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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생생하랴, 생생문화재

2023.10.05 정책기자단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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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주지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난 어쩌다 집 근처에 세워진 기념비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여기가 이런 곳이었어?’ 

그 무렵이었다. 생생문화재에 관해 들은 건. 생생문화재는 문화재청의 ‘지역문화유산 활용사업’ 중 하나다. 문화재 문턱을 낮춰 국민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는 취지다. 살펴보니 우리 지역 생생문화재 ‘양화나루에서 놀아보세’라는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왔다(이름부터 흥겹지 않은가). 물론 다른 프로그램도 구미가 당겼다. 그래도 우선 내가 사는 곳부터 천천히 알아가자고 생각했다. 

합정역 근처에 모인 참가자들(왼쪽), 받은 수신기와 리플릿이 가득한 가방을 받았다.(오른쪽)
합정역 근처에 모인 참가자들(왼쪽), 수신기와 리플릿이 가득한 가방을 받았다(오른쪽).

덥지 않고, 흐린 딱 좋은 날이었다. “그동안 비가 오거나 더웠는데, 오늘은 다니기 정말 좋은 날씨네요.” 챙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참가자가 말했다. 그 말에 공감한 듯 옆 사람은 하늘을 쳐다봤다. 

참가자들은 설명을 듣고, 조를 나눠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으로 향했다. 받은 가방 안에는 오늘 갈 곳에 관한 리플릿 등으로 가득했다. 저마다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있었다. 생생문화재 ‘양화나루에서 놀아보세’는 날짜에 따라 절두산 순교성지와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두 코스로 나뉘어 있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마치 유럽 어느 정원이나 묘원에 간 듯했다.
마치 유럽 어느 정원이나 묘원에 간 듯했다.

묘원으로 향했다. 외국인 묘원이라 그럴까. 달랐다. 다양한 비석들과 잘 다듬어진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낮게 드리운 구름마저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해설을 들으며 묘원을 돌아보는 참가자들.
해설을 들으며 묘원을 돌아보는 참가자들.

“왕실 의사였던 에비슨 선교사가 당시 미천한 신분인 백정의 병을 고쳐줬거든요. 주위에서 크게 말렸는데도요. 그 백정의 아들이 우리나라서 최초로 의사면허를 딴 박서양입니다.” 

세브란스병원 설립에 큰 역할을 한 에비슨 선교사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아들 내외와 이곳 양화진에 잠들어 있다. 당시 외국인 묘지가 제물포에 있었는데, 무더위 속 제물포까지 운구가 어려워 양화진에 안장했다. 당시 상황에 얽힌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또 곳곳에 잠든 우리나라를 사랑했던 외국인 선교사들에 대해서도 들었다. 때로는 안타깝고, 때로는 고마웠다.      

헐버트 선교사(왼쪽)와 언더우드 선교사(오른쪽)의 비석.
헐버트 선교사(왼쪽)와 언더우드 선교사(오른쪽)의 비석.

묘원 한 바퀴를 돌자, 역사책을 독파한 기분이었다. 그럴 만한 게 꽤 많은 유명한 외국인 선교사가 이곳에 안장돼 있다.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베델, 조선 독립에 매진했던 헐버트, 배제학당과 정동교회 창립자 아펜젤러, 이화학당 창립자 스크랜턴 등 익숙한 묘비명을 보며 깜짝깜짝 놀랐다. 가족묘도 있었다. 연세대 창립자인 언더우드나 숭실대 창립자인 베어드 등은 가족과 함께 묻혔다.

베델의 비석 뒤에 비문을 훼손, 새로 만들었다. (왼쪽), 6.25로 손상된 비석(오른쪽).
베델의 비석 뒤 비문이 훼손돼 새로 만들었다(왼쪽). 6.25로 손상된 비석(오른쪽).

눈여겨볼 것도 있었다. 아픈 우리 역사의 흔적들이다. 군데군데 부서진 비석은 6.25전쟁 때 손상을 입었다. 총탄 흔적도 남아있다. 또 일제강점기 때 없앴던 베델의 비문도 보였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여기 다시 오고 싶어. 500여 명 가까이 안장된 곳인 줄 몰랐어”
“그러게. 게다가 아는 선교사들이 이렇게 많이 있는 줄은 더 몰랐네” 

참가자들은 조용히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양화나루로 향했다.   

한강(잠두봉 선착장)

양화진 역사공원.
양화진 역사공원.

양화나루에 가기 전, 양화진 역사공원에 들렸다. 해설사는 옛 자료들을 보여주며 설명을 들려줬다. 

잠두봉(절두산)이 보인다(왼쪽), 옛 자료를 보여주며 충실하게 해설해주고 있는 해설사(오른쪽).
잠두봉(절두산)이 보인다(왼쪽). 옛 자료를 보여주며 충실하게 해설해주고 있는 해설사(오른쪽).

“지금은 길을 만들었지만, 예전엔 이곳 모두 강이었잖아요. 바로 저 위가 처형터였어요.”   

해설사가 가리킨 곳에 잠두봉이 보였다. 누에머리를 닮았다는 잠두봉. 한강 유람을 즐기던 그 아름다운 곳이 절두산이라는 끔찍한 명칭으로 바뀐 건, 병인박해 때였다. 참가자들 모두 말을 잃고 쳐다보고 있었다.    

양화나루에서 배를 타다

한강을 지나며 이야기를 나누는 참가자들.
한강을 지나며 이야기를 나누는 참가자들.

공원을 빠져나와 한강 잠두봉 선착장으로 걸었다. 흐르는 강물은 가슴 아픈 옛 역사를 기억하리라. 그래도 또다시 흐른다. 다음 세대를 향해. 한강을 보자 숙연했던 마음이 풀렸는지 다시 말소리가 들렸다. 

