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영웅>포스터 |
시대와 국가의 부당함에 저항하고 마찰을 빚었던 인물이 어느 순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존재로 바뀌었다. 그건 (어쩌면 다른 누군가에겐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다소 놀랄만한 일이었다. 최근 태평양을 사이에 둔 한국과 미국의 박스오피스에서 각기 다른 작품(<연인>과 <영웅>)으로 1위에 올랐던 중국 장이모우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당대 중국 최고의 감독으로 추앙받는 스타 감독. 시대의 변화와 자신에 대한 외부의 요구에 유연하게 대처해온 결과물이란다.
그런 그가 명실상부한 중국 대표 감독으로 부상하면서 만든 첫 작품이 바로 <영웅>이다. 양조위, 장만옥, 이연걸, 장쯔이. 당대의 빛나는 스타 군단이 장이모우 감독 아래 모였다. <영웅>이 갖춘 기본적인 조건은 거의 환상에 가까웠다. 세계 영화계의 ‘영웅’으로 등극할 자격도 있어 뵐 정도다. 각종 중국계 스타들이 총동원된 데다 장이모우의 첫 ‘무협’시도라는 점에서 <영웅>은 주목의 대상이었다.
![]() |
| 자객들은 서로 자웅을 겨루며 '영웅'을 꿈꾼다. |
더구나 <영웅>은 전국 7웅이 군웅할거했던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진압하고 천하통일을 이룬 장본인, 진시황과 그를 암살하기 위한 자객들의 이야기다. 천하통일이 과연 좋은 것이었는지에 대해 차치한다면 진시황은 힘을 내세워 중국을 하나로 만든 첫 주역이었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 소재인가. 장이모우라면 중국의 문화혁명의 유산 속에서 성장한 주역이었고 그가 다루는 역사의 첫 소재가 진시황이라니. 어쩌면 그런 것에 기대를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색감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던 장이모우 감독의 이력에서 보자면 <영웅>은 그 범주의 연속선상에 있다. 화려한 색채의 향연, 장대한 무협시 등 말의 성찬은 영화의 겉껍질을 때깔 나게 포장한다. 스크린에 드러난 영상도 이를 확인하기에 충분할 뿐더러 아찔함을 선사한다. 극 내용에 맞춰 색깔을 바꿔 입으며 현란함을 자랑하는 색감의 향연은 또한 장이모우의 야심을 드러내는 듯 보인다. 진시황이 첫 번째 중국 통일의 야심을 가졌듯 장이모우는 자신의 존재감을 한층 강화하면서 자신이 중국 영화의 자존심임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앞선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볼 수 있었던 현실성과 사실적인 묘사 속에 드러난 색감과는 판이하다. <붉은 수수밭> <국두> <홍등> 등에서 그는 강렬한 색감과 형식적 집착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장이모우는 중국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 색감 속에는 중국의 질곡과 역사가 담겨 있었다.
![]() |
| 황홀한 이미지의 향연, <영웅>을 드러내는 주요 코드다. |
그러나 <귀주 이야기>에서 시작해 <집으로 가는 길> <책상서랍 속의 동화> <행복한 날들>까지 장이모우 감독은 리얼리즘으로 돌아서 인민들의 소박한 가치들에 초점을 뒀다. 그러나 장이모우는 <영웅>에서 또 다시 방향을 바꿨다. 이번에는 장이모우의 야심이 중국 공산당의 대대적인 지원과 중국인들 내면에 둥지를 튼 패권주의와 본격적으로 손을 잡았고 색감은 더욱 현란하게 춤을 추기 시작한다.
사실 <영웅>은 좀 더 흥미진진하고 진시황에 대한 또 다른 평가를 가능케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무명(無名, 이연걸)이란 자가 진시황을 노리던 당대의 대표자객, 파검(양조위), 비설(장만옥), 은모장천(견자단)을 제압하고 진시황 앞에 섰다. 천하를 잡으려는 자와 대표 자객중의 자객 자격으로 그 앞에 선 자. 진시황이 이미 천하를 통일했음을 알고 있는 후세의 관객에게 그같은 대결구도는 무언가 있을 것 같게끔 느끼게 만들지 않는가 말이다.
