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자주 이용하는 다중이용시설을 꼽아봤다. 도서관, 서점, 엘리베이터, 지하철 등이 있다. 이런 시설을 이용할 때마다 아름답고 쾌적하다는 느낌이 들면 어떨까? 아마도 제 집 드나들 듯 이용하고 싶어질 것이다. 집 주변에 그런 시설이 있다.
서울특별시교육청 마포평생학습관(마포구 홍익로2길 16) 5층에 자리한 ‘마포리움’이 있다. 매주 1, 2회 드나드는 도서관이다. 도서관이라고 하면 맨 먼저 열람실이 떠오른다. 내 머릿속에 각인된 열람실의 이미지가 있다. 널찍한 공간을 둘로 나눠서 한쪽은 책장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고, 나머지 한쪽은 커다란 테이블이 여럿 놓여 있다. 책장에서 책을 꺼내면 테이블에 똑바로 앉아서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자세로 시선을 책에 고정하고 있다. 그런데 마포리움은 익히 알고 있었던 열람실과 다른 모습이다.
여느 열람실과 달리 층고가 높고 통유리창이 많아서 밝고 쾌적하다. 또 북카페처럼 조성되어 있다. 늘 음악이 흐르고 커피 등의 음료를 마실 수도 있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소곤소곤 얘기를 나눠도 개의치 않는다.
또한 창가 쪽에 빈백이 있어서 누구든 편안하게 앉거나 누워서 책을 읽는다. 창가 쪽의 빈백은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도서관에 방문할 때마다 빈백의 자리를 노리고 있지만 비어 있었던 적이 없었다. 도서관이라고 하면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연상되는데 이곳을 드나들면서 도서관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꿀 수 있었다. “도서관이라고 해서 무조건 조용해야 한다”라고 정해둔 법은 없을 테니깐!
이사를 온 뒤 집 근처에 있는 서점을 검색해봤다. 가장 가까운 서점이 ‘여기 서울 149쪽’으로 뜬다. 서점의 이름부터 범상치 않았다. 성요셉아파트 건너편에 있다고 하니 그곳을 찾아가 봤다. 경사진 길로 접어드니 멀리 우측에 성요셉아파트가 있다. 아주 오래된 아파트라는 느낌이 외관에서 느껴진다. 맞은 편에 두 채의 건물이 세로로 이어져 있다. 통유리창으로 되어 있어서 내부가 환하게 보인다. 책장에 책이 가득한 것으로 봐서 이곳이 내가 찾던 서점이라는 것을 바로 인지할 수 있었다. 서점과 아파트 사이의 골목길 곳곳에 싱그런 화분이 있고, 바닥도 화사한 색칠이 덧입혀져서 골목길의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걷고 싶은 골목길로 조성되어 있었다.
과거 이곳은 한낮에도 행인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래된 아파트와 낡은 무허가 판자 창고가 있었던 골목길을 일부러 찾아올 리가 없었다. 그랬던 이곳이 달라졌다. 중림창고 ‘여기 서울 149쪽’(중구 서소문로6길 33)은 과거 낡고 허름했던 창고가 서점으로 변신했다. 중림창고는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 활성화 사업’의 마중물로 지어진 거점 시설이다. 낙후된 중림동 일대의 지역 커뮤니티와 상권을 활성화하기 위해 성요셉아파트 맞은편에 있던 50년 넘은 무허가 판자 창고 부지를 재활용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현재 중림창고에는 주민들의 정기 책 모임인 ‘149쪽 독서 모임’과 취향 커뮤니티 클래스 ‘취향의 제국’을 운영하는 독립 서점 ‘여기 서울 149쪽’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2020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최우수상,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았으니 일부러 찾아올 만하다.
이대역에서 아현역으로 가는 길에 가파른 언덕이 있다. 그 길을 지나치면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주민들을 봤다. 언덕 위에 집이 있는 분들의 고충이 어떨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곳에 ‘북아현동 경사형 엘리베이터’(서대문구 북아현동 251-292번지 일대)가 설치되었다. 고층 건물이나 전철역에서 볼 수 있는 여느 엘리베이터완 다르다. 북아현동 언덕에 거주하는 주민을 위한 편의시설이다. 엘리베이터 설치 전 동네 주민들이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을 이용하려면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언덕을 따라 약 400m를 돌아가야 했다. 경사면을 따라 15인승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면서 노인, 장애인 등 교통 약자를 비롯한 지역 주민의 보행 환경이 개선되었다.
