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외갓집에서 자라다시피 한 나는 30대가 넘어서도 외갓집과 돈독한 사이를 유지한다. 오랫동안 해외에 살다 와서 그동안 못한 효도를 한다는 마음으로 가능하면 매주 어머니와 함께 외갓집에 방문한다. 그날도 외갓집에 갔던 평범할 것 없는 하루였다. 엄마와 할머니는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옷 치수를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가끔 내가 대신해서 홈쇼핑으로 옷을 주문하기도 했기 때문에 주문한 옷 치수를 변경하는 그런 전화라고만 여겼다. ‘유니폼’ 혹은 ‘제복’이라는 단어를 들은 것 같기도 하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상야릇했지만, 또 특별할 건 없어 보였던 전화의 비밀이 풀린 날은 바야흐로 6.25전쟁일을 며칠 앞둔 6월 21일이었다. 일이 바빠 몇 주 만에 찾은 외갓집에는 특별한 택배가 와 있었다. ‘제복의 영웅들, 위대한 헌신으로 이룬 놀라운 70년’이라는 문구와 얼마 전 ‘부’로 승격한 국가보훈부의 마크가 새겨진 택배였다. 안에는 베이지색 재킷, 국가유공자 상징이 새겨진 남색 넥타이와 바지가 들어 있었다.
정책기자단을 한 덕분에 정책 기사를 유심히 살펴보는 나는 이 제복의 의미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국가보훈부가 6.25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6.25전쟁 참전유공자에게 전달한 새로 만든 제복이었다. 6월 14일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을 초청한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수여한 그 제복과 동일한 것이다. 6월 21일부터 배달하기 시작한 제복은 지난 4월 1일부터 4월 26일까지 신청한 2만2000여 명의 대상자에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내가 몇 달 전 들은 통화 내용은 바로 4월에 제복을 신청하는 그 전화였던 것이다.
너무 궁금한 나머지 어떻게 이 제도를 알고 신청했는지 물어보았다. 답변은 간단했다. 나라에서 신청 안내 우편물이 왔다고 한다. 나라면 그냥 읽고 넘어갔을지도 모르는데, 발이 아파서 거동도 불편하고 뇌 수술 후 이해도도 예전과 같지 않은 할아버지이지만, ‘국가유공자’라는 신분에 대해 여전히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복의 영웅들’ 사업 취지는 이렇게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참전용사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제복 근무자를 존중하는 보훈 문화를 확산하는 것이다. 국가유공자에게 최고의 존경과 예우를 표하기 위해 국가보훈부는 우정사업본부와 협약을 맺어 제복을 입은 집배원들이 제복을 입었던 참전유공자들에게 직접 제복을 전달한다.
혹시라도 4월에 사전 신청을 하지 못한 6.25 참전유공자는 오늘 8월까지 전담 전화(1899-1459)를 통해 추가 신청하면 된다. 추가 신청분은 11월까지 지급될 예정이다.
이번에 새 제복을 받은 외할아버지는 6.25전쟁 참전용사, 오래전 돌아가신 친할아버지는 육군사관학교 출신 소장이다. 나라를 위해 싸운 군인의 집안이지만 한때 국가유공자 자녀, (외)손자녀 대입특별전형같이 온통 받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던 철없고 이기적인 시절이 있었다. 6.25전쟁 정전 70주년과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또 정책기자단을 하며 갖게 된 여러 기회를 통해 나를 돌아보았다. 받고 누리는 것만이 아닌, 베푸는 삶은 어떨까? 나만을 생각하지 말고 주변을 돌아보는 건 어떨까?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정수민 amantedepari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