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한낮에 버스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버스 안은 냉방이 잘 되어 있어서 시원했다. 하지만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뜨거워서 시원함도 잠시였다. 잠시 도로에서 버스가 멈춰 서 있을 때였다. 창밖으로 살수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물자동차라고 부르는 살수차의 앞뒤에서 물을 내뿜고 있었다. 물이 바닥에 흥건해지자 햇빛으로 인해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의 열기가 차츰 식어가고 있었다.
그때 도로 위를 질주하면서 달리는 오토바이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오토바이 뒤에 트렁크가 달린 것으로 봐서 배달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이동노동자인듯 했다. 한낮에 냉방이 가동되는 버스 안에서도 더위를 견디기 힘든데 도로 위에서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분들은 어떨까?
지루했던 장마가 끝나고 8월에 접어들면서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폭염은 매우 심한 더위를 뜻한다. 우리나라 기상청에서는 일최고 체감온도가 33℃ 이상인 날을 폭염으로 정의하고 있다. 연일 폭염이 지속되면서 모두가 힘들겠지만, 특히 야외에서 작업하는 현장 근로자, 농어업인, 냉방시설이 없는 비좁은 공간에서 지내고 있는 취약계층 등은 더욱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기엔 이동노동자도 포함된다. 이동노동자는 배달종사자, 요양보호사, 대리운전기사, 택배기사 등 이동이 빈번한 직업군에 해당하는 이들을 일컫는 용어이다. 폭염에도 길거리를 오가면서 일해야만 하는 이동노동자에겐 지금의 한여름이 고역일 것이다. 마침 고용노동부에서 서울 각 자치구와 함께 ‘이동노동자 무료 생수 나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반가운 소식이다.
집 근처 북창동에 이동노동자 쉼터가 있다. 휴서울이동노동자 북창 쉼터이다. 코로나19 시기에 그곳을 방문해서 취재했던 적이 있다. 8월의 폭염에도 거리를 오가면서 근무하는 이동노동자들은 어떤지 궁금했다. 이동노동자가 많이 몰린다는 오전 11시경 그곳을 방문했다. 코로나19 때보다 이용자 수가 많이 증가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동노동자들이 하나둘씩 쉼터에 들르고 있다. 쉼터에 들르면 그들을 반겨주는 쉼터 직원들이 있다. 눈인사를 나눈 뒤 곧장 커피나 차를 타서 테이블의 빈 좌석으로 간다. 처음엔 한두 분이 앉아 있던 테이블에 10여 명 남짓 모여들었다.
쉼터에서 만난 신종주(70세) 씨는 “이런 쉼터가 없다면 우리 같은 이동노동자가 쉴 곳이 없어요. 여름에는 땀을 많이 흘리니깐 땀 냄새가 심해요. 냉방이 가동되는 실내에 들어가긴 그렇고 야외 그늘에서 부채질이나 하는 정도였죠. 이동노동자를 위한 쉼터가 있으니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아울러 “폭염예방물품으로 쿨토시, 냉감수건 등을 받았는데 물을 여러 병 제공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역시 쉼터에서 만난 이동수(63세) 씨는 평일 한낮에 출근하듯 쉼터를 방문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마냥 쉬고 있지는 않다. 스마트폰 두 대를 들여다보면서 서비스 호출을 기다리고 있다. 폭염예방물품을 제공해주는 게 도움이 된다면서 쉼터에 비치된 식염포도당은 땀을 많이 흘렸을 때 효과가 컸다고 한다.
“폭염에도 견뎌내야죠. 제 일이니깐요. 물을 하루에 한 병만 제공하는데 이를 더 늘려준다면 좋겠어요.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면서 갈증이 심해요. 그럴 때 물이 가장 필요한데 한 병으로 제한한 게 아쉬워요”라고 말했다.
