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극한직업’이란 TV 다큐멘터리를 자주 본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힘든 환경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럼 어떤 일이 극한직업일까? 개인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나는 소방관도 극한직업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화재나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그때부터 극한의 시간이다. 1분 1초를 다퉈가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게 소방관이다.
소방관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를 보여주는 통계가 있다. 소방청이 2019년 5~6월 두 차례에 걸쳐 전국 소방공무원 5만224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다. 소방관 전체의 5.6%인 2704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위험군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 위험군은 2203명(4.6%), 극단적 선택 위험군은 2453명(4.9%)에 달했다. 참혹한 현장에 노출된 경험은 연간 평균 7.3회다. 소방공무원의 평균 수명이 69세로 공무원 직군 가운데 가장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화재나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1분 1초를 다퉈가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극한직업이 소방관이다.(출처=청와대) |
소방관은 직무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3교대 근무다. 전에는 24시간 근무하기도 했다. 3교대지만 낮과 밤을 번갈아 가며 근무한다. 생체리듬과 체력 유지가 쉽지 않다. 결혼한 소방관은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기도 힘들다. 게다가 자녀의 동네 유치원 입학도 ‘보육 대란’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만만치 않다.
지난해 4월 1일 소방직이 국가직으로 전환됐다. 모든 소방관이 원하던 일이었다. 정부가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소방직 국가직화를 바라던 소방관들의 가장 큰 소망 중의 하나가 직장어린이집이다. 이 소망이 이뤄졌다.
2020년 3월 1일 개원한 서울소방학교 직장어린이집이다. |
지난해 3월에 서울에서 두 곳(용산구, 은평구), 강원도에서 한 곳(강릉)에 직장어린이집이 문을 열었다. 소방관들의 축하를 받으며 개원식을 해야 했는데, 코로나19로 개원식도 못했다. 개원 후 은평구 서울소방학교 직장어린이집을 찾아 취재하려 했는데, 나 역시 가지 못했다. 아이들 감염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개원 후 직장어린이집은 소방관 자녀들이 입학해 운영 중이다.
어린이집 입구 오른쪽에 아이들과 함께 하는 텃밭정원이 있다. |
서울소방학교 직장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즐거운 놀이를 하고 있다. |
소방청의 협조로 소방직 국가직화 1주년을 맞이해 국내 최초로 개원(2020년 3월 1일)한 서울소방학교 직장어린이집에 가봤다. 서울소방학교는 소방관들 교육 기관이다. 이곳에 직장어린이집이 부속돼 있다. 어린이집은 연 면적이 240m²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 규모다. 입구 오른쪽에 아이들과 함께 가꾸는 텃밭정원이 있다. 이제 봄이 왔으니 꽃밭과 텃밭에서 싹이 돋고 꽃이 필 것이다. 아이들이 텃밭에서 흙을 만지며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 손 소독, 거리두기 등 철저한 개인 방역은 물론 소방관 안내로 멀찌감치서 아이들 교육을 지켜봤다.
서울소방학교 직장어린이집 내부는 보육실 4개소와 놀이뜰, 교재연구실, 교사실, 도담뜰(도서공간) 등 사립 유치원 못지 않게 잘 꾸며져 있다. |
내부는 보육실 4개소와 놀이뜰, 교재연구실, 교사실, 도담뜰(도서공간) 등 다양하다. 특히 보육실은 어린이들의 신체 조건에 맞는 크기의 가구와 활동 동선을 고려해 공간을 구성한 게 눈에 띈다.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뛰놀며 배우기에 최적의 공간이다. 아이들이 선생님이 가르치는 대로 율동도 따라하고 노래도 부르며 재미있는 교육을 받고 있다. 실내는 중금속, 실내 공기질, 건축물 석면 등 어린이집 환경안전 규정에 맞게 인증도 받았다. 그만큼 쾌적하다는 얘기다.
야간에 소방관이 비상근무할 때는 밤늦게까지 보육도 한다. 그래서 아이를 맡긴 소방관이 안심하고 근무할 수 있다. |
현재 김효정 원장선생님 등 총 7명이 근무한다. 특히 야간에 소방관이 비상근무할 때는 밤늦게까지 보육도 한다. 소방관 특성상 언제 어디서 비상근무를 할지 모른다. 여기 아이를 맡긴 소방관들은 비상근무를 해도 걱정이 없다. 아이를 맡긴 자녀 중 부부 소방관도 5명이나 된다. 맞벌이 부부로 아이 보육에 여간 신경 쓰이지 않을 텐데, 직장어린이집 때문에 안심하고 근무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소방학교 직장어린이집은 정원 30명에 현재 18명의 소방관 자녀가 다니고 있다. 법정 교사 대 아동 비율을 낮춰 보육의 질이 우수하다. 은평구에서 근무하는 소방관들뿐만 아니라 멀리 서초소방서, 중부소방서에서 근무하는 소방관 자녀도 있다. 소방관 자녀라는 누구라도 다닐 수 있다.
소방관 자녀 보육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김효정 원장. |
김효정 원장은 “소방공무원을 위한 최초의 직장어린이집이라 책임감을 느끼고 일합니다. 교대근무와 비상근무로 육아에 어려움을 겪는 소방공무원 학부모들의 자녀 양육 부담을 덜어주어 국민을 위한 소방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죠”라며 아이를 맡긴 소방관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이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긴 소방관이 있다. 서울소방학교에 근무하는 김진영 소방관이다. 김 소방관은 아이와 함께 출근한다. 출근하면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근무한다. 아이를 직장어린이집에 맡긴 후 달라진 점을 물었다.
아이를 직장어린이집에 맡기는 김진영 소방관. |
김 소방관은 “가장 크게 변한 것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겁니다. 여기 어린이집에 다니기 전에는 동네 어린이집에 다녔는데요, 아이가 하원해도 제가 밤늦게 퇴근하면 잠자는 얼굴만 봤죠. 그런데 지금은 아침에 같이 출근하기 때문에 출근하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부자 간의 정을 돈독히 하고 있죠”라며 웃는다.
달라진 게 그것 뿐일까? 김 소방관은 “직장어린이집 덕분에 교육비 부담도 덜게 됐습니다. 지금 서울, 강원도 등 일부 지역만 소방직장어린이집이 있는데요, 다른 지역도 생겨서 모든 소방관이 아이들 걱정 없이 소방 업무를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라며 바람을 피력했다.
이제 국가가 소방관 자녀 보육을 책임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 |
그럼 다른 지역은 언제 생길까? 원주는 오는 5월에 개원한다. 그리고 부산과 광주는 2022년 3월, 대구는 2023년 3월에 개원한다. 소방청은 전국에 직장어린이집을 확대 설치할 예정이다. 소방공무원들에게는 육아 부담과 걱정을 덜 수 있는 아주 반가운 소식이다. 이제 국가가 소방관 자녀 보육을 책임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는 소방관들이 더 바빠졌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상황에서 전국의 소방관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어떤 위험이 있더라도 소방차나 구급차를 타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구급대원들이 있어 든든하다. 지금 이 시각에도 소방관들은 화재, 안전사고는 물론 코로나19와 힘겹게 싸우고 있다.
서울소방학교에 있는 소방혼 탑과 순직자 영위. |
죽음을 무릅쓰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소방관들에게 나는 항상 경의와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 소방공무원들은 교대근무, 비상근무 등으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야 할 필요성이 큰 직업이다. 소방관들이 아이들 걱정에 불안하면 그만큼 근무에 집중하기 어렵다. 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도 지장을 준다. 직장어린이집이 더 많이 생겨 소방관들이 육아 부담에서 벗어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