“해외를 다녀봐도 한강 만한 강이 없더라고.”
“맞아. 나도 막상 외국의 유명하다는 강을 가보고 실망했어.”

선내에 들어가 안전교육을 받았다. 안전조끼를 자세히 입는 법부터 어른, 아이 용까지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선내에 들어가 안전교육을 받았다. 안전조끼를 자세히 입는 법부터 어른용, 아이용까지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앞서 걷던 참가자들이 말했다. 발걸음도 좀 전보다 빠르다. 선착장에서 조심스레 배를 탔다. 프로그램에선 안전교육도 놓치지 않았다. 안전조끼 입는 법을 정확하게 익혔다. 지금까지 안전조끼를 상세하게 알고 있었던가 저절로 되짚어 볼 만큼.  

양화나루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었어요.”

배에서 설명을 들려주는 해설사.
배에서 설명을 들려주는 해설사.

갑판으로 올라가자, 강바람에 머리가 나부꼈다. 뒤편으로 물결을 일으키며 배는 나아갔다. 여의도, 노들섬이 보이며 서울타워가 보였다. 해설사는 지역을 지날 때마다 이에 얽힌 이야기를 재밌게 들려줬다. 사람들은 이어폰을 통해 해설을 들으며 ‘아하’하고 끄떡거리다 인증샷을 찍어가며 즐거워했다. 

한강에서 보이는 유명한 장소들.
한강에서 보이는 유명한 장소들.

“밤섬은 밤처럼 생겼다고 그렇게 불려요. 경관이 엄청 좋았는데 여의도를 개발하며 폭파하고 해체됐지요. 그런데 폭파된 잔해에 퇴적물이 쌓였고 새들이 찾아와 철새 도래지가 돼 2010년 람사르 습지로 지정됐죠.”

밤섬은 1년 중 한 번 밤섬 주민들의 귀향 행사를 진행한다. 그때만 일반인 출입이 가능하단다. 아름답다는 밤섬에 언젠가 갈 수 있을까. 

(주)컬처앤로드 문화유산활동연구소 이동범 대표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주)컬처앤로드 문화유산활동연구소 이동범 대표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양화진은 근대사에서 꼭 알아야 할 곳이에요. 우리나라가 힘이 강할 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약할 땐 외세에 의해 이용되는 곳이거든요.”

㈜컬처앤로드 문화유산활용연구소 이동범 대표는 ‘왜 이곳을 마포의 생생문화재 코스로 넣었나’라는 질문에 답변했다. 덧붙여 ‘우리나라 나루 중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된 곳이 양화나루’라고 말했다. 그렇게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지만, 주민마저도 잘 알지 못했다. 나도 그랬으니까. 또 사람들이 절두산이나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같은 성지는 선뜻 오게 되질 않아 그 문턱을 낮추고 싶었다고 했다.   

생생문화재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생생문화재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마포하면 보통 홍대와 상암 등을 떠올리는데요, 이렇게 역사상 중요한 곳도 많이 알면 좋겠어요.”

양화나루 생생문화재 프로그램은 이 뱃길 탐방 프로그램만이 아니다. 방학에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더위와 추위를 피해 배 안에서 진행한다. 즐겁게 미션을 풀고 키트를 만들며 노는 가운데 역사를 익히게 된다. 그가 보여준 핸드폰 속에는 아이들이 즐겁게 체험하던 모습이 생생했다.  

플라터너스가 우거지고 장미가 많은 묘원.
플라터너스가 우거지고 장미가 많은 묘원.

”보통 문화재를 향유한다고 하잖아요. 말 그대로 재밌게 체험하고 쉽게 익히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요.”  

그는 앞으로 건립될 당인리 발전소에 관해 기대를 품고 있다. 당인리 발전소는 문체부가 올해 공사를 시작해 문화창작발전소로 재탄생하게 되는 곳이다.  

선상에서 풍경을 바라보는 참가자들.
선상에서 풍경을 바라보는 참가자들.

문화재청은 ‘지역문화유산 활용사업’을 통해 지역 특색이 담긴 지역문화유산 가치를 재발견,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생생문화재를 시작으로 살아 숨쉬는 향교·서원, 문화재야행, 전통산사문화재, 고택종갓집까지 총 5가지 지역문화유산 활용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5가지 지역문화유산 활용사업을 ‘문화유산 유유자적’이라는 통합홍보 브랜드로 아우르며, 더 많은 사람에게 문화유산의 의미와 재미를 전해준다. 올해는 전국적으로 417선을 선보였으며, 앞으로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칠 계획이다. 

배를 타고 한강을 보는 참가자들.
배를 타고 한강을 보는 참가자들.

오늘 하루가 풍성하게 느껴졌다. 생생문화재 ‘양화나루에서 놀아보세’에 참여한 까닭이다. 몰랐던 문화재를 알게 됐고, 역사를 되돌아봤으며, 한강을 거스르며 가을을 즐겼다. 이를 통해 일상에서 좀 더 힘이 나지 않을까(가성비로 만점이다). 편안히 먼 곳을 다녀온 듯했다. 그것도 시·공간을 넘어. 

“어머 저녁도 아직 안 되었어.” 

누군가의 말에 시계를 봤다. 나도 놀랐다. 시·공간을 넘어 한강을 누비며 생생한 문화재를 익혔다. 이 모든 걸 누리는데, 채 4시간도 걸리지 않았다는 걸.         

지역문화유산 활용사업 누리집 : https://cha.go.kr/eventInfo/index.do
생생문화제 누리집 : https://www.cha.go.kr/html/yuyu2021/seng/html/main.html



김윤경
정책기자단|김윤경
otter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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