북창쉼터 양용민 간사는 혹서기나 혹한기에 이동노동자들의 방문이 늘어난다고 했다. 최근 두 달 간 하루에 평균 100명이 다녀갈 정도로 이용자가 급증했다. 봄이나 가을엔 야외활동하기 좋은 기온이어서 쉼터 이용자들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양 간사는 “우리 사회 곳곳에 이동노동자가 많지만, 이분들이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지내왔어요. 정부나 지자체에서 이동노동자를 위한 쉼터를 조성하고 건강상담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곳곳에 거점 쉼터 이외에도 간이 쉼터나 찾아가는 이동노동자 쉼터가 많아져서 길거리를 오가다 가까운 쉼터가 보이면 잠시라도 편안히 쉬어갈 수 있다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강남파이낸스 빌딩 뒤편을 지나다 이동노동자 쉼터를 봤다. 강남구 이동노동자쉼터, 얼라이브 스테이션이다. 무인 쉼터였다. 출입을 인증해야 입장할 수 있다. 쉼터 옆에 오토바이 주차 공간을 마련해뒀다. 지금 이동노동자를 대상으로 얼음 생수 나눔 캠페인을 펼치고 있었다. 요즘 같은 폭염이라면 누구든 얼음 생수가 반갑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얼.죽.아.라는 신조어가 생겼을까? ‘얼어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꽁꽁 얼려둔 생수라도 폭염에 노출되면 금방 물로 바뀌지만, 그래도 이동노동자의 갈증과 더위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이동노동자 뿐만 아니라 폭염에 취약한 사람들이 있다. 현장 근로자, 농어업인 등 폭염에도 현장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폭염 취약계층을 위해서 정부에서 나섰다. 지난 4월에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는 지자체가 폭염에 선제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폭염대책비 150억 원을 조기 지원했다. 이 액수는 지난해 120억 원 대비 25% 증액한 규모다.
먼저 각 지자체는 야외에서 일하는 현장 근로자와 농어업인 등에게 보랭장구 꾸러미 609개를 배부하고, 133개 장소에 온열질환자 발생 때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응급대처 꾸러미를 비치했다. 보랭장구 꾸러미에는 쿨토시(팔), 쿨스카프(목), 쿨패치(신체 부착), 휴식 알리미 스티커(작업모에 부착해서 온도 감지) 등 온열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용품이 담겨 있다. 또한 응급대처 꾸러미에는 온열질환자가 발생했을 때 현장에서 빠르게 처치할 수 있도록 쿨매트(깔개), 에어백(발 받침), 은박담요(햇빛 가림), 식염 포도당 등이 들어 있다.
행안부는 지난 5월 20일부터 오는 9월 30일까지를 폭염 대책 기간으로 지정해두었다. 주말·공휴일을 포함해 실시간으로 피해 상황을 확인하는 등 폭염상황관리에 빈틈없이 대응하고 있다. 행안부나 지자체에서 안전 안내 문자를 보내고 있다. “폭염경보에 야외 활동을 자제, 충분히 물 마시기, 그늘에서 휴식, 양산 착용 등 건강관리에 유의하세요”라는 내용이다.
폭염에 장시간 노출되면 온열질환에 걸리기 쉽다. 흔히들 어르신이 “더위 먹었다”라고 표현하는 게 온열질환이다. 나도 며칠 전 한낮에 바깥에 나갔다가 뜨거운 햇볕에 그만 머리가 어지러웠던 경험을 하자 얼른 실내로 들어갔던 적이 있다. 온열질환을 예방하려면 가장 더운 시간대인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야외작업, 운동 등을 자제하고 시원한 곳에 머무르는 게 좋다. 자신의 건강 상태를 살피며 활동 강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다만 부득이하게 야외에서 활동해야 할 때 시원한 물을 휴대하면서 수시로 마시고, 또 중간에 잠시 시원한 곳에서 휴식을 취한다.
전국 곳곳의 공공기관(도서관, 복지관, 주민센터, 경로당 등)을 무더위쉼터로 지정해서 운영하고 있다. 건물의 출입구에 ‘무더위 쉼터’ 안내판이 붙어 있다. 또한 이동노동자처럼 길거리를 이동한다면 잠시 휴식을 취할 곳을 알아두면 좋다. 서울에서는 신한은행, KT 대리점, 편의점 등을 ‘기후동행쉼터’로 지정하고 있다. 매장 앞에 ‘기후동행쉼터’가 표시되어 있다면 누구든 그곳에서 쉬어갈 수 있다.
폭염에 절대 무리해선 안 된다. 일도 중요하지만 건강이 더욱 더 중요하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말고 적절히 대처한다면 폭염에도 건강하고 안전하게 여름을 날 수 있다. 폭염이 우리를 괴롭힌다고 해도 이 또한 시간과 함께 지나갈 것이다.
질병관리청 누리집 폭염관련 정보
https://www.kdca.go.kr/contents.es?mid=a20205050300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윤혜숙 geowins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