤동주를 반추할 공간으로 존재하고 있다.

윤동주문학관’은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만든 곳이다. 용도 폐기된 물탱크의 윗부분을 열어서 중정(中庭)을 만들고
‘윤동주문학관’은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만든 곳이다. 폐기된 물탱크의 윗부분을 열어서 중정(中庭)을 만들고 ‘열린 우물’로 이름 지은 제2 전시실(왼쪽)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진은 윤동주문학관에서 시인의 언덕까지의 모습.


우인혜 기자(이하 우) : ‘가압장’은 느려지는 물살에 압력을 가해, 물이 위로 힘차게 흐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야. 물은 자고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인데, 압력을 통해 물의 흐름도 바꿀 수 있다는 점, 그러한 공간이 ‘윤동주문학관’으로 활용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 세상사(事)에 지쳐, 점점 타성에 젖고 비겁해지는 우리들에게 맑은 자극을 주는 윤동주 시인과 이 장소가 많이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한초아 기자 (이하 한) : 그러고 보니, 지난해 시인 ‘윤동주’가 유독 많이 회자됐던 것 같아. 영화 ‘동주’가 연초에 개봉했고, 그의 유고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로 등극하기도 했지. SNS에서 시의 한 구절을 필사하거나 캘리그라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나도 ‘시인 동주’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읽고, 좋은 구절을 필사하기도 했어.

또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의 삶을 ‘당신의 밤’이라는 노래로 만들기도 했지. “오늘 밤은 어둡기에/ 당신이 쓴 시가 별이 돼/ 광장 위를 비추는 빛이 돼.”라는 가사가 참 인상적이기도 했는데 말이야. 사람들이 시인 윤동주을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새삼 궁금해지기도 해.

김연수 기자(이하 김) : 윤동주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손꼽혀. 교과서에 가장 많이 작품이 언급된 시인이기도 하지. 우리는 모의고사 지문 안에서 시인 윤동주를 많이 만났는데 말이야(웃음). 돌이켜보니, 학창시절에 내가 느꼈던 시인 윤동주는 ‘소심한 성격’의 저항 시인이었던 것 같아. 그의 시가 아름답긴 하지만, 저항 문학으로서 강한 힘이 있다고 생각하진 못했어.

: 나도 학창시절에는 독립 운동이나 저항문학이라고 하면 무조건 강한 힘을 드러내야한다고 생각했어. 저항 문학의 대표작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는가’, 이육사의 ‘광야’를 보면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잖아. 그래선지 상대적으로 윤동주의 작품은 유약하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야.

시간이 흘러, 이제야 비로소 시인 윤동주의 가치를 알게 된 것 같아. ‘쉽게 씌여진 시’나 ‘참회록’ 등을 보면, 어두운 현실 속 자신의 비판적 성찰과 식민지인 조국의 현실을 아파한 모습을 엿볼 수 있거든. 어른이 돼서, 다시 만난 시인 윤동주는 유독 더 뜨겁게 와 닿는 것 같아.  

시인 윤동주는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과 한글창작 혐의로 체포됐고, 조사 과정에서 이를 부인하지 않아 옥중에서 2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자신의 시처럼 짧지만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다 끝내 별이 되었다.
시인 윤동주는 짧지만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다가 우리 가슴 속 영원한 별이 되었다. 사진은 윤동주 친필 원고 제본 중 ‘병원’의 한 부분. 우리 모두 인상깊게 읽었던 작품이다.


: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을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 윤동주 ‘병원’ 중

다시 살펴보니, 난 ‘병원’이라는 작품이 참 마음에 와 닿았어. 일제에 짓밟혀 점점 죽어가는 우리나라의 병든 현실과 겹쳐졌기 때문이지. 일제의 만행을 알면서도 독립운동가처럼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하고, 자신은 계속 ‘우리말’로 시를 쓰면서 고민과 비판을 전할 수밖에 없다는 자괴감이 어떤 심정인지 이해됐던 것 같아.    

윤동주문학관 옆 ‘시인의 언덕’에서는 윤동주의 ‘서시’ 시비를 만나볼 수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길 바랐던 시인의 마음이 전해진다.
윤동주문학관 옆 ‘시인의 언덕’에서는 윤동주의 ‘서시’ 시비를 만나볼 수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길 바랐던 시인의 마음이 전해진다.


1930년대에 문 열어 80여 년간 수많은 문인들에게 곁을 내준 통의동 ‘보안여관’. 서정주, 김동리, 오장환 등이 머물며, 한국 최초의 문학동인지 <시인부락> 만든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예술가들의 보금자리였던 이 공간은 전시를 갖춘 복합 문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1930년대에 문 열어 80여 년간 수많은 문인들에게 곁을 내준 통의동 ‘보안여관’. 서정주, 김동리, 오장환 등이 머물며, 한국 최초의 문학동인지 ‘시인부락’을 만든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예술가들의 보금자리였던 이 공간은 현재 전시를 갖춘 복합 문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 우리가 둘러본 서촌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문인들의 흔적이 담겨있어. 현진건, 이상, 윤동주, 정지용, 서정주…. 교과서에서 익숙하게 봤던 인물들이지? 서촌이라는 같은 공간, 시인이라는 같은 직업을 가졌지만 그중 서정주의 모습은 윤동주의 모습과는 대조됨을 느껴.

