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무형유산이란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되어 온 무형의 문화적 유산 중 보존, 전승이 필요한 종목에 대해 국가유산청장이 지정한 무형유산을 말한다. 전통 공연, 예술, 전통 기술, 전통 지식, 구전 전통 및 표현, 전통 생활 관습, 의례·의식, 전통 놀이·무예처럼 다양한 분야의 종목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해 관리해오고 있다.
형상이나 형체가 없는 유산이기 때문에 주로 해당 무형유산의 기능과 예능을 전형대로 체득하고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을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로 인정해 국가무형유산 전승을 활성화한다. 반면 ‘김치 담그기’, ‘장 담그기’ 등 같이 전 국민이 전승하고 향유하는 전통 문화는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는 인정하지 않고 종목 자체를 지정하여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한다. 2021년 11월 1일 이전까지 총 12건이었던 종목 지정 국가무형유산은 ‘떡 만들기’가 추가되면서 13건이 되었다.
백일상이나 돌상, 명절, 전통 혼례에는 빠질 수 없는 떡. 새해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먹는 떡국, 이사나 개업 시,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 개업 떡, 이사 떡….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떡 만들기’가 국가무형유산일까?’ 그러나 한국인이 일생 동안 거치는 각종 의례와 행사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음식이자 이웃 간의 정을 나타내는 문화의 상징이 바로 이 ‘떡’이기 때문에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것이다.
K-컬처의 확산에 힘입어 K-푸드가 인기를 얻으면서 K-디저트까지 함께 유행을 타고 있다. K-디저트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가 떡이다. 그간 떡은 해외에 Rice cake 또는 Korean mochi로 소개되어왔다. 하지만 Rice cake은 말랑말랑하고 쫀득쫀득한 이 야릇한 음식을 담기에는 한계가 있는 단어이다. 게다가 Korean mochi는 한국인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소리!
이에 국가유산청은 우리 유산의 고유한 이름을 해외에서도 그대로 사용하고, 우리 유산의 고유한 뜻을 온전하게 전할 수 있도록 <우리 유산 이름 그대로 쓰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2024년 처음으로 캠페인이 추진되는 만큼 한복, 떡, 김밥 등 30개의 대표 유산을 선정해 집중 홍보한다.
국가유산청의 <우리 유산 이름 그대로 쓰기> 캠페인은 나에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해외에서 가장 먼저 듣는 인사말이 “니하오” 또는 “곤니치와”에서 “안녕하세요”로 바뀌기까지 걸린 30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더군다나 ‘찹쌀떡’을 ‘모치’로, ‘한복’을 ‘한국식 기모노’로, ‘만화’를 ‘한국식 망가’로, ‘설날’을 ‘중국 설날’을 소개하던 프랑스어권 외신 시정 업무를 하면서 한국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우리 유산 이름 그대로 쓰기>는 높아진 한국의 위상과도 관계가 있다.
중국 정부가 ‘중국 설날’을 소프트파워 도구로 사용했다고 보도한 프랑스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중국 설날’을 해외에 지속적으로 홍보한 결과, 한국을 포함해 음력 설날을 기념하는 아시아 국가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중국의 문화적 영향권에 자유롭지 못한 프랑스의 공식 누리집이나 미디어에서 각 나라의 설날을 ‘중국 설날’이라는 용어로 소개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억울한 일이지만 사실 유럽과 중국, 일본 간 문화 교류의 역사는 깊다. 17-18세기의 시누아즈리, 19세기의 자포니즘 등 이미 몇 세기 전부터 중국풍, 일본풍 문화는 유럽을 휩쓸었다. 후발 주자 한국의 위상은 21세기가 되어서야 ‘한류’로 대표되는 K-컬처의 열풍에 힘입어 급부상했다. 이처럼 문화의 힘은 강력하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한국 웹툰이 인기를 끌면서 망가가 아닌 웹툰을 표기하는 등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중국어나 일본어에 빗대지 않고 한국어 단어를 그대로 표기한 외신이 많아지고 있다.
현재 국가유산청은 2025 캠페인에 사용할 단어를 선정하기 위해 국민의 의견을 수렴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기모노’, ‘다다미’라는 용어로 종종 표기되는 태권도 ‘도복’과 ‘장판’이 추가되면 좋겠다. 유산의 범주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무형유산이자 올림픽 종목이니 만큼 추후에는 유산 관련 용어까지 확대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그에 더해 앞으로 <우리 유산 이름 그대로 쓰기> 캠페인이 잘 정착되어 국가유산청이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장기적 관점을 가지고 소중한 우리 유산의 고유한 이름을 세계화하고 개념을 선점하는 일이 널리 확산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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