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드라마나 법정 드라마, 때로는 사극 드라마를 볼 때면 배우들이 하는 대사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자막처럼 달리는 용어 설명이 아니라면 뜻도 모른 채 지나갈 뻔한 대사들도 많다. 드라마를 시청할 때만 있는 일이라면 괜찮겠지만, 생각보다 우리 일상에서 전문 용어를 접할 일이 빈번하다.
계약서를 써야 해서 관련 법령을 찾아봐야 한다거나, 몸이 아파 증상을 검색해본다거나, 공부하다가 조금 더 어려운 개론서를 찾아본다거나. 이럴 때마다 단어를 몰라 문장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답답한 마음이 커진다.
이럴 때일수록 사전을 찾아봐야 하는데, 간혹 사전에 있는 표현도 어려워 잘 와닿지 않을 때가 있다. 그냥 국어사전을 봐야 하는 건지, 지식백과 사전을 찾아봐야 하는 건지. 시사 사전은 어디서 볼 수 있는 건지도 헷갈린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바로 얼마 전인 9월 30일에 새로 나온 ‘온용어’ 플랫폼(https://kli.korean.go.kr/term)을 추천해주고 싶다.
‘온용어’는 국립국어원에서 시범 운영하고 있는 전문 분야 용어지식 플랫폼을 이른다. 누구나 쉽게 단어와 뜻풀이를 찾아보고 활용할 수 있도록 제시되어 있는데, 각 기관이나 분야에 따라 사용되던 용어의 뜻풀이를 이곳에서 한 번에 모아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게 큰 특징이다.
단순히 단어와 뜻풀이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단어를 완전히 내면화할 수 있도록 단어의 정의문, 단어를 사용한 문장 예시, 원어 정보 등이 함께 나열되어 있어 다양한 분야의 단어를 공부하기에도 적합한 플랫폼이다.
사실 내가 온용어 플랫폼을 알게 된 건 지난 여름이다. 학교 교수님의 과제에 보조 연구원으로 참여하면서 온용어 플랫폼의 단어 시스템을 이용해볼 일이 있었다. 당시 내가 참여했던 과제는 남한과 북한에서 차이를 두고 발음하거나, 뜻풀이를 다르게 사용하는 외국 고유명사의 뜻풀이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작업한 외국 고유명사 비교 자료를 온용어에 등재할 예정이라고 소개해주셨다.
남한에 사는 우리가 왜 북한의 명사까지 알아야 하는 걸까? 의문이 들어 교수님께 여쭤보았더니, 세계화 시대가 다가오면서 다양한 외국 고유명사도 우리 언어 생활에 반영되고 있는데, 남과 북이 분단 된 지 오래되어 언어 간극이 넓어질 우려가 있다며,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 일상과 사회에서 널리 쓰이는 외국 고유명사가 각각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릴 필요가 있다고 설명해주셨다.
전문 용어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우리 생활에서 쓸 일이 없을 것 같고, 그 단어를 이용해 문장을 만들 일이 없을 것 같더라도 관심을 전혀 두지 않는다면 언어 사용자 사이의 간극이 커질 것이다. 사용 언어의 간극이 커지면 결국 의사소통이 어려워진다. 의사소통이 어려워지면 서로 간에 거리감이 깊어질 뿐이다. 소통의 편리함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다양한 분야의 전문용어를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온용어 플랫폼에 접속하면, 검색어 창과 인기 검색어 항목이 가장 먼저 보인다. 10월 7일 기준으로 인기 검색어 1위는 ‘가상^화폐’다. 가상 화폐의 뜻이 뭐지? 온라인에서만 쓰이는 화폐라는 것 정도는 알지만, 좀 더 명확한 뜻풀이를 알고 싶어 눌러보았다.
다음과 같이 뜻풀이를 확인할 수 있다. 대분류와 중분류도 확인할 수 있어 사회과학 용어 중 경제학 용어로 분류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해당 용어가 등록되어있는 출처도 볼 수 있다. ‘가상^화폐’는 국립국어원의 뜻풀이뿐만 아니라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의 정보 통신 용어 사전에도 등록이 되어 있다. 각기 다른 자료집에 실려 있지만, 같은 형태와 개념을 지닌 용어는 ‘일치어’로 연결되어 있어서 각 분야별로 어떻게 단어가 활용되는지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의 ‘가상^화폐’ 뜻풀이는 단어 옆에 별이 4개가 칠해져 있고,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의 ‘가상^화폐’ 뜻풀이는 단어 옆에 별이 3개가 칠해져 있다.
이 별들은 각각 의미를 담고 있다. 초록색 별은 ‘분야’, 보라색 별은 ‘정의문’, 주황색 별은 ‘사용 예시’, 파란색 별은 ‘원어’ 정보를 담고 있다는 뜻이라, 별이 많이 칠해져 있으면 칠해져 있을수록 용어 정보가 더 잘 갖춰져 있다는 의미이다.
만약 분야, 정의문, 사용 예시, 원어 정보 중 정보가 확인되지 않는 분야는 각각 점선으로 된 별로 표시된다. 따라서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의 ‘가상^화폐’의 경우는 사용 예시 정보가 없다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용 예시를 볼까? 다음의 사진과 같이 해당 단어가 어떻게 실제로 활용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기사에서 활용되었던 예시가 많은데, 해당 예시를 읽어보면 내가 어떤 상황에서 이런 단어를 활용하면 좋을지, 내가 검색한 단어와 어울리는 또 다른 단어는 무엇이 있는지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다.
