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따스한 아이스 라떼를 마신 적이 있다. 장애인 바리스타들이 운영하는 카페에서였다.
“아, 이거 제 것 아닌데요.” 평소보다 손님이 많았던 날이었다. 주문과 다른 음료가 나왔다. 그런 실수는 누구라도 하는데 너무 미안해 하길래, 괜히 말했나 싶었다. 그냥 마셔도 된다 했는데 다시 맛있게 만들어 줬다. 시원한 얼음이 가득한 커피였는데, 온몸은 녹았다.
대전역에 있는 장애인 일자리 플랫폼 섬섬옥수에서 네일 케어를 받았다. |
요즘 이곳저곳에서 일하는 장애인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민관협력 장애인 플랫폼인 섬섬옥수도 그렇다. 늘 KTX를 탈 때면, 장애인들이 네일 케어 무료 서비스를 해주는 섬섬옥수를 이용하고 있다. 청각장애인이 네일 케어를 해주면서 교육을 받아 일하게 돼 즐겁다고 써줬던 메모도 떠오른다.
용산구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 |
올해 초 집 근처에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가 생겼다. 장애가 있는 지인의 아이도 생각나 찾아가 보기로 했다. 입구에서부터 곳곳에 붙어 있는 그림카드가 시선을 끌었다.
신발장 옆 의자에 붙여진 카드. 발달장애인에게 유용한 그림카드다. |
신발장 옆에도 간단한 그림카드가 붙어 있었다. 의자에 앉아 신을 신으라는 내용인데, 카드마다 예쁜 그림이 곁들여 있었다. 교실에는 더 많은 그림카드가 눈에 띄었다. 이유를 묻자, 발달장애인은 글자를 읽을 수 있어도 뜻을 바로 알아차리기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얼핏 보면 일반 학교와 같아 보이는 교실에 휠체어가 있다. |
한 책상에는 소통하기 쉬운 그림카드가 놓여 있다. |
어느 교실에는 의자 대신 휠체어가 있었다. 또 어떤 책상에는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쉽게 간단한 그림카드가 놓여있었다. 같은 교실이라도 조금씩 달랐다.
“이곳에서는 장애 등급에 따라 반을 나누진 않아요. 발달장애는 같은 1급이라도 사람마다 정도가 다르거든요. 결국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게 되는 거고요.”
한 교실에는 휠체어를 타고 사용하는 세면대가 있다. |
지체장애의 경우라면 활동 범위에 따라 구분할 필요가 있지만, 발달장애는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물론 휠체어로 이용 가능한 세면대와 침대가 있는 교실이 있어, 그런 환경이 필요한 학생들은 이 반으로 배정된다.
유독 그림카드가 많이 있다. |
현재 이곳은 5개 반에 남학생 10명, 여학생 2명이 학습하고 있다. 연령대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한 반에 두 명의 교사가 월~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수업을 한다. 30명 정원이라 상시 모집을 받고 있다.
교육 내용은 특수학교 등에서 배운 교과목 연장선에 있다. 일상생활 훈련은 물론 바리스타와 같은 직업 기초교육이나 사회 적응 훈련을 배운다. 물론 특화 프로그램도 있다. 예술 테마 프로그램이나 일일 여행, 정보화 교육 등으로 좀 더 세부적으로 구성돼 있다.
학습실에는 큰 수납장에 다양한 학습도구들이 들어 있었다. |
차례차례 돌아봤다. 학습실은 큰 수납장에 학습도구를 단계별로 구분해 놓았다. 손을 사용해 동작을 익히는 간단한 활동이 주로다. 또 옆에는 콘센트를 꼽거나 수도를 틀고, 자물쇠를 열거나 문을 잠그는 활동을 훈련할 수 있게 돼 있었다. 또 악기와 커피 머신 등도 비치돼 있다.
부엌에는 각종 도구와 기기들이 구비돼 있다. |
조리활동실은 다양한 집의 일상을 옮겨놓은 것 같았다. 냉장고, 인덕션, 식기세척기, 정수기는 물론 세탁기, 건조기를 비롯해 쓰레기 분리 배출함까지 생활에 필요한 기기들이 비치돼 있다. 요리 수업을 통해 직접 사용해보며 동시에 일상생활도 연습하는 셈이다.
다목적실에는 다양한 운동기구들이 있다. |
다목적실은 트램폴린과 안마의자 등이 있었다. 특히 심리안정실이 좋았는데, 스노젤렌(광섬유 커튼)이 은은하고 예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심리안정실에서 스노젤렌 등을 통해 안정을 취할 수 있다. |
이곳은 빈백에 누워 쉬거나 조용한 공간에서 불안정한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돼있다. 참 아늑해 보인다.
커피 머신이 있어 바리스타를 꿈꿔볼 수 있다. |
현재 우리나라 발달장애인 수는 26만여 명에 이른다. 지인을 통해 장애인은 가족만으로 돌보기 어렵다는 걸 봐왔다. 또 장애인 인식이나 제도가 많이 나아졌다고 해도 현실은 여전히 어렵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열쇠를 열거나 수도를 잠그는 등 손 근육을 사용하며 일상생활을 익혀나간다. |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이 스스로 서기 위해서는 일단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장애인과 가족만이 그 어려움을 고스란히 짊어지지 않길 바란다. 나아가 조금 늦더라도, 약간 서툴러도 원하는 일이 있다면 한 발씩 내디딜 수 있는 환경이 되길 기대한다. 그날 마셨던 아이스 라떼는 세계 최고의 맛은 아닐지라도, 어느 바리스타도 만들지 못한 훈훈함이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김윤경 otterk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