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쯤 흘렀을까.
영화 '동주'를 보고 큰 울림을 받은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오래전부터 윤동주 시인을 좋아했지만, 영화를 통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됐다.
그리고 몇 달 전 영화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와 마주했다.
우연히도 겨울의 끝자락인 쓸쓸한 2월, 이국땅에서 한 사람은 사형을 언도받았고 다른 사람은 숨을 거뒀다.

나라를 빼앗긴 당시의 아픔을 우리는 얼마나 체감할 수 있을까.
2025년은 광복 80주년을 맞는 해다.
그리고 윤동주 시인 순국 8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 깊은 해를 맞아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두 사람은 윤동주와 안중근을 떠올리며 관련 장소에 가서 담당자 이야기를 들어봤다.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특별전에서 만나본 '안중근書(서)'

지난해 10월부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특별전 '안중근書(서)'가 열리고 있다.
'안중근書(서)'는 제목 그대로 독립뿐만 아니라 그의 일생, 특히 글씨를 통한 그의 생각과 정신에 관해 다뤘다.
그렇기에 그의 치열했던 삶을 돌아보고 그가 쓴 한 구절 한 구절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느껴볼 수 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이렇게 많이 볼 기회는 흔치 않을 거예요.
국내·외에 있는 유묵까지 모았거든요. 현재 여기에 18점이 전시돼 있습니다."

전시를 담당했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유정환 학예연구사가 말했다.
전시는 크게 안중근 의사 유묵과 관련된 기록을 볼 수 있는 전시와 체험을 해보는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메인 전시는 안중근의 가문, 신앙. 애국, 의병, 동지, 동양, 평화 등 총 일곱 가지 이야기로 구성됐다.
전시장은 조금 어두웠는데 오래전 화선지나 비단에 쓴 글씨를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서란다.


전시장에 글씨가 많아 어느 것을 봐야 할지 모르겠다면 각 구역 중심에 걸린 유묵에 주목하자.
주요한 메시지를 담고 싶었던 유묵들은 전시장 가운데 배치했다.
특이한 건 일본에서 그의 글씨를 보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유 학예연구사는 일본인 중 안중근 의사 인품과 사상 등에 감회를 많이 받아 기리는 분들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이 사진은 하얼빈 의거 다음 날 찍힌 거예요.
일본 경찰이 한복을 입은 여성이 경찰서 근방에서 아이와 서성이는 걸 보고 안중근 의사 가족이라는 느낌이 들어 묻고 찍었다고 해요."
한 전시품에 눈길이 갔다.
가족사진이다.
그렇지만 안중근 의사는 보이지 않고 부인과 아이들만 있었다.
그 사연을 듣자 왠지 더 마음이 쓰렸다.
아빠의 안위를 걱정하며 살피러 나왔겠지.
안중근 의사를 잃은 가족들 심정까지 헤아리진 못했던 터였다.

안중근 의사 가문에서 받은 훈장들과 종교에 관한 전시도 눈여겨보면 좋겠다.
그가 종교인으로 가졌던 마음은 이 전시를 통해 느낄 수 있다. 또 안중근 의사와 함께한 동지들의 결연한 모습도 함께 보자.

"이 전시가 가장 핵심일 수도 있는데요. 독립이라고 쓰인 글씨입니다. "
내부에 들어가서 본 유묵은 15년 만에 국내에 전시됐다.
글씨는 간결하나 강렬한 힘이 느껴졌다.
특히 그가 서명한 곳에는 안중근書(서)라고 적혀 있었다.
이 전시의 제목과 같다.
더욱이 전시 포스터 등에서 활용한 글씨 모양도 고스란히 따왔다.

"이 전시는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의거를 결행한 모습만이 아니라 왜 그런 의거를 하게 되었을까 하는 걸 담았어요."
유 학예연구사의 말대로 이 전시 내에는 총이나 총탄과 같은 전시품은 없다.
의거는 국권 회복은 물론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일본을 저지하기 위해서라는 그의 동양 평화론에 관해서도 생각해 보면 좋겠다.
더욱이 그가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 15가지를 밝힌 내용부터 순국을 앞두고 강한 의지를 보인 모습을 떠올리자, 그 기개에 다시금 머리가 숙어졌다.

"전반적으로 전시 분위기가 차분하잖아요.
별을 나타내려고 했어요.
천장에서 비추는 별빛을 보면서 저 앞에 적힌 손바닥을 대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안중근 의사가 몸에 별 일곱 개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는 의미도 담았고요."

마지막 전시장을 나서기 전 그의 유언이 적힌 길목에 별이 반짝인다.
그 앞에는 '독립'이란 글자가 더 선명하게 들어온다.
나도 유 학예연구사의 말을 따라 안중근 의사의 손 모양에 손을 대봤다.
전시를 통해 새삼 알게 된 안중근 의사의 또 다른 면이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듯 강렬하게 다가왔다.


