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내가 사는 지역의 한 도서관에서 김영하 작가와의 만남이 있어 갑작스레 내리는 비를 뚫고 다녀왔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대한민국의 경사가 있고 나서라 그런지 아니면 수많은 방송출연으로 얼굴이 제법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인지 강연장에는 여느 도서관 북토크에서는 볼 수 없었던 번호표까지 등장하는 등 그 열기가 대단했다.
김영하 작가가 도서관을 찾은 이유는 인천광역시의 한 도시 한 책 읽기 사업인 ‘2024 미추홀북’으로 <작별 인사>가 선정됐기 때문이다. ‘미추홀북’은 인공지능(AI) 등 과학기술 발전과 급변하는 사회 속 인간성의 가치 변화에 주목해 “인간, 인간성 ‘인간이라면’”을 주제로 정하고, 기관별 도서 추천과 미추홀북 선정위원회, 시민 투표를 거쳐 결정됐다.
그렇다면 과연 ‘한 도시 한 책 읽기’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알고 보니 꽤 역사가 깊다. 1998년 미국 시애틀의 ‘한 도시 한 책 읽기’라는 독서 운동에서 시작된 독서문화캠페인을 2004년 서울문화재단에서 도입하면서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뿌리내렸다. 지역 주민들이 가장 가까이 이용할 수 있는 생활 밀착형 지역 문화 거점인 공공도서관을 중심으로 지역민이 함께 한 권의 책을 정하여 읽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지역 사회 통합을 도모하는 것이다.
나또한 인천에 살며 독서동아리 회원으로 활동하는 만큼 <작별인사>로 회원들과 열띤 토론을 하기도 했다.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지, 우리는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어떤 덕목을 갖춰야 하는지 등. 사실 책이 아니라면 30대 골드미스와, 퇴직을 앞둔 60대 공무원과, 아들을 군대에 보낸 50대 인생 선배와, 나와 차로 30분이나 걸리는 곳에 사는 학부모와 만나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김영하 작가는 강연에서 “책은 대화다”라고 했다. 책을 읽으면서 책 속의 여러 인물과의 대화는 물론, 누군가와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다는 것이다. 책 한 권을 함께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지는 말들이 우리의 일상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는 거다. 이어, 의학의 발달로 우리의 생은 길어지는데 과연 그 ‘긴 노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준비를 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미 그 답을 가진 행운아라고 했다. 평생 지속할 수 있는데다가 재미까지 있고, 대외 활동을 하며 나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독서’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문화체육관광부도 내년도 예산안에 독서 문화 활성화를 위한 내용을 적극 반영했다. 지난 8월 28일 문체부가 발표한 2025년 예산안 보도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부터 7월까지 장관 주재로 5차례 진행한 출판·서점계 간담회 제안사항을 반영해 ▲도서 보급·나눔 사업을 확대(131억 원, 16억 원 증)하고, ▲독서 기반 지역 활성화(7억 원, 신규), 디지털 독서 확산 지원(3억 원, 신규) 등을 통한 책 읽기 수요를 창출(32억 원, 10억 원 증)한다. ▲범출판계 책문화 캠페인 ‘책 읽는 대한민국’(10억 원, 신규)을 추진해 책 읽는 문화를 전방위적으로 확산하고, ▲권역별 선도서점 육성(11억 원, 신규), 디지털 도서 물류 지원(14억 원, 2억 원 증)으로 지역서점 경쟁력을 강화하는 등 출판 생태계 전반에 활력을 높인다.(460억 원, 31억 원 증)
또한 직장인들의 독서 문화 확산을 위한 ‘독서경영 우수직장 인증제’도 올해로 벌써 11년차를 맞이했다. 문체부에서는 매년 독서 친화 경영을 하는 기업과 기관을 발굴해 문체부 명의의 인증을 부여하고 그중 우수 기관을 포상하는데 올해는 역대 최대인 252곳이 인증을 받아 도서 지원 등 후속 지원을 받게 된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서점 앞 오픈런이 벌어지는 등 도서 업계가 대호황을 누리고 있다. ‘2023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 ‘지난해 성인 열 명 가운데 여섯 명은 책을 읽지 않았다’라고 하는데 지금은 그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독서에 푹 빠져있는듯 하다. 지금 대한민국의 어느 도시에서, 어떤 직장에서건 우리는 책을 읽고 있다. 부디 이렇게 읽고 생각하고 대화하는 일들이 계속해서 확산돼 풍성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사회가 되길 바라본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김명진 nanan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