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또 하나의 명절이 다가온다. 음력 1월 15일인 '정월대보름'이다. 올해는 유독 늦어 양력으로 3월 3일에야 첫 보름달이 뜬다.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날씨와 계절에 관심이 컸다.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정월대보름에는 풍년과 건강을 기원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보름달을 보며 좋은 기운을 받아 소원을 빌고, 오곡밥과 나물·귀밝이술 등 음식을 나누며 부럼 깨기, 달집태우기, 쥐불놀이 등을 즐겼다. 그 의미를 담아 정월대보름을 앞두고 어둑해진 궁궐에서 달을 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2월 24일 저녁,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창경궁관리소가 주최하는 '정월대보름, 창경궁에 내려온 보름달' 행사를 찾았다. 날씨가 궂으면 취소될 수 있어 전날부터 조바심이 들었는데, 다행히 비나 눈은 내리지 않아 입장할 수 있었다.

입구에는 '정월대보름, 창경궁에 내려온 보름달'이라는 안내판과 현수막이 설치돼 있었다. 정전인 명정전에서 조금 더 걷자, 행사장인 양화당이 보였다.

그 뒤로는 황금색으로 빛나는 달 모형과 창경궁 정각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펼쳐졌다. 24, 25일 양일간은 특별히 천체망원경을 통해 목성과 달 표면을 직접 관찰하고 별자리 설명을 듣는 시간도 마련됐다.
행사를 안내하는 담당자는 "달이 메인이긴 하지만 별도 볼 수 있다"라며 "망원경에 끼운 렌즈에 따라 50배에서 100배까지 배율이 달라진다"라고 설명했다. 밤이 깊어지자,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까지 모여들었다.
"와, 저 별이 목성이에요?"
몇몇 아이들이 망원경 앞에 눈을 대며 탄성을 질렀다. 천문대 관계자는 "지금 제일 밝게 보이는 게 목성"이라며 "목성 옆으로 위성도 서너 개 보일 것"이라고 알려줬다.
이어 겨울 밤하늘을 수놓은 별자리를 차례로 설명했다. "겨울철이 원래 밝은 별이 가장 많아 별자리 관측하기에 제일 좋은 계절"이라는 말에 절로 수긍이 갔다. 궁궐에서 달과 별을 바라보는 것이 처음이라 신기했고, 생각보다 많은 별들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예년부터 창경궁에서는 정월대보름 행사를 진행해 왔다. 창경궁관리소 관계자는 "창경궁에는 서울에 남아있는 조선 시대 관천대(천문관측소) 두 곳 중 하나가 있고, 자격루 누기(물시계), 풍기대·측우기 등 천체·기상 관련 역사 유물도 많아, 이곳에서 다채로운 천체 관측 행사를 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양화당 뒤 자경전 터를 가리키며 "이곳은 정조 임금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던 곳"이라며, "보름달을 보며 어머니의 건강을 기원했던 정조의 효심을 되새겨보길 바란다"라는 관계자의 말에 방문객들은 저마다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 외국인 관람객도 반한 창경궁의 밤

이날 행사장에는 외국인 방문객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한국을 세 번째 방문하는 벨기에인 요한(Johan)씨는 낮에 창경궁을 찾았다가 행사 안내 표지를 보고 시간에 맞춰 다시 왔다고 했다.
"창경궁은 오늘 처음 왔는데 정말 아름답다"라는 그에게 정월대보름을 알고 있었냐고 묻자, "오늘 처음 알게 됐다"라며 "벨기에도 부활절처럼 보름달과 연관된 절기가 있다"라고 말해줬다.
그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방문 때 다녀온 경주와 제주가 참 인상적이었다며, 3월 8일 귀국 전에 추천할 만한 민속 행사가 있는지 물었다. 또 천체망원경으로 달과 목성을 보며 우리나라의 천문대에 대해 궁금해했고, 한국의 궁궐이 아름답고 그곳에서 펼쳐지는 의식들이 흥미롭다는 말도 덧붙였다.

프랑스에서 두 딸과 함께 온 부부는 창경궁 야간 관람을 왔다가 우연히 행사를 접하고 열심히 망원경에 눈을 가져다 댔다. 딸이 "잘 보인다"라고 말하자 아빠의 표정이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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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창경궁 야간 관람을 찾는 발길은 이어졌다. 가족과 외국인 관람객이 함께 보름달 모형 앞에서 사진을 찍고, 망원경에 눈을 대고, 달빛 아래 산책을 즐겼다. 담당자는 "야간 개방을 하는 궁이 많지 않다 보니 창경궁과 덕수궁으로 방문객이 많이 모인다"라고 귀띔했다.
◆ 정부, 산림청 산불 강조
정월대보름 전통 세시풍속 중에는 달집태우기나 쥐불놀이처럼 불을 피우는 풍습이 있다. 얄궂게도 오랜 전통이 오늘날에는 대형 산불로 이어지는 위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경남 함양군과 밀양시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의 원인 중 하나도 개인 부주의였으며, 그로 인해 큰 피해가 남았다. 건조한 봄철은 특히 화재에 주의가 필요하다.
산림청은 봄철 산불조심기간을 예년보다 12일 앞당긴 1월 20일부터 5월 15일까지로 운영하고 있다. 올해 들어 산불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건수와 면적이 모두 크게 늘었으며, 정부는 7개 관계 기관 합동으로 지난 2월 13일 '산불방지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국민의 동참을 호소했다.
산림이나 산림 인접 지역에서 불을 피우거나 영농 부산물·쓰레기를 소각하면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산불을 고의로 내면 7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실수로 낸 경우에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전국에서는 정월대보름을 맞아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질 예정이다. 더욱이 36년 만의 정월대보름 개기월식으로 전국 하늘에 '붉은 달'이 떠오른다고 한다. 나도 정월대보름 당일에는 가족들과 음식을 나누고 옥상에서 개기월식을 보며 소원을 빌 생각이다.

천체망원경 행사는 끝났지만 창경궁의 '정월대보름, 창경궁에 내려온 보름달' 행사는 오는 3월 2일까지 이어진다.
오후 6시부터 8시 30분까지 풍기대 주변 대형 달 모형 포토존을 운영, 행사 기간 중 '#창경궁보름달' 해시태그와 함께 사진이나 영상을 SNS(X 또는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창경궁관리소 누리집 온라인 응모 링크를 통해 URL을 제출하면 추첨을 통해 10명에게 선물을 증정한다. 나 역시 예쁜 인증 사진을 찍어 올렸다.


보름달 아래 창경궁 야경은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달을 올려다보며 한 해의 소원을 빌고, 망원경으로 달과 목성을 들여다보는 경험은 도심 한복판에서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우리나라 명절을 외국인들이 흥미롭게 알아가는 모습도 반가웠다. 무엇보다 화재 걱정 없이 예쁜 사진을 남길 수 있어 즐거웠다.
불꽃 대신 달빛으로, 올해 정월대보름에는 창경궁의 달 모형을 찾아 야간 풍경을 즐기며 사진 한 장 찍어보는 건 어떨까.
* '정월대보름, 창경궁에 내려온 보름달' 행사
1. 날짜: 2026.2.24~3.2
2. 궁능유적본부 누리집 (royal.khs.go.kr)
3. 이벤트 응모 (naver.me)
4. 문의: 02-762-4868 (창경궁관리소)
※ 산불 신고: 산불(연기나 불씨)발견 즉시 119 또는 112
☞ (보도자료) 정부, '산불방지 대국민 담화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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