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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②] 역사학자에게 듣다, 4.19혁명 그날

정책기자 박승대 2021.04.19

비가 내리던 지난 4월 3일 오전 11시.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오제연 교수님을 뵙기 위해 빗줄기를 뚫고 성균관대학교 교수회관으로 향했다. 오제연 교수는 4.19혁명 전문가로, KBS1TV에서 방영되는 ‘역사저널 그날’을 통해 익히 알려져 있다. 

4.19혁명 61주년을 맞아 4.19혁명이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갖는 의미를 알아보고자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흔쾌히 응해 주셨다. 주말 이른 시간임에도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뜻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다음은 교수님과 나눈 질의응답 내용이다.

KBS1 역사저널 그날 다시보기 캡쳐본
오제연 교수는 KBS1TV ‘역사저널 그날’에서 현대사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다.(출처=KBS1 ‘역사저널 그날’ 다시보기 갈무리)

 

Q. 교수님,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 재직 중인 오제연 교수입니다. 한국 현대사를 전공했고, 학교에서 한국 현대사 파트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현대사 중에서도 흔히 이승만 정권기, 박정희 정권기라고 하는 1950~1970년대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제로 보면 한국 현대사 중에서도 민주화 운동, 학생 운동, 정치사 일반을 많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Q. 4.19혁명은 어떤 역사적 사건이었나요? 
A. 4.19혁명은 1960년 3.15 정·부통령선거의 부정으로 촉발됩니다. 그 때는 부통령이라는 자리가 있었어요. 미국은 러닝메이트로 정·부통령이 함께 나오는 반면 당시 한국은 대통령, 부통령을 따로 뽑았어요. 이 선거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극심한 부정선거로 치러지게 됩니다. 부정한 방법이 노골적으로 자행됩니다. 정부와 여당의 부정선거 준비는 이미 선거 열흘 전에 구체적인 내용이 폭로되었음에도 그냥 밀어붙인 거예요.

‘부정부패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1948년부터 이런 식으로 12년 동안 권력을 유지해 온 이승만 정권의 횡포를 견딜 수 없다!’ 국민들이 부정에 항거해 싸운 사건, 그리고 국민들에 의해서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새로운 민주정권이 수립된 사건이 4.19혁명입니다.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는 4.19 혁명 세력 (출처=행정안정부 국가기록원)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는 4.19혁명 당시 모습.(출처=행정안정부 국가기록원)


Q. 4.19혁명에서 국민들이 이거 하나만은 꼭 기억했으면 한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면요.
A. 4.19라는 말 자체가 4월 19일에 모든 것이 이뤄졌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어요. 다시 말해서 4월 19일 하루에 모든 게 폭발적으로 이루어진 사건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작게 봐도 3.15 이전부터 저항이 있었습니다. 

먼저 선거유세 당시인 2월 28일 대구에서 시위가 벌어집니다. 학생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정부 여당에 맞서 대구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지요. 이를 ‘2.28민주의거’라고 합니다. 국민들의 저항은 2월 28일부터 시작해 4월 19일에 정점을 이룹니다. 

선거 당일인 3월 15일에는 ‘3.15마산의거’가 일어납니다. 이때 김주열 열사가 실종됩니다. 김주열 열사의 시신은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최루탄이 박힌 채로 처참하게 떠오릅니다. 이를 계기로 4월 11일부터 마산에서 다시 시위가 격화되고, 4월 19일에는 서울은 물론이고 부산, 광주 등 대도시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습니다. 

당시 이승만 정부가 총을 쏘면서 진압을 하는 바람에 4월 19일 하루에만 100명이 넘게 죽습니다. 그래서 이 날을 ‘피의 화요일’이라 부릅니다. 이 때 혁명이 마무리된 것은 아닙니다. 경찰력으로 통제가 되지 않자 이승만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을 동원하였습니다. 그 결과 시위는 일시적으로 소강상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4월 25일 대학교수들의 시위 이후 많은 사람들이 다시 거리로 나와 시위를 재개했습니다. 그리고 4월 26일에는 4월 19일처럼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였습니다. 

군은 더 이상 국민들의 시위를 막지 않았습니다. 미국도 분명하게 이승만과 선을 긋습니다. 국민들은 4월 19일보다 더 단호하게 이승만의 퇴진을 요구합니다. 사면초가 형국이었던 이승만은 결국 4월 26일 하야를 발표하고, 절차를 거쳐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이 사건은 4월 19일 하루가 아니라 짧게 봐도 1960년 2월 28일부터 4월 26일까지 수많은 사람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단발적,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국민들의 끈질긴 노력과 희생으로 이뤄낸 혁명입니다.

즉, 4.19혁명은 3월 15일 부정선거에 저항했던 사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 집권 12년 동안 있었던 각종 부정부패를 국민들이 더 이상 용인하지 않았던 사건입니다. 독재에 맞서 국민들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회복하려 했던 사건, 그리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민주주의를 회복했던 사건으로 4.19혁명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인터뷰를 진행하고 계시는 오제연 교수님
인터뷰를 하는 오제연 교수.

