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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의 할아버지는 자랑스러운 독립유공자

'신청하는 보훈'에서 '찾아가는 보훈'으로…국가가 먼저 발굴하고 예우한다
24개국 1032개 독립운동 사적지 전수조사…해외 독립운동의 흔적까지 국가가 지킨다
'모두의 보훈, 일상의 보훈'…보훈 공간을 국민이 찾고 기억하는 일상 속 역사로

2026.08.14 정책기자단 조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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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되찾은 빛은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이어졌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의 역사가 모두 세상에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맞섰지만, 수십 년이 지나서야 공적을 인정받았고, 누군가의 독립운동 흔적은 이역만리의 낡은 건물과 벽, 작은 비석으로 남아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역사의 흔적도 하나둘 사라지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본 안중근 의사 비석.(본인 촬영)
러시아에서 본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 비석 (본인 촬영)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보훈부는 '신청해야 받는 보훈'에서 '국가가 먼저 찾아가는 보훈'으로 정책의 방향을 전환하고 있습니다. 즉, 미서훈 독립운동가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를 체계적으로 조사·보존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에 정부는 매년 600명 이상의 미서훈 독립운동가 발굴·포상을 추진하고, 24개국 1032개 독립운동 사적지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도 진행할 계획입니다.

그렇다면 국가가 먼저 사람을 찾고 사라져가는 역사의 흔적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광복절을 맞아 친구 가족의 이야기부터 중국 충칭과 러시아 연해주, 국립서울현충원까지 필자가 직접 만났던 보훈의 현장에서 그 의미를 찾아봤습니다.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다녀온 러시아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 (본인 촬영)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다녀온 러시아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 (2019년, 본인 촬영)

◆ 소년이 보여준 용기, 독립유공자 강영준 선생

친구 강태영 씨의 집에는 '독립유공자의 집'이라는 명패가 걸려 있습니다. 집 안에는 할아버지인 고(故) 강영준 선생의 국가유공자 증서도 소중하게 보관돼 있습니다. 강영준 선생은 1925년 10월 19일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제강점기 창씨개명(일본식 성명 강요)으로 '강본영준(姜本永俊)'이라는 이름을 사용해야 했던 강영준 선생은 1943년 서울 경성인문중등학원에 재학하고 있었습니다.

친구의 집에는 독립유공자 명패가 걸려있다.(본인 촬영)
친구의 집에는 독립유공자 명패가 걸려있다. (본인 촬영)

당시는 일제가 태평양 전쟁 수행을 위해 조선에서 식량과 각종 물자를 강제로 거둬들이던 시기였습니다. 18세였던 강영준 선생은 1943년 11월 서울에서 전북 임실에 살던 장인에게 벼 강제공출에 대한 불만을 비롯해 당시 시국에 관한 자기 생각을 담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평범한 편지 한 통조차 자유롭게 쓸 수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강영준 선생은 이 편지로 인해 일제에 체포됐고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러한 공적을 인정해 2017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습니다.

1925년에 태어난 한 소년이 18세에 보여준 용기가 국가의 공식적인 예우로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만약 국가가 남아 있는 기록을 찾아내지 않았다면 항일 활동 역시 가족의 기억 속에만 남았을지 모릅니다. 친구 강태영 씨는 할아버지를 통해 생각하게 된 보훈의 의미에 대해 "일제강점기 당시 할아버지처럼 용기를 낸 사람들을 최소한으로 기억해 주는 것, 잊지 않는 것이 보훈의 의미라고 생각한다."라고 전했습니다.

이 말은 이번 '찾아가는 보훈' 정책이 왜 필요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당사자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후손 역시 조상의 활동을 모두 알기는 어렵습니다. 관련 자료 또한 여러 기관과 국내외에 흩어져 있어 후손의 신청만 기다리는 방식으로는 아직 발견되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이 계속 역사 속에 묻힐 수 있습니다. 국가가 먼저 기록을 찾아 공적을 확인하는 것은 단순히 한 사람에게 포상을 수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름 없이 묻힐 뻔한 한 사람의 용기를 대한민국의 역사로 되돌려 놓는 일입니다.

친구의 할아버지, 고(故) 강영준 선생의 국가유공자 증서 (본인 촬영)
친구의 할아버지, 고(故) 강영준 선생의 국가유공자 증서 (본인 촬영)

◆ 낡은 집과 벽도 역사의 증거…중국·러시아에서 만난 독립운동

사람을 찾아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그들이 활동했던 공간을 지키는 일입니다. 필자는 과거 국가보훈부 주최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에 참여해 중국과 러시아 일대에 남아 있는 독립운동의 현장을 직접 걸었습니다. 중국 충칭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광복을 맞기 전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도시입니다. 1932년 상하이를 떠난 임시정부는 여러 도시를 거쳐 1940년 충칭에 정착했고, 광복을 맞을 때까지 이곳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이어갔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충칭 청사.(본인 촬영)
대한민국임시정부 충칭 청사 (본인 촬영)

