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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 41주년, 민주공원에서 그날의 봄을 찾다

2020.10.16 정책기자 황채현

교복을 입은 앳된 학생들부터 넥타이를 맨 회사원들까지, 저마다 서 있는 위치는 달랐지만 목표는 하나였다. 1979년 10월 16일, 사람들은 온 힘을 다해 ‘유신철폐!’, ‘독재타도!’를 외쳤다. 

부마민주항쟁 당시 사진.
부마민주항쟁 당시 사진.


가혹한 폭력과 인권의 유린만이 돌아올 뿐이었을지라도 그 함성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확산되어 지지 않겠다는 굳센 의지를 보였다. 언젠가는 봄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공원에서 돌아본 부마민주항쟁의 발자취

부산 민주항쟁기념관.
부산 민주항쟁기념관.


2020년 10월 16일. 부마민주항쟁 이후 41년이 지날 때까지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또 다른 독재를 타도하고자 다시 단합했고, 그 노력을 바탕으로 국민들은 이제 대통령을 직접 선출할 수 있게 됐다. 국민의 힘이 가장 강하다는 것을 깨달은 우리는 이후 수많은 촛불을 밝히며 거리에 나섰고, 한 번 더 큰 변화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부마민주항쟁은 대한민국 역사의 주춧돌로 기억되어 올해 41주년을 맞았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지 1주년인 오늘, 그 첫걸음이 남아있는 부산으로 향했다.

이철호 작가 ‘민주항쟁도’.
이철호 작가 ‘민주항쟁도’.


부산역에서 508번 버스를 타고 민주공원에 도착했다. 민주공원은 부마민주항쟁 20주년에 개관한 곳으로, 부마민주항쟁을 비롯해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발전하기까지의 흐름을 간직한 장소이다. 이곳에 조성된 기념물은 우리나라 민주항쟁의 역사적 의의를 제대로 각인시킨다. 대표적으로 일제 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로 활동한 최천택 선생 기념비가 있다.

한편 민주공원에 방문하면 꼭 빠지지 않고 가야 할 곳이 있다. 바로 민주항쟁기념관이다. 민주항쟁기념관은 부마민주항쟁을 비롯해 현대사의 큰 줄기를 심층적으로 살필 수 있는 전시실이다. 민주항쟁기념관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이철호 작가의 ‘민주항쟁도’를 볼 수 있다. 민주항쟁도는 항일투쟁에서부터 4.19 혁명과 부마민주항쟁,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기록으로 남긴 작품이다.

부마민주항쟁의 배경 관련 기록물.(왼쪽부터 YH 여공 고 김경숙의 일기, 동일방직 노동자 호소문, 동일방직 노조 탄압 관련 문서)
부마민주항쟁의 배경 관련 기록물.(왼쪽부터 YH 여공 고 김경숙의 일기, 동일방직 노동자 호소문, 동일방직 노조 탄압 관련 문서)


민주항쟁기념관의 또 다른 특징은 부마민주항쟁에서 부산 시민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와 닿게 한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부마민주항쟁의 출발점은 부산대학교였다. 1979년 10월 15일, 장기 독재를 견디지 못한 부산대학교 학생들은 교내에서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민주선언문을 배포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16일, 마침내 부산대학교 학생들은 ‘유신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진출했다. 광복동과 남포동에 이르자 인근 대학교 학생들까지 합류해 시위가 확대됐다. 저녁에는 회사원과 상인, 종업원 등 근로자들도 함께 시위에 참여했다.

부마민주항쟁 부산대학교 선언문.
부마민주항쟁 부산대학교 선언문.


17일이 되자 시위는 어느덧 부산 대학가 전체로 번져나갔다. 수백 명의 동아대학교 학생들이 당시 금지곡이었던 가수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부르며 항쟁에 가담했다. 이날 저녁 6시, 남포동 부영극장은 오로지 ‘유신철폐!’, ‘독재타도!’를 부르짖는 목소리와 애국가만이 가득했다. 이튿날 새벽 한 시까지 지속된 항쟁에서는 일부 파출소가 불탔으며 부산일보, 부산 KBS·MBC 등 언론사 건물이 훼손됐다.