전시장 밖 공간에는 안중근 의사 손 모양을 만져보거나 유묵들을 축소해 전시해 놓아 체험해 볼 수 있다.
또 전시 기념으로 안중근 의사의 글씨 중 마음에 드는 엽서 한 장을 선택해 프린트해 가는 걸 추천한다.
엽서에는 7자까지 문구를 넣을 수 있어 우린 '정책기자단'을 새겼다.

전시를 마치고 안내를 해준 유정환 학예연구사에게 궁금한 내용을 문의했다.
Q. 이번 전시에서 어떤 걸 보여주고 싶었는지요.
A. 안중근 의사의 다양한 모습에 중점을 두었어요. 당시 식민지 땅에서 서른 살의 청년이 이런 의거를 할 수 있었는지를 주목해 보고 싶었고요. 또 안중근 의사는 의병과 교육 활동도 하셨거든요. 사실 의병 활동은 실패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하얼빈 의거를 실행에 옮겼던 의지, 감옥 안에서 사상 투쟁을 하고 동양 평화론을 전하려고 하는 그의 강인한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했습니다.
Q. 전시를 기획하면서 에피소드도 있었을 것 같아요.
A. 여러 곳에 있는 유물들을 모으려다 보니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일본에 있는 글씨를 대여하면서 협의, 절차 등이 익숙하지 않았고요. 그 와중에서 또 전시를 보신 분들이 만드신 문화상품이나 편지를 보내주셔서 참 감사했지요.
Q. 전시를 준비하며 학예연구사님도 안중근 의사에 관해 새롭게 느낀 점 등이 있을 것 같아요.
A. 안중근 의사가 참 입체적인 분이신데요. 이전에는 저도 그렇게까지 다방면으로 생각하진 못했던 거 같아요. 전시를 준비하며 제일 먼저 안중근 의사가 남기신 자서전을 읽었어요. 먼저 이분을 이해해야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읽고 나서 그동안 단편적으로 이해했었구나 싶었죠.
Q. 올해 광복 80주년인데요. 이를 기념해 박물관에서 준비하고 있는 전시나 프로그램이 있을까요?
A. 광복 80주년에 관련해 박물관에서도 여러 가지 전시를 준비하고 있고요. 올해 5월부터 아마 계속해서 있을 예정입니다. 그중 8월에 광복의 기쁨과 함께 태극기에 관한 전시가 계획돼 있고요. 이번에 제가 담당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전시와 연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가져 주시면 좋겠습니다.
◆ 청년의 기개, 시인의 곧은 정신이 담긴 '윤동주문학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나와 우리가 찾은 곳은 자하문 고개에 자리한 윤동주문학관이다.
이곳은 2012년 인왕산 자락에 방치된 청운 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조성됐다.
윤동주는 학창 시절, 함께 하숙하던 문우 정병욱과 인왕산에 올라 시정을 다듬었다고 한다.


문학관은 3개의 전시실로 구성돼 있다.
시인채라고 불리는 제1전시실과 열린 우물이라는 제2전시실, 닫힌 우물인 제3전시실이다.
제1전시실 시인채에는 우물을 비롯해 시간순으로 배열한 사진 자료와 친필원고 영인본이 전시돼 있다.
들어가자 한가운데 있는 우물이 눈에 띄었다.
우물은 시인의 생가를 수리하며 나온 목재 널 유구다.
이 우물 옆에 서면 시인이 다녔던 학교와 교회가 보였다고 한다.
윤동주는 이 우물 옆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문득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이 떠올랐다.

제2전시실은 윤동주의 시에 나오는 우물에서 영감을 받아 물탱크를 개조해 만들었다.
이곳은 외부에 있어 두꺼운 철문을 열면 차가운 공기와 함께 펼쳐진다.
중정으로 만들어져 그 길을 걸으며 위를 보면 하늘과 바람 별도 함께 볼 수 있다.
이곳을 따라 제3전시실로 걸으며 윤동주 시집 제목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떠오른 건 비단 나뿐이랴.


제3전시실에서는 영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곳은 저작권으로 촬영이 불가하기에 고스란히 마음속에 새겼다.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라는 영상 속에 흐르는 그의 시와 함께.

매섭게 추웠던 2월의 어느 날, 대한민국 정책기자단들은 한나절 넘게 종로를 다니며 두 독립운동가를 떠올렸다.
그 시절의 심정을 모두 체감하기엔 턱없이 부족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확실한 건 암울했던 시대, 강인했던 두 독립운동가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무언의 힘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내겐 특히 안중근 의사의 별과 윤동주 시인의 별이 기억에 남았다.
언젠가 맞을 광복을 바라보는 희망이었던 두 독립운동가의 별.
광복 80주년인 2025년.
3.1절을 앞두고 독립운동가들이 전하는 용기와 마음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두 곳을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누리집 (https://www.much.go.kr/)
윤동주문학관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jfac_yoondong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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