시인 서정주는 ‘국화 옆에서’, ‘귀촉도’ 등 뛰어난 작품을 남겼지만, 일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해, 부끄러워하고 반성했던 윤동주와는 달리, ‘송정 오장 송가’ 라는 시를 지어, 조선인의 일제 강제 징병을 찬양하기도 했지.

: 윤동주 시인은 개인적 혹은 사회적으로 목격하는 크고 작은 부당한 행태들에 문제의식을 갖고는 있지만, 적극적으로 맞서지 못한 자신에 대해 심한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다고 봐. 결국 시인은 이를 ‘부끄러움과 성찰’이라는 주제로 작품에 표현해냈지. 시간이 흐른 지금, 윤동주 시인이 회자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돼.      

-[사진] ‘이상의 집’에서는 이상의 삶과 작품들을 엿볼 수 있다. 무료로 운영되며, 약간의 기부금을 내면 무료로 커피를 제공받을 수 있다. 시민의 삶 속에 스며든 이상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이상의 집’에서는 이상의 삶과 작품들을 엿볼 수 있다. 무료로 운영되며, 약간의 기부금을 내면 무료로 커피를 제공받을 수 있다. 시민의 삶 속에 스며든 이상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열띤 이야기를 펼쳐보니, 어느 새 시간이 훌쩍 흘렀음을 느낀다. 우리는 자리를 옮겨, ‘이상의 집’에서 대화를 이어가기로 했다.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 이상이 세 살부터 20여 년 간 머물렀던 집터의 일부에 자리하고 있는 ‘이상의 집’. 철거될 위기에 놓인 이곳을 시민의 모금과 기업의 후원으로 매입해, 보전·관리되고 있다. 오늘날 ‘이상의 집’은 천재 작가 이상을 기억하는 시민의 쉼터이자 문학 공간으로 빛나고 있다. 

: 윤동주와 동시대를 살았던 시인 ‘이상’의 삶도 참 흥미로워. 시인이자 소설가 또 화가이자 건축가였던 이상은 가히 ‘천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지. ‘날개’나 ‘오감도’ 등 그의 대표적인 작품에서도 톡톡 튀는 천재성과 자유로움이 묻어나오잖아. 식민지 시대 속 반성하고 참회했던 윤동주와는 또 다른 모습인 것 같아.

: 이야기를 듣다 보니, 윤동주와 이상을 관통하는 공통점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두 시인 모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는 점, 대단히 비극적이고 안타깝게 생을 마쳤다는 점이지. 일본으로 유학을 갔지만 ‘독립운동과 한글창작 혐의’로 체포되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8세의 나이로 요절한 윤동주와 1936년 도쿄로 유학을 떠난 지 몇 달 되지 않아 ‘불온한 사상을 지녔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풀려나지만, 폐결핵이 악화돼 짧은 생을 마감한 이상의 삶이 그러해. 뛰어난 두 시인이 짧은 생을 마감한 채, 별이 됐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 같아.

윤동주와 이상의 작품 중 인상 깊었던 구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기자들.
한여름 날의 열기만큼이나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눈 우리들. 윤동주와 이상의 작품 중 인상 깊었던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왼쪽부터 김연수, 한초아, 우인혜 정책기자.


: 그래서인지 그들의 작품이 더욱 찬란하게 빛나고, 사람들에게 깊이 기억되는 것 같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유고 시집의 제목도 원래는 ‘병원’이었다고 하잖아. “내가 쓴 시로 병든 세상을 치유할 수 있길 바란다.”는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것이지. 시가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자신의 시를 부끄러워할 줄 알고, 끝없는 참회와 반성과 함께 따뜻한 언어로 사람들을 어루만져주는 윤동주의 시는 오늘날 더욱 빛나는 듯 보여.

: 시인 윤동주와 동시대의 문인들의 삶과 작품을 견주어 보니, 더욱 역사와 문학이 흥미롭게 와 닿았어. 일제 식민지의 시대적 고민을 어떻게 대하고 행동했는지, 문인들의 작품과 삶을 돌아보며 살펴본 점은 시간이 흘러도 기억에 남을듯 해. 나아가 ‘광복’의 기쁨이 얼마나 크고 가치 있었는지, 독립을 위해 노력하고 희생된 분들의 의미를 되새기는 데에도 뜻깊고 의미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

오랜만에 정책기자들과 만나, 역사, 문학, 광복 그리고 시인 윤동주가 어우러진 뜻 깊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며, 바빴던 일상에 작은 쉼표가 되었던 하루가 된 듯하다.
오랜만에 정책기자들과 만나, 역사, 문학, 광복 그리고 시인 윤동주가 어우러진 뜻깊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며, 바쁜 일상에 작은 쉼표가 된 하루였다.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라고 했던가. 광복 72주년을 맞은 오늘, 시인 윤동주의 삶을 돌이켜보니 그러한 말이 기우에 불과함을 깨닫게 된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어우러진 그의 작품은 다채로운 콘텐츠로 활발히 제작되고 있으며, 다양한 감성으로 오늘을 마주하고 있다. 별빛 쏟아지는 여름 밤, 시인 윤동주를 기억하며 가장 빛나는 별을 헤아려보기를 바란다.


 

한초아
정책기자단|한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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