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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였다. 당시 우리 사이에선 국가, 음식 등 이름을 많이 적어 겨루는 놀이가 인기였다. 우리 반에 문화재에 해박한 아이가 있었는데 매번 국보 1호부터 술술 외워대는 통에 문화재 지식으로는 당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 또 그 아이가 국보를 줄줄 읊자 누군가가 물었다.
“왜 여주 고달사지 승탑(국보 4호)이 먼저 나와? 난 불국사 다보탑(국보 20호)을 더 많이 들었는데.” 문화재를 잘 아는 그 아이마저 입을 다물었다. 우리 모두 국보 1호, 2호와 같은 지정번호가 단지 편의상 지정된 순서였다는 걸 몰랐다. 우리 같은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1996년에는 정부에서 국보 1호를 두고 여론조사를 한 적도 있다. 이렇듯 문화재 지정번호는 서열화 논란이 되곤 했다.
이제 안내판, 도로표지판, 교과서 등에서는 숫자가 사라질 예정이다. |
앞으로 문화재 지정번호가 달라질 예정이다. 혼란 방지를 위해 문화재 지정번호는 공문서에만 사용할 계획이다. 교과서나 누리집, 안내판 등에서는 숫자를 표기하지 않을 방침이다.
문화재 지정번호가 관리용 외에는 사라질 예정이다.(출처=KTV) |
문화재청은 올해 문화재 정책 60주년을 맞아 문화재 지정번호 제도 개선 등을 포함한 ‘2021년 문화재청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4대 전략과 15개 과제를 포함한 추진계획의 주제는 ‘국민과 함께 가꾸고 누리는 문화유산’이다. 4대 전략으로 ① 문화유산의 미래가치 창출 ② 문화유산의 온전한 보존과 전승 ③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유산 ④ 세계와 함께 누리는 우리유산이 있다.
세부적으로는 지역별 문화재 활용을 늘리고, 세계유산 등재 노력도 계속된다. 우리나라 갯벌도 등재 추진 중이라는데 빨리 등재되면 좋겠다. 첨단기술인 드론도 사용된다. 문화재청 담당자에 의하면 올해 드론을 새로 활용해 문화재 안전관리를 구현한다고 하니 기대해볼 만하다.
드론으로 문화재 안전에 힘쓴다.(출처=문화재청 제공) |
때마침 추진계획 중 하나인 디지털 실감 콘텐츠를 집안에서 볼 수 있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2월 10일부터 유튜브 가상현실(VR) 영상과 3차원 입체(3D) 애니메이션 3종을 선보였다. VR 영상은 보면 볼수록 또 다른 재미를 준다. 마치 갓 발굴한 유물처럼.
수중탐사장비로 바닷속을 볼 수 있다.(출처=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유튜브) |
VR 영상은 일반 영상과 달리 자신이 원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 볼 수 있다. 이점은 여느 VR과 같다. 그렇지만 수중이라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누구나 들어가기 쉽지 않은 바닷속, 게다가 문화재 발굴 현장이다.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수중 문화재 발굴 현장. 함께 헤엄쳐 볼까.
VR이기에 탐사 장비뿐만 아니라 잠수사가 촬영하는 것까지 포착할 수 있다.(출처=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유튜브) |
영상에서는 탐사 장비와 잠수사 모습이 동시에 보인다. 곁을 지나는 물고기까지 놓치지 않고 뽀송뽀송하게 바닷속을 누빌 수 있다. 물론 수중 문화재를 직접 발굴한 듯한 생생함이 가장 큰 묘미다. 이 영상들은 디지털 뉴딜 사업의 일환으로, 외국어 자막서비스 및 교육자료로도 사용할 계획이다.
3D 애니메이션은 세계 어린이들을 위해 4개국 언어로 제공될 예정이다.(출처=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유튜브) |
문화재 정책을 시행한 지 60주년이 됐다. 지난해 난 생각지 않게 문화재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비교적 한적한 궁을 거닐었고, 영상으로 문화유산을 보고, 집으로 온 문화재 키트를 만들었다. 갑갑한 코로나19를 견디는 동안, 오랜 세월 속에 깃든 문화유산의 숨결을 느껴보는 시간은 더없이 소중했다.
앞으로는 국보1호가 아닌 국보 숭례문이 될 전망이다. |
그러기에 문화재청 추진계획에 더 관심이 간다. 더해 문화재 행정 60년간 주요 성과와 변화 등을 분석해 좀 더 고도화된 정책을 추진한다니 반갑다. 문화재를 좀 더 자랑스럽게 느끼기 위한 첫 단계는 가까워지는 데 있다. 문화재청의 취지 역시 ‘국민과 함께 가꾸며 누리는 문화유산’이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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