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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탈출구에서 '높은 문화의 힘'까지…백범 김구가 우리에게 남긴 소원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임시정부의 발자취에서 다시 만난 백범의 삶
김구 탄생 150주년 유네스코 기념해…'나의 소원, 평화의 문화'에 담긴 의미
효창공원에서 이어지는 독립의 기억, 미래세대가 계승해야 할 문화강국의 꿈

2026.07.08 정책기자단 조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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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이곳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2018년 중국 저장성 가흥(嘉興)의 김구 피난처. 현지 해설사가 마룻바닥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자,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비밀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이던 공간 아래에는 일본 경찰의 추격을 피해 탈출하기 위한 또 하나의 길이 숨어 있었다. 독립운동은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니라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 이어진 치열한 생존의 역사였다.

가흥 김구 피난처에서 본 비밀 통로.
가흥 김구 피난처에서 본 비밀 통로 (본인 촬영)

백범 김구의 여정은 가흥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상하이에서는 독립 국가의 기틀을 세우기 위한 치열한 외교와 독립운동이 이어졌고, 일제의 탄압이 거세질 때마다 임시정부는 항저우, 전장, 창사, 광저우, 류저우 등을 거쳐 마지막 청사였던 충칭(중경)까지 끊임없이 이동해야 했다.

충칭 청사에서는 김구 선생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으로서 광복을 준비했고, 마침내 조국의 해방을 맞이했다. 도시마다 남아 있는 임시정부 청사는 독립운동의 흔적일 뿐 아니라 나라를 잃은 사람들이 끝까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지켜낸 여정 그 자체였다.

2018년, 국가보훈처 국외사적지탐방으로 본 중경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본인 촬영)
2018년, 국가보훈처 국외사적지탐방으로 본 중경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본인 촬영)

필자는 2018년 국가보훈부 국외사적지탐방을 통해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와 가흥 김구 피난처, 그리고 마지막 임시정부 청사였던 충칭까지 직접 걸으며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그때는 역사 유적을 둘러본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은 화려한 전시관보다도 가흥 피난처의 작은 탈출구였다. 그 좁은 공간은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 요인들이 독립운동을 이어가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절박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본인 촬영)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본인 촬영)

그리고 8년이 흐른 올해, 백범 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을 맞아 다시 그의 삶을 돌아보니 그 작은 탈출구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오늘을 버텨냈던 한 사람의 의지였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자유의 출발점이었다.

정부는 백범 김구 탄생 150주년 '유네스코 기념해'를 추진하며 공식 로고와 슬로건 '나의 소원, 평화의 문화'를 공개했다. 공식 로고는 백범 김구 선생의 초상과 숫자 '150', 한글 '김구'를 조화롭게 형상화했으며, 유네스코를 상징하는 푸른색을 활용해 국제 기념해의 의미를 담았다.

백범 김구 탄생 150주년 공식 로고 (출처=문화체육관광부)
백범 김구 탄생 150주년 공식 로고 (국무조정실)

슬로건은 김구 선생의 대표 저술인 '백범일지'와 '나의 소원'에서 강조한 '문화의 힘'과 '평화'라는 철학을 오늘의 시대정신으로 재해석한 메시지다. 정부는 '가치 재조명', '통합과 연대', '기억과 계승'을 핵심 방향으로 학술대회와 문화 행사,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 등을 이어가며 독립운동가를 넘어 문화와 평화를 꿈꿨던 사상가 백범 김구를 미래세대와 함께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효창공원에 있는 '백범김구기념관'을 다시 찾았다. 중국에서 만났던 임시정부의 흔적이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기념관에는 김구 선생의 생애뿐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 광복 이후의 행적, 그리고 '문화강국'을 꿈꿨던 그의 철학이 다양한 전시를 통해 소개되고 있었다.

백범김구기념관 입구 (본인 촬영)
백범김구기념관 입구 (본인 촬영)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김구 선생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나 가장 부유한 나라보다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꿈꿨다. 그는 우리의 부와 군사력은 국민을 지키는 데 충분하면 되고,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독립운동가의 글이라고 생각했던 문장은 놀랍게도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와 소통하는 방식과도 맞닿아 있었다.

실제로 정부가 이번 기념해의 슬로건을 '나의 소원, 평화의 문화'로 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구 선생이 꿈꿨던 문화강국은 단순히 문화산업이 발전한 나라가 아니라, 문화의 힘으로 평화를 만들고 세계와 공존하는 나라였다.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문화 다양성과 평화의 가치 역시 백범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이번 기념사업은 국내를 넘어 국제사회와 함께하는 프로젝트로 추진되고 있다.

높은 문화의 힘을 강조한 백범 김구 (본인 촬영)
높은 문화의 힘을 강조한 백범 김구 (본인 촬영)

전시관에는 피난길에서 김구 선생을 도왔던 중국인 추푸청 가족과 미국인 선교사 피치 부부의 이야기도 소개됐다. 국적과 언어는 달랐지만, 그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주었다. 독립은 한 사람의 힘이 아니라 연대와 신뢰, 그리고 평화를 향한 공동의 의지가 만들어낸 결과였음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백범 김구를 도왔던 사람들 (본인 촬영)
백범 김구를 도왔던 사람들 (본인 촬영)

기념관을 나와 찾은 서울 효창공원 백범 묘역은 또 다른 울림을 전했다. 조용한 소나무 숲 사이로 이어진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광복 이후 고국으로 돌아온 김구 선생은 이제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국민과 함께 역사를 지키고 있었다. 멀리 중국에서 만났던 임시정부 청사와 피난처의 기억이 이곳에서 하나로 이어지는 듯했다.

백범 김구 선생의 묘 (본인 촬영)
백범 김구 선생의 묘 (본인 촬영)

백범광장에 우뚝 선 동상 앞에서도 한동안 발걸음을 멈췄다. 하늘을 향해 뻗은 손은 과거 독립을 향한 외침인 동시에 미래를 향한 희망처럼 느껴졌다. 7년 전 중국에서 만났던 김구 선생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쉼 없이 이동하던 망명정부의 지도자였다면, 오늘 대한민국에서 다시 만난 백범은 문화와 평화를 통해 세계와 함께하는 나라를 꿈꾼 사상가로 다가왔다.

남산 백범광장과 김구 (본인 촬영)
남산 백범광장과 김구 (본인 촬영)

돌이켜보면 가흥 피난처의 작은 탈출구는 단순히 목숨을 구하기 위한 비밀 통로가 아니었다. 그곳을 빠져나와 이어진 독립운동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했고, 그 위에서 김구 선생이 꿈꿨던 '문화의 힘' 역시 꽃필 수 있었다.

김구 선생은 생애 마지막까지 '높은 문화의 힘'을 이야기했다. 광복을 이루는 것이 끝이 아니라, 세계가 존경하는 문화국가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독립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꿈꾼 문화강국으로 도약한 현재의 대한민국 (본인 촬영)
백범 김구 선생이 꿈꾼 문화강국으로 도약한 현재의 대한민국 (본인 촬영)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아 공개된 '나의 소원, 평화의 문화'라는 슬로건은 그래서 과거를 기념하는 문구에 머물지 않는다. 상하이에서 시작해 가흥과 충칭을 거쳐 서울 효창공원으로 이어지는 백범의 발자취처럼, 그의 꿈 역시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우리가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것은 독립이라는 결과만이 아니라, 문화와 평화로 세계와 함께하길 바랐던 백범 김구의 '나의 소원'일 것이다.

☞ (정책뉴스) 김구 탄생 150주년 유네스코 기념 '공식 로고' 공개

조수연대한민국 정책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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