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0일 저녁,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 시리즈 IV ‘부재’를 관람하러 갔다. 오늘 공연은 국립극장에서 실험적으로 도전하는 무대였다. 예술과 과학기술의 결합이 열어주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로봇이 지휘자로 나선다고 했다.
2022~2023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의 마지막을 장식할 ‘부재’는 로봇이 지휘자로 나서는 파격적 실험으로 예술가의 가치와 역할을 새롭게 성찰하는 기회다. 국내 최초로 지휘하는 로봇 ‘에버6’와 최수열이 각각 지휘자로 나서고, 또한 에버6와 최수열이 무대에서 동시에 지휘한다고 하니 어떤 공연일지 기대가 컸다. 나뿐만 아니라 대다수 관객의 기대가 큰 탓인지 공연이 시작되기 전 홀에 마련된 로봇 사진과 나란히 인증 사진을 찍는 관객들이 많았다.
로봇 지휘자 에버6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만든 안드로이드 로봇이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산업계 특히, 중소 및 중견기업 지원을 목적으로 1989년 설립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디지털휴먼실에서 총 6명의 연구원이 협업해서 로봇을 제작했다.
에버6는 풍부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시선 맞추기 및 자율행동과 상호작용을 위한 사회적 행동을 구현하는 등 꾸준히 진보하고 있다고 한다. 일반인에게 생소하지만 에버6가 지휘하기 위해서 지휘자의 동작을 3차원 좌표로 변환하기 위한 모션 캡처, 모션 캡처 데이터를 로봇의 크기 및 관절에 맞추어 변환하기 위한 모션 리타겟팅을 진행했다고 한다. 에버6는 모델이 된 지휘자로부터 지휘 동작을 학습해 왔다.
관현악 시리즈 IV ‘부재’에서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총 4개의 프로그램을 연주했다. 로봇 지휘자 에버6가 등장하는 연주 프로그램에 유독 눈길이 갔다. 프로그램 북을 살펴보니 공연의 전반부 첫 프로그램을 로봇이 단독으로 지휘하고, 후반부 첫 프로그램을 로봇 지휘자 에버6와 인간 지휘자 최수열이 나란히 한 무대에서 협업하며 지휘하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단원들이 악기를 조율하는 동안 나를 비롯한 대다수 관객은 시선을 온통 무대에 집중하면서 로봇 지휘자의 등장을 기다렸다. 로봇 지휘자가 무대에 어떻게 등장할지 부터가 관심이었다. 지휘자가 서야 할 무대 전면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더니 드디어 로봇 지휘자 에버6가 등장했다. 에버6는 인간 지휘자처럼 관객들을 향해 인사를 하고 뒤돌아서서 연주자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오른손의 지휘봉을 높게 들어 지휘를 시작했다. 에버6의 지휘에 맞춰서 단원들이 연주를 시작했다.
로봇 지휘자 에버6가 지휘봉을 들고 지휘하는 모습이 낯설었지만, 관현악단의 연주는 매끄럽게 이어졌다. 에버6는 두 팔을 치켜들고 빈틈없이 지휘했다. 인간 지휘자의 공연과 다를 바 없었다. 평상시와 다른 점을 꼽는다면 연주자들이 에버6의 지휘를 따르면서 얼굴에 미소를 띠는 모습이었다. 연주자들 눈에도 로봇의 지휘가 신기한 것 같았다. 그동안 숱하게 무대의 공연을 지켜본 나로선 처음 대하는 생경한 장면이었다. 인간 지휘자가 무대 앞에 있으면 대다수의 단원이 사뭇 심각한 표정을 하고 연주하는데, 이번 공연은 달라 보였다.