북아현동 경사형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후 나도 엘리베이터에 탑승해봤다. 가파른 경사진 그곳의 풍경이 궁금했다. 예전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가파른 계단을 걸어서 올라갈 자신이 없었다. 지금은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면 된다. 그런데 낮이든 밤이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투명한 에스컬레이터형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몸이 공중으로 뜨니깐 마치 전망대로 올라가는 케이블카에 탑승한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아래를 살펴보니 모든 게 까마득하게만 보인다. 꽤 높은 곳에 올라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동심경로당이 있었다. 경로당을 지나니 동네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엘리베이터가 없었던 과거에 동네 사람들은 가파른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거나 완만한 길로 우회해서 다녀야 했다. 잠시 동네에 머무는 동안 엘리베이터를 오가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고 보니 동네 일대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북아현동 경사형 엘리베이터는 주민을 실어 나르는 엘리베이터의 기능에만 충실한 게 아니었다. 기하학적인 구조물과 투명한 외관, 밝은 조명 등으로 마치 외부에 전시한 설치 미술 작품처럼 보인다. 특히 어두운 밤에 엘리베이터가 조명등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서 동네 분위기를 밝게 바꿔놓았다.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고 지역 명소로 자리 잡으며 지속 가능한 도시 재생의 모범 사례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3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대다수 서울 시민들은 대중교통수단으로 지하철을 이용한다. 어느 날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안전문 승차장에 부착된 지하철 노선도를 봤다. 예전의 지하철 노선도가 아니었다. 새롭게 바뀌었다. 서울 지하철은 1980년대 4개 노선(106개 역)에서 현재 23개 노선(624개 역)으로 확장되었지만, 기존 노선도는 1980년대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새 노선만 추가해 온 탓에 역의 실제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웠고, 환승역과 일반역의 구분도 힘들었다. 또 역 번호 표기가 없어 외국인들이 이용하기 불편했다.
이에 국제 표준인 8선형을 적용하고, 2호선을 원형으로 배치해 인지도를 높였다. 환승역은 신호등처럼 표시해 목적지를 찾기 쉽고, 도심과 외곽 경계, 인천공항, 강 등 주요 지리 정보도 추가했다. 색약자와 시각 약자를 배려한 색상과 패턴을 사용하고, 외국인을 위한 표기도 개선했다. ‘2024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열거한 도서관, 서점, 엘리베이터, 지하철 노선도는 다중이용시설물이라는 점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그게 뭘까? 바로 공공디자인의 우수사례다. 또한 ‘공공디자인 페스티벌 2024’에서 서울 공공디자인 거점으로 선정되었다. 서울 공공디자인 거점으로 선정된 곳에는 ‘공공디자인 페스티벌 2024’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또한 행사 리플렛도 비치되어 있다. 페스티벌 기간 중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마포리움’에서는 체험 활동 프로그램으로 개성만점 마이북, 그 작가의 그 작품, 유 퀴즈 온 더 퍼즐이 있다. 영상으로 화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자체 제작 영상인 〈그 시대의 미술 여행도 상영하고 있다. 사서의 북 큐레이션도 있어서 사서의 사사로운 사색(4색), 열두 달 미술 이야기, 지도 위 미술관 여행 등이 있다. 도서관 관계자에 따르면, 리플렛으로 인해 페스티벌 행사를 알릴 수 있다면서 ‘공공디자인 페스티벌’과 서울 공공디자인 거점에 대해 문의하는 분들도 여럿 있다고 했다.
‘여기 서울 149쪽’에서 독서 모임이 열렸다. “아름다움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심상용 작가의 책 『인생에 예술이 필요할 때』를 읽고 열린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다. 모임은 책에 대한 감상 공유, 발제문을 중심으로 한 대화, 그리고 소소한 활동으로 구성되었다. 페스티벌 기간인 10월 30일(수) 오후 6시 30분부터 모임이 열렸다.
