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기적(홍해의 기적, The crossing of the Red Sea)은 성경에만 나오는 게 아니다. 가끔 도로에서도 나타난다. 위급한 환자를 실은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달릴 때 운전자들이 길을 터주는 것을 ‘모세의 기적’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도로 위 모세의 기적은 항상 나타나는 게 아니다. 사이렌을 울리는 구급차나 소방차가 있어도 길을 비켜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1분 1초가 시급한 환자를 실은 구급차, 화재진압을 위해 가야 하는 소방차로서는 난감한 일이다. 그래서 구급차, 소방차가 신호를 위반하거나 중앙선을 침범해 달리기도 한다. 이런 광경을 보면 아찔하다.
생명을 살리는 모세의 기적, 소방차 길터주기다.(출처=소방청 유튜브) |
그래서 소방청과 경찰청이 긴급상황에서 골든타임을 확보하기 위해 법률 개정안을 마련해 1월 12일부터 공포하고 시행 중이다. ‘소방·구급·경찰·혈액 운반용 긴급자동차’에 대한 통행 특례를 확대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이다.
왜 이런 개정안을 마련했을까? 긴급상황에서 소방관이나 경찰관들이 공무수행 중에 발생하는 교통사고 걱정 없이 적극적으로 업무 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럼 신속한 현장 출동과 골든타임 확보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방차, 경찰차 등 긴급자동차의 신속한 현장 출동과 골든타임이 확보돼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다.(출처=소방청) |
지금까지 긴급자동차 운전자는 공무수행 중 불가피한 경우 신호위반, 과속 등 교통법규 위반 일부만 허용되어 왔다. 교통사고가 발생할 경우에는 ‘속도제한, 앞지르기 금지, 끼어들기 금지’ 등 3가지 경우에만 특례가 인정되었다.(도로교통법 제30조 참조) 여기서 긴급자동차란 긴급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자동차다. 소방자동차, 구급자동차, 경찰용 자동차, 혈액 운반용 자동차,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이송 중인 자동차 등이다.
하지만 위급환자 이송이나 화재 현장 출동 시 3가지 특례 조항만 적용해 출동하면 골든타임을 놓치기 쉽다. 그래서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아찔한 곡예 운전을 하기도 한다.
위급환자나 화재를 신속히 진압하기 위한 것이지만, 사고가 난다면 어떨까? 책임은 모두 긴급자동차를 운전하는 소방관이나 경찰관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공무수행 중이었는데도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위급환자를 빨리 이송하려 하겠는가! 화재가 발생해도 교통법규 다 지키며 간다면 불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것이다. 극히 제한된 긴급자동차 특례 규정이 적극적 업무 수행에 큰 방해 요인으로 작용해 온 것이다.
119 구급차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언제든지 출동 준비가 되어 있다. |
실제로 긴급출동을 하다 교통사고를 내 책임을 뒤집어쓴 경우도 있다. 상황이 이런지라 현장에 출동하는 경찰관이나 소방관들은 1분 1초가 시급한 상황에서도 조심해야지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특히 작년 3월 25일부터 어린이보호구역 내 어린이 교통사고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다. 공무수행 중인 긴급자동차 운전자에게도 예외 없이 가중처벌이 적용되어 현장 근무자들의 불안은 더욱 커져 왔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교통사고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제5조의13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어린이 치사상의 가중처벌)이 신설됐기 때문이다.
긴급자동차는 말 그대로 신속하게 현장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다. 화재진압의 골든타임은 5분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목표와 안전운전 사이에서 특례 규정이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긴급자동차에 대한 특례 조항’을 포함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마련해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1월 12일부터 시행하게 된 것이다.
개정된 긴급자동차에 대한 특례 조항이다.(출처=소방청) |
개정안의 핵심은 이렇다. 국민의 생명, 안전과 직결되는 업무를 수행하는 경찰/소방/구급/혈액 공급용 긴급자동차에 한해 신호위반 금지, 중앙선 침범 금지, 후진/횡단/유턴 금지, 안전거리 확보 의무, 앞지르기 방법 준수 의무, 주정차 금지, 주차 금지, 보도통행 금지, 고장 등 상황 발생 시 조치 의무 등 9가지가 새롭게 추가됐다. 여기에 추가로 어린이보호구역 내 어린이 교통사고 시에도 긴급 활동의 시급성과 불가피성 등 상황을 참작하여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
소방관, 경찰관 등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내 처남은 28년 차 한흥수 소방관(당진소방서)이다. 이번에 긴급자동차 특례가 확대된 것을 보고 가장 먼저 처남 생각이 났다. 지금까지 수없이 화재 출동을 했다. 지금이야 베테랑 소방관이지만 초기에는 힘든 점이 많았을 것이다. 얼마 전에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이번 특례 확대에 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긴급자동차 특례 확대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소방관이 바라던 것이었습니다. 화재 출동할 때 교통법규를 다 지키다 보면 초기 진압은 사실 어렵습니다. 그래서 소방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중앙선 침범, 신호위반을 하면서 급히 가는 겁니다. 물론 사고가 나면 모든 책임은 운전자 책임이지만요. 그래도 조금이라도 빨리 화재를 진압한다는 사명감으로 위험하게 운전했는데요, 이제 사고에 대한 걱정 없이 일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라며 개정안 시행을 반겼다.
경찰도 이번 특례 확대를 반겼다. 수정경찰서 이정현 경장은 “사건 사고 발생 시 범인 검거나 교통사고 처리 등을 위해 현장에 긴급히 출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통사고의 경우 1분 1초라도 빨리 현장에 도착하여 조치하고 병원 후송이 이루어져야 사고자의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경찰차가 교통법규를 위반할 수는 없잖아요. 이번 특례 확대로 현장 출동이 빨라져 국민 안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긴급자동차 특례가 확대돼도 도로 위 ‘모세의 기적’은 계속 일어나야 한다. 소방차, 경찰차 등 긴급자동차 길 터주기는 선택이 아닌 ‘의무’다.(출처=분당소방서) |
긴급자동차 특례가 확대된다 해도 도로 위 ‘모세의 기적’은 계속 일어나야 한다. 우리 가족 중 누군가는 응급환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집에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다. 운전하다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소방차, 경찰차가 현장으로 신속하게 출동하려면, 특례 확대도 도움이 되겠지만 모세의 기적도 필요하다. 소방차, 경찰차 등 긴급자동차 길 터주기는 선택이 아닌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