로봇 지휘자 에버6와 인간 지휘자 최수열의 협업 공연도 있었다. 두 지휘자의 지휘하는 스타일은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 로봇 지휘자는 정적인 자세로 정확한 박자와 리듬을 이끌어내면서 단원들의 연주를 지휘했다. 반면에 인간 지휘자는 역동적인 자세로 몸을 흔들면서 때론 각 파트별로 강약을 주문하는 등 로봇 지휘자가 놓칠 법한 아주 정교하고 셈세한 부분을 지휘했다. 여기서 로봇 지휘자와 인간 지휘자의 차이점이 드러났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은 공연장을 쉽게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홀을 가득 메운 사람들 틈에 각 방송국의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나도 세대를 달리하는 두 관객의 얘기를 들어봤다. 두 관객 모두 로봇 지휘자가 출연한다는 뉴스를 시청한 뒤 서둘러 예매했다고 한다.
정희경(50) 씨는 “로봇이 자율적으로 지휘하는 게 아니라 프로그래밍이 된 상태에서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실수 없이 지휘할 거라고 예상했어요. 로봇 지휘자는 무대에 등장할 때부터 신선했어요. 무대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것이요. 영화에서 자주 봐왔던 그런 모습을 한 로봇이 무대에서 인간 연주자들과 공연한다는 그 상황 자체만으로도 재미있었어요”라고 말한다. 지휘자는 리더로서 단원들을 이끌어가는 역할인데 그 어려운 일을 로봇이 해내고 있다면서 감탄을 연발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로봇이 지휘하는 공연을 자주 열어서 우리의 전통음악인 국악을 알리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당부한다.
유성주(25) 씨는 “로봇이 인간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기대됐어요 이번 공연을 통해 본 로봇 지휘자는 인간 지휘자보다 기계적이고 정적인 면이 강한 것 같아요. 첫 공연부터 인간의 정교하고 역동적인 지휘와 같기를 기대할 순 없겠죠.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면서 이제 로봇이 예술 분야에까지 진출한 것은 고무적이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로봇 지휘자가 공연에 투입되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대중들의 관심을 끌 만하죠. 그래서 저도 공연을 보러 왔으니깐요. 이런 실험적 시도가 여러 번 이루어지다 보면 데이터가 축적되어서 로봇 지휘자의 솜씨도 인간에 가까워질 날이 오겠지요”라고 말한다.
로봇 지휘자 에버6와 공연했던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의 소감을 들어봤다. 에버6와의 에피소드를 묻자 김미경 부수석(가야금)은 “무대에서 숱하게 공연했던 단원들도 로봇 지휘자와의 공연을 신기해 했어요. 하지만 무대에서 공연할 적엔 순간 로봇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였어요. 앞으로 수많은 지휘자의 지휘 데이터가 축적된다면 지금보다 더 기량이 뛰어난 지휘자의 면모를 갖출 수 있으리라 기대해요”라고 말한다.
이어서 김 부수석은 “공연예술 분야에까지 로봇 지휘자가 등장한 것을 마냥 반길 만한 사안은 아닙니다. 인간이 지닌 감성은 아무리 정교한 로봇이라도 인간처럼 풍부하게 표현하긴 어려울 테니깐요. 로봇이 전 산업 분야에 진출하고 있는 지금 공연예술 분야도 인간이 지닌 강점을 살리면서 로봇과의 공존을 모색하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바람을 밝힌다.
우리의 전통음악인 국악과 최첨단 로봇의 만남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대중의 이목을 끌 만하다. 로봇 지휘자가 이끄는 공연은 1회로 끝났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국내의 로봇은 제조 현장에서 출발해서 서비스 현장으로 그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그동안 로봇은 인간의 지휘 및 통제를 받아왔다. 그런 로봇이 인간을 지휘하는 역할을 부여받아서 무대에서 공연했다. 로봇의 진화는 어디까지인지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것 같다.
이번에 국립극장에서 인간과 로봇의 협업으로 멋진 공연을 선사했다. 여기서 우리 사회의 지향점을 볼 수 있었다. 인간과 로봇의 공존, 인간과 로봇의 협업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세상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