 

Q. 5.18은 민주화‘운동’으로, 6.10은 민주‘항쟁’으로 기록돼 있는데요. 4.19는 왜 ‘혁명’이란 이름이 붙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A. 이 부분은 매우 논쟁적입니다. 학술적인 ‘혁명’의 정의, 즉 ‘체제의 대변혁’이라는 의미를 그대로 적용하면 4.19에 혁명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4.19 당시 이승만 정부가 붕괴되었으나 극우반공 체제나 경제 체제의 급격한 변동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4.19는 혁명이 될 수 없다는 의견도 학계에 있습니다. 

하지만 독재정부의 붕괴와 새로운 민주정부의 수립도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대변혁이라고 할 만한 큰 사건이며, 나아가 4.19 이후 그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체제에 대한 다양한 모색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혁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 더 힘을 얻고 있습니다. 즉 사건 자체의 역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이후 영향을 보았을 때 4.19는 충분히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5.18이나 6월 항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 가능합니다. 5.18의 경우 전두환 신군부 세력의 은폐 조작으로 아직도 사건의 진상이 완전하게 파악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희생자(사망자+실종자)는 4.19 때보다도 많습니다. 하지만 5.18로 당시 권력이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에 ‘혁명’이라는 말을 쓰기는 어렵습니다. 

6월 항쟁은 수많은 국민들의 지속적인 저항을 통해 6.29선언과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냄으로써,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민주화의 실질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전두환 정권이 붕괴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역시 혁명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광장에 집합한 4.19혁명 군중들의 모습 (출처=행정안정부 국가기록원)
광장에 집합한 4.19혁명 군중들.(출처=행정안정부 국가기록원)


Q. 4.19혁명이 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왜 중요한지, 어떤 부분에서 그 정신을 계승해야 하는지, 역사적으로 왜 기억되어야 하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A.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가 수립될 때부터 헌법을 만들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물론 그간 여러 번 헌법이 바뀌어 왔지요. 그 헌법 개정은 대부분 파행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권력자가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무소불위로 휘둘러 헌법을 고쳤습니다. 

그렇게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헌법을 누더기처럼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손대지 못했던 조항이 있습니다. 바로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입니다. 이 내용은 1948년부터 한 차례도 바뀌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국민이 주인입니다. 가장 중요한 이 원리가 위협을 받을 때, 대한민국 국민들은 언제나 저항했습니다. 그 시작이 바로 1960년 4.19혁명입니다. 4.19혁명으로 국민들은 흔들리는 민주공화국을 바로잡았습니다.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며 바로잡았습니다. 

이런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완벽하지도 않았고,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4.19혁명 당시 우리 국민들은 모든 것을 바쳐 민주주의를 지켜냈고, 승리의 경험을 맛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한 4월 26일을, 우리는 일주일 전 4월 19일 ‘피의 화요일’에 대비하여 ‘승리의 화요일’이라고 부릅니다. 한마디로 4.19혁명이 정말 중요한 이유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발전시킨 경험을 우리 국민들에게 갖게 해 준 역사적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정책기자단 기자와 질문을 주고 받으시는 오제연 교수님
정책기자단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Q. 4.19혁명은 헌법 전문에서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들어가 있습니다. 어떤 가치 또는 의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A. 헌법 전문에 4.19가 포함된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4.19가 헌법 전문에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입증해 주는 역사적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즉, 헌법 제1조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 4.19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Q. 정책브리핑 독자들에게 꼭 해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A. 4.19혁명을 비롯한 현대사에 대해 많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알긴 알지만 제대로 잘 알지 못하니까 잘못된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이 때문에 현대사와 관련한 왜곡된 역사인식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역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또 한국사를 넘어 세계사까지 많이 알면 알수록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유익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오늘날 우리 사회와 직결된 것이 현대사입니다. 현대사를 이해해야 현재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비추어 현재 우리 모습을 제대로 봐야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4.19도 사람들이 안다고 말을 하지만 자세히는 모르는 것 같습니다. 좀 더 자세히 공부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4.19혁명뿐만 아니라, 우리와 직결된 현대사를 잘 이해해야 우리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고 미래의 방향을 올바르게 제시할 수 있을 겁니다.

(출처=KBS1 역사저널 그날 다시보기 캡쳐본)
KBS1TV ‘역사저널 그날’에 출연하고 있는 오제연 교수.(출처=KBS1TV ‘역사저널 그날’ 다시보기 갈무리)


교수님은 전문가답게 매우 유창하고 조리있게 모든 질문에 답해 주셨다. 약 2시간의 긴 인터뷰였음에도 더 질문할 것이 없냐고 계속해서 여쭙는 교수님의 모습에 그 열정을 한 번 더 체감할 수 있었다. 

교수님의 마지막 말씀처럼,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한국 현대사를 공부할 때 사실과 근접하여 탐구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보려고 한다. 4.19혁명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관심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박승대 psd473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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