‘북아현동 경사형 엘리베이터’ 1층과 2층 벽면에도 ‘공공디자인 페스티벌 2024’를 알리는 홍보 포스터가 부착되어 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주민들의 눈길이 포스터에 머물러 있다. 그들이 지금 이용하는 엘리베이터가 공공디자인에서 수상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친구와 함께 온 청년에게 물어봤다. 그는 “공공디자인 수상작인지 몰랐어요. 어쩐지 엘리베이터 외관부터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대역 근처에 사는데 오늘 저녁 먹으러 윗동네 음식점을 찾아왔어요. 엘리베이터가 없었더라면 여기까지 쉽게 찾아오지 못했을 겁니다”라고 말한다. 엘리베이터가 이동 약자에게 이동의 편의를 제공하면서 한편으론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던 동네 상권도 활성화하고 있었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공공디자인 페스티벌’은 10월 25일부터 11월 3일까지 열흘간 ‘지역 활성화’를 주제로 열렸다. 2024년 협력도시인 대전광역시와 함께 전국의 기관, 기업, 단체가 공공을 위해 추진하는 다채로운 활동과 공공디자인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전문가-행정가-국민이 모두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졌다. 일상과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 ‘공공디자인 페스티벌 2024’에서 공공디자인의 사회적 역할과 미래를 공유하며 공공디자인의 오늘을 만나볼 수 있다. ‘공공디자인 페스티벌 2024’는 전국 185곳의 공공디자인 거점들과 함께했는데, 올해의 협력 도시로 선정된 대전광역시에서는 37개의 거점과 서울 55곳, 전국 93곳에서는 우수 공공디자인 사례와 함께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이 개최되었다.
서울 공공디자인 거점 코사이어티(성동구 왕십리로 82-20)에서는 공공디자인대상 역대 수상작 전시가 열렸다. 올해의 주제인 ‘지역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21점을 엄선해서 전시하고 있다. 코사이어티가 성수동에 있어서 청년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전시장으로 입장하자 입구에 올해의 대상 수상작인 ‘오목공원 리노베이션’이 있다. 조만간 오목공원을 방문해야겠다고 찜해두고 나머지 전시물을 살펴봤다.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수상했던 시설물이 전시되어 있다.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사진 아래 조형물을 두기도 했다. 그동안 자주 이용했던 시설이 공공디자인 수상작이라는 것을 새삼 인지했다. ‘성동형 스마트쉼터’, ‘안산 도시 자연공원 무장애자락길’ 등등.
전시물을 관람하고 나오는 대학교 4학년 이상목(25세) 씨에게 소감을 물어봤다. 그는 “공공디자인 역대 수상작을 보면서 놀랐어요. 그동안 우리 주위에서 지나치면서 봤던 시설이 공공디자인으로 만들어진 것이네요.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고 편의를 증진하기 위해서 작가들이 고심했던 결과가 디자인에 담겨 있는 거잖아요. 당연하게 이용했던 시설이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던 시간이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공공디자인이라는 무엇일까? 우리는 일상에서 디자인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디자인은 뭘까? 디자인의 뜻을 찾아봤다. 디자인은 목적을 위해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디자인은 단순히 ‘예쁜 것’이 아니라 목적과 의도와 상황에 맞게 ‘설계’되어야 하는 작업이다. 그런 디자인을 공공에도 적용하고 있다. 이른바 공공디자인이다.
공공디자인(public design)은 ‘공공성(public character)’을 표현하는 디자인이다. 공공성이란 ‘한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 사회 구성원 전체와 두루 관련되는 성질’이다. 물론 공공성에 더해 심미적인 아름다움도 갖춰져 있어야 한다. 그래서 공공디자인을 만나면 감탄이 먼저 나온다. 이러한 공공디자인은 개인이나 특정 집단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주변에 공공디자인이 늘어날수록 우리의 일상은 더욱 아름답고 편리해진다. ‘공공디자인 페스티벌 2024’가 열려서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다중이용시설의 공공디자인을 다시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 공공디자인 페스티벌 2024 누리집 바로가기 https://festival.publicdesign.kr/2024/main/index.php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윤혜숙 geowins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