유신정권 당시 금지앨범이었던 가수 김민기와 신중현의 노래.
유신정권 당시 금지앨범이었던 가수 김민기와 신중현의 노래.


18일, 시위가 마산까지 확대되자 박정희 정권은 비상계엄을 선포한다. 군대의 투입으로 유혈사태가 초래됐고, 이는 항쟁을 절정으로 치닫게 했다. 그리고 26일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대응책을 놓고 집권층 내부의 갈등이 일어난 상황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에 의해 살해된다. 이처럼 부마민주항쟁은 18년간 이어진 독재와 유신정권을 붕괴시킨 결정적 계기였다. 이는 1980년 ‘서울의 봄’과 5.18 민주화운동, 그리고 더 나아가 촛불집회로 이어지는 등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의 본보기가 되었다.

민주항쟁의 불씨가 시작된 이곳

민주항쟁 기념관 협동서점 모델.
민주항쟁기념관 협동서점 모델.


‘양서는 양심을 낳고 양심은 정의로운 사회를 낳는다’

부산의 대학생들이 부마민주항쟁을 주도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바로 ‘정의’였다. 그들이 세운 정의는 어떤 것보다 단단했다.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수많은 모래 입자가 모여 단단한 돌을 형성하듯 그들의 정의 또한 수많은 책을 통한 지식으로 견고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지식의 원천에는 양서협동조합이 있었다.

양서협동조합은 1978년 4월 김형기 목사가 조직한 소비자협동조합이자 문화공동체로, 좋은 책 보급을 통해 민주세력을 결집할 목적으로 설립됐다. 누구든 출자금 1000원, 가입금 1000원만 내면 조합원이 될 수 있었는데, 출자액과는 상관없이 조합원 한 명당 한 명의 투표권을 줬다.

지금은 관광지로 유명한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협동서점을 열어 책 보급과 조합원 교육을 전개했다. 조합은 설립 이후, 부산의 진보적인 지식인과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확대됐다. 이에 책 보급뿐만 아니라 세미나와 강연회, 소규모 모임 등 다양한 활동이 이뤄지기도 했으며, 부산 대학생들이 여론을 형성하는 장이 되기도 했다.

협동서점의 책.
협동서점의 책.


조합의 규모가 커지자 양서협동조합은 부산을 넘어 울산, 대구, 수원, 서울까지 전국적으로 활동의 범위를 넓히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당국의 감시 또한 심해졌다. 판매 금지로 분류되는 책의 목록이 늘어났으며, 당국으로부터 책과 서류를 압수당했다. 결국 양서협동조합은 1979년 부마민주항쟁의 배후로 지목되면서 조합원 300여 명이 연행되었고, 같은 해 11월 강제 해산된다. 조합에 몸담았던 일부 회원들은 신군부 세력이 정권을 주도함에 따라 계속 민주화 운동을 전개했다.

비록 강제 해산으로 끝이 났지만, 양서협동조합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이는 1980년대 전국 양서협동조합운동이나 이후 일어났던 대학가 민주화 운동에 큰 영향을 줬다. 이에 오늘날 양서협동조합은 민주화 운동의 거점이자 민주주의의 산실로 평가받고 있다.

민주항쟁 기념관 방문객들의 기록.
민주항쟁기념관 방문객들의 기록.


민주공원을 방문한 후 부산역에서 동대구역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면서 줄곧 생각했다. 지금의 나와 나이가 비슷했던 학생들, 일하느라 피곤했던 직장인들을 비롯해 평범한 아무개로 불리던 사람들이 이토록 열정적으로 시위에 참여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에서 비롯되었을까. 41년이 지난 현재, 대통령을 직접 뽑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자유로운 사회를 누리고 있는 내가 그분들의 마음을 쉽게 확언하는 것은 건방진 행동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감히 생각해본다면, 미래의 후손들에게만큼은 이 어지러운 세상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들이 하나가 되어 거리를 밝혔던 것 같다. 미래의 아이들만큼은 의사표현이 자유로운 사회에서 웃으며 행복하길 기원하면서 말이다. 이제는 지금의 사회를 구성하는 나 그리고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10월 16일, 이날을 기억하면서.



황채현
정책기자단|황채현
hch5726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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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정책브리핑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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