충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를 비롯해 임시정부 요인들이 실제 생활했던 공간들을 만났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은 곳은 이동녕 선생이 머물렀던 거주지였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등을 역임하며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이동녕 선생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으로, 주변에 높은 건물들이 들어선 가운데 오래된 건물 한 채가 당시의 역사를 증언하듯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충칭에 있는 이동녕 선생 거주지.(본인 촬영)
충칭에 있는 이동녕 선생 거주지 (본인 촬영)

러시아 연해주에서 만난 독립운동의 흔적도 강렬했습니다. 연추, 현재의 크라스키노 일대는 러시아 지역 '항일의병운동(抗日義兵運動)'의 주요 근거지 가운데 하나로, 많은 한인이 거주하며 독립운동을 이어갔던 곳입니다.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동지들이 조국 독립을 다짐했던 단지동맹의 역사도 이 지역에 남아 있습니다. 현장에서 마주한 것은 거대한 기념관만이 아니었습니다. 비석 하나, 오래된 건물과 벽, 한인들이 살았던 마을의 흔적처럼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것들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연해주 크라스키노의 안중근 의사 단지 동맹비.(본인 촬영)
연해주 크라스키노의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 기념비 (본인 촬영)

사진으로 보는 역사와 그 자리에 직접 서서 바라보는 역사는 분명 달랐습니다. '이곳에 실제로 독립운동가들이 살았고, 이 길을 걸으며 조국의 독립을 꿈꿨구나'라는 사실이 피부로 와닿았습니다. 동시에 '이 공간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이 역사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국가보훈부가 중국·일본·미국 등 24개국 1032개 독립운동 사적지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추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해외의 사적지는 국내 문화유산보다 관리가 어렵고 개발과 노후화 등으로 훼손되거나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찾는 것과 함께 그들이 남긴 역사의 현장을 지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최재형 선생 고택 벽. 안중근 의사가 이곳에서 저격 연습을 했다고 알려졌다.(본인 촬영)
최재형 선생 고택 벽. 안중근 의사가 이곳에서 훈련했다고 알려졌다. (본인 촬영)

◆ 국가가 찾은 역사를 국민이 기억할 때, 비로소 '보훈'이 된다

해외에 남아 있는 독립운동의 흔적을 돌아본 뒤 다시 국내의 보훈 현장을 바라봤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 현충문을 지나면 현충탑을 비롯해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과 여러 추모 시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이름이 새겨진 묘역을 걷다 보면 우리가 누리는 오늘이 결코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독립운동의 현장을 보존하고 잊힌 독립운동가를 발굴하는 일이 국가의 역할이라면, 그렇게 되찾은 역사를 직접 찾아보고 기억하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국민의 몫일 것입니다.

국립서울현충원 무명용사의 탑.
국립서울현충원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 (본인 촬영)

광복 81주년을 맞아 다시 생각한 경험은 서로 다른 장소에 있었지만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희생과 헌신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말입니다. 강영준 선생의 국가유공자 증서에서는 '사람을 찾아내는 보훈'을 확인했고, 중국 충칭과 러시아 연해주에서는 '역사의 현장을 지키는 보훈'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국립서울현충원에서는 그렇게 찾아내고 지켜낸 역사를 국민이 일상에서 기억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보훈은 이미 알려진 영웅을 기념하는 일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한 사람의 이름을 찾아내는 것, 타국에 남겨진 독립운동의 흔적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하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다음 세대가 기억할 수 있도록 이어주는 것까지 모두 보훈입니다. 특히 후손이 직접 자료를 찾아 국가에 신청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먼저 기록을 살피고 사람을 찾아 나선다는 점에서 '찾아가는 보훈'의 의미는 더욱 분명해집니다.

광복 이후 81년이 흘렀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은 그만 기억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독립운동을 직접 경험한 세대가 줄어들고 현장의 흔적도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가 먼저 찾아야 할 이유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용기를 낸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 잊지 않는 것." 강태영 씨가 말한 보훈의 의미처럼 국가가 먼저 잊힌 이름과 흔적을 찾아내고, 국민이 그것을 기억할 때 보훈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오늘 우리의 이야기가 됩니다.

국립서울현충원 현충문.(본인 촬영)
국립서울현충원 현충문 (본인 촬영)

광복 81주년을 맞아 살펴본 '찾아가는 보훈'은 결국 하나의 약속으로 이어집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용기를 냈던 사람을 대한민국이 먼저 찾아내고, 끝까지 기억하겠다는 약속입니다.

☞ (정책뉴스) 국가 위한 희생 잊히지 않게…'찾아가는 보훈' 본격 추진

☞ (정책뉴스) 국립묘지 외 안장된 독립유공자 묘소에 스마트 안내판 설치

조수연대한민국 정책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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