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은 따스하고, 봄꽃은 자꾸만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한다. 어디로든 떠나지 않는다면 어쩐지 유죄가 될 것만 같은 날씨다. 그러나 마음과는 다르게 몸은 축축 처지고 무겁다. 나는 약과다. 남편은 여전히 만성피로를 호소하며 주말은 집돌이가 되기를 강력하게 원한다. 부전자전, 이제 초등학생인 아들까지 어째 점점 아빠를 닮아가는 것 같다.
이럴 때! 멀리 가긴 부담스럽고 어디론가는 떠나야할 것 같은 마음을 이끌고 가까운 여행지를 찾아봤다. 당일치기로 콧바람을 좀 쐬고 싶은데 어디가 좋을까 검색을 하다가 시티투어버스로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서울시티투어버스로 남산 일대를 둘러본 것이 아이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았는데, 이번엔 내가 사는 지역을 둘러보는 것이다. 인천에서 나고 자라 반평생을 살았지만 여행이라고 하면 어디 먼 곳으로 떠날 궁리만 했지, 내가 사는 지역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는데 인천시티투어버스와 함께라면 편하게 내 고장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시티투어버스 나들이를 결정했다면 그 다음은 여러 가지 노선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먼저 순환형 노선 가운데 레트로 노선은 닭강정으로 유명한 신포국제시장과 배다리 책방거리,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을 즐길 수 있는 코스다. 또 2층 버스를 타고 인천 을왕리와 영종도, 인천공항을 거쳐 송도국제도시까지 둘러보는 바다 노선도 있다. 한편 테마형 노선에는 인천의 섬에서 바닷바람을 맞을 수 있는 선재·영흥 투어와 무의도 투어가 있다. 또 강화도를 둘러보는 여러 노선이 있으니 맘에 드는 것을 고르면 된다. 고민 끝에 우리 가족은 올 3월부터 신설된 교동도 투어를 선택했다. 전망대에 오르면 북한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아이가 좋아할 만한 모노레일도 탈 수 있다.
토요일 아침, 평소라면 늘어지게 자다가 일어나겠지만 우리 가족은 시티투어버스를 타기 위해 부지런히 일어나 간단히 요기를 하고 탑승 장소로 갔다. 참! 교동도 투어엔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교동도는 여전히 민간인통제선 구역이기 때문이다. 탑승 장소에 가니 우리처럼 자녀를 둔 가족들, 연인들, 어르신 등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설레는 얼굴로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첫 코스는 화개정원과 전망대다. 교동도에 여러 번 온 것 같은데 화개정원은 처음이다. 지난해 문을 열어 올 5월에 정식 개장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에 오르면 저 멀리 북한 땅이 보인다. 사실 북한은 참 가깝다. 다만 마음의 거리가 엄청나게 멀 뿐. 아이에게 저 곳이 북한이라고 설명을 해주니 기겁을 한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여러 생각에 잠긴다. 이 심리적 거리가 더 멀어지면 안 될 텐데,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한편, 이곳에는 연산군의 유배지도 있다. 역사에 흥미가 있는 아들은 학습만화책에서 읽은 온갖 지식을 꺼내 뽐내본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으니 남편과 나는 칭찬을 팍팍 해준다.
다음 코스는 배를 두둑하게 채울 수 있는 대룡시장이다. 여기저기 구석구석 구경을 하며 유명하다는 인절미 떡에, 밀크티도 먹어본다. 주말 교동시장에선 기다림은 필수니 인내심을 장착하고 와야 한다. 그리고는 어쩐지 발길이 끌려 반백 년 교동을 지키고 있는 다방에 가서 계란동동 쌍화차까지 한 잔 거하게 마셨다. 아이는 달걀이 띄워진 쌍화차를 보며 이게 뭐냐며 기겁을 했지만 그동안 가봤던 음식점이나 카페와는 다른 분위기에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신기해한다.
이른 아침에 출발해 강화 교동도를 둘러보고 집에 도착하니 저녁이다. 다른 때 같으면 우리 모두 녹초가 됐겠지만 중간중간 버스에 타서 이동하는 동안 휴식을 취하니 한결 피곤함이 덜하다. 차가 막혀도, 오래 걸어도, 전날 잠을 못자도 전혀 피곤할 일 없고 부담스럽지 않은 시티투어버스! 이렇게 알차고 편안한 여행이 어디 또 있을까 싶다. 서울 인천은 물론, 부산, 청주, 아산, 파주, 남해 등등 전 지역에서 시티투어버스가 각각의 주제를 싣고 달리고 있다. 다음에는 또 어떤 시티투어버스를 타볼까? 벌써 마음은 버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김명진 uniquekmj@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