그 아래로 조금 더 내려가 보면, 용어 개념도를 확인할 수 있다. 용어 개념도는 내가 검색한 용어를 중심으로 용어 간의 관계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창이다. 마인드맵과 비슷한 형태로 그려져 있는 이 개념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정의문에서 추출한 용어, 관련 용어, 참고어, 일치어, 다듬은 말, 표준 전문 용어 등으로 이뤄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온용어에 등록되어 있는 일치어는 눌러볼 수도 있는데, 단어 옆의 돋보기 아이콘을 누르면 일치어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페이지를 번거롭게 왔다갔다 하지 않고도 일치어 정보를 함께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해당 단어의 뜻풀이를 읽어보고도 언제 사용하면 좋을지 잘 와닿지 않는 학생 이용자 등에게 정의문 추출 용어도 꼼꼼히 읽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정의문에서 추출한 용어를 읽어보면, 해당 단어가 어느 단어와 결합해서 주로 쓰이는지를 알 수 있다. ‘가상^화폐’의 정의문 추출 용어를 보면, ‘온라인’, ‘시장’, ‘상거래’, ‘화폐’, ‘사용’ 등의 단어가 나열되어 있다. 가상 화폐의 개념을 정리할 때 정의문 추출 용어를 함께 덧붙여가며 내면화하면, ‘가상 화폐’는 ‘온라인’에서 ‘상거래’를 할 때 ‘사용’하는 ‘화폐’라고 뜻을 추측할 수 있다.
하단 끝까지 내려보면, 그 단어를 어디서 썼는지 기사 자료나 논문 자료를 함께 볼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제공하고 있는 자료와 디비피아(DBpia)에서 제공하고 있는 논문 자료를 바로 연결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심화된 자료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단어 공부뿐만 아니라 단어를 통해 그 분야의 지식도 한 번에 공부할 수 있어서 요모조모 쓰임새가 좋은 플랫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 기관과 단체에서 수집한 용어는 2023년에 확립된 ‘국가과학기술표준분류체계’에 따라 분류되어 있다.
국가과학기술표준분류체계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2022년에 처음 만든 분류 체계인데, 5년마다 새롭게 개정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용어를 검색하면 해당 창의 왼쪽에서 대분류가 어떻게 되는지, 중분류는 어떻게 나뉘는지 알아볼 수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특정 장르를 선택해 소설 습작을 쓸 때마다 조금 난감해지곤 했었다. 글은 잘 쓸 수 있지만, 범죄 소설을 쓰고 싶으면 수사, 혹은 법률과 관련된 전문 용어를 알고 있어야 하며, 수학자를 주인공으로 등장 시키고 싶으면 수학과 관련된 배경 지식을 조사해야 한다. 배경 지식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 용어를 익혀 놓으려고 해도,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몰라 막막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국가과학기술표준분류체계에 따라 흩어져 있던 용어들을 한 번에 찾아볼 수 있어서 너무나 편리해졌다.
분야별로 단어가 정리되어 있어서 좋은 점은 한 가지 더 있다. 만약 내가 수학과 관련된 단어를 많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면, 분야별 찾기 항목에서 대분류 ‘수학’을 누르고, 중분류에 해당하는 ‘대수학’, ‘해석학’, ‘위상수학’ ‘기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수학 용어를 한 번에 찾아볼 수 있다.
앞서 예를 들었던 것처럼, 의학 드라마를 시청하다가 의학 용어를 더 배워보고 싶어졌다면 ‘온용어’에 접속해서 분야별로 분류된 단어들을 한눈에 모아서 읽어볼 수 있다.
내가 특히 좋다고 느꼈던 부분은 표준 전문 용어와 새말모임 다듬은 말 정보를 함께 공개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표준 전문 용어는 중앙행정기관에서 전문 용어 표준화 절차를 거쳐서 소개하고 있는 용어 정보들을 이르며, 새말모임 다듬은 말은 새로 유입된 외국 용어를 문체부에서 쉬운 우리말로 다듬은 용어 정보를 이른다.
최근 무분별한 외국 용어 사용으로 인해 바른 한글을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마침 2024 한글주간의 주제도 “괜찮아?! 한글”이다.
우리말로 순화할 수 있는 용어까지도 외국 용어를 가져와 사용하는 실태를 반성하고, 바른 언어생활을 장려하는 취지에서 지정된 주제라고 한다. 나 역시도 그 취지에 동의하는 한편, 지금까지 외국 용어를 너무 빈번하게 사용해와 어떻게 바꿔서 사용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온용어에서 표준 전문 용어와 새말모임 다듬은 말을 직접 제시해주니 조금 더 쉽게 우리말로 순화된 용어를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 소개해주고 싶다.
현재 온용어에 등록된 공개 용어 수는 10월 7일 기준으로 1,014,223개이다. 그리고 앞으로 공개될 용어의 수는 1,182,314개라고 한다. 이렇게 등록된 용어와 등록 예정인 용어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의 용어집을 지속적으로 정비하고 등록할 예정이라고 한다.
온용어가 더 빠르게 발전하려면 우리가 그만큼 많이 이용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온용어는 내년 세종 탄신을 맞아 정식으로 개통할 예정이라고 한다. 전문 분야 용어의 뜻을 알고, 활용하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이제는 ‘온용어’를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