<영웅>의 영상은 절로 감탄이 새나올 정도이며 한마디로 ‘아트’다. 특히 실제 전통 무술을 연마했던 배우들인 무명(이연걸)과 은모장천(견자단)의 검술 결투장면이나 호수 위에서 펼치는 파검(양조위)과 무명의 대결, 하늘을 온통 뒤덮듯 엄청난 규모의 화살이 쏟아지는 광경 앞에선 입이 딱 다물어질 정도다. 그리고 색감을 따라 펼쳐지는 이야기. 자객 개개인의 사연과 신변에 관한 이야기가 무명과 진시황의 관점으로 차례로 묘사된다. 각자의 관점에서 해석한 이야기에서 사실을 찾아가는 구조. 영화와 관객 사이의 간극이 사실에 접근하는 과정을 거쳐 좁혀질 것인지가 궁금했다.
![]() |
| 파검과 무명은 호수 위에서 절대 무공의 경지를 보이며 결투를 벌인다. |
그러나 영화는 이같은 간극을 좁히는 과정에서 갑작스레 돌변한다. 엉뚱하게도 ‘천하(天下)’를 들먹이며 억지 춘향식으로 심각한 대사를 읊는다. ‘대의(大義)’따지기를 좋아하는 중국 사람들의 품성이 자연스레 발로한 까닭일까. 자객들과 영정(진시황) 사이의 불꽃 튀는 심리적 긴장은 어느새 천하라는 대의명분 아래 풀썩 주저앉는다.
<영웅>은 엉뚱하게도 ‘힘’을 숭상하라는 듯 이야기를 전개한다. 힘이 곧 정의이며 질서를 관장한다는 뜻을 은연중에 살포한다.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자는 하늘의 선택을 받았고 그 운명에 순응하는 자가 통일된 대륙의 백성이 될 자격이 있음을 강변하는 듯하다. 모든 종류의 억압과 폭력도 천하통일 앞에선 정당화되는 논리, 패권주의는 여전히 유령처럼 세상을 배회하고 지배욕을 드러낸다. 미국이 대놓고 그러하듯 말이다.
‘광활한 중국 대륙을 단일화해야 한다’는 명제가 있었던 진시황. 그리고 천하통일을 위해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고 똑같은 목소리로 지지배배 쫑알거리는 대신들. 중국 공산당의 존재가 그 위로 오버랩 된다. 완전 ‘선전’영화에 지나지 않는 모양새다. 중국 대륙은 ‘공산당’의 지배 하에 있고 “까불면 죽는다”는 메시지가 아님 뭔가 말이다.
영정의 암살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전설적인 세 명의 자객을 물리치거나 대신해서 영정의 십 보 앞에서 그의 목을 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진 무명이 뜬금없이 자신의 뜻을 꺾고 마는 것을 보면 그 같은 혐의는 너무도 자명하다. 즉 영정(공산당)앞에 “까불면 죽는다”는 메시지를 함의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영정을 암살하지 않아 죽임을 당한 무명이 '영웅협객'인양 울려 퍼지는 나래이션에서는 실소를 금치 못한다.
![]() |
| 전설적인 자객들을 물리치고 궁궐에 다다른 무명, 과연 그는 영정을 칠 수 있을까. |
<영웅>은 지극히 단순하고 관객을 우롱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인민들을 선동하고 훈육하기 위한 건전(!) 영화나 다름없다. 서구인의 오리엔탈리즘을 자극하며 중국 영화를 세계로 알렸던 장이모 감독은 공산당과의 불화시대를 건넜다. 악연이 인연으로 변질되는 것일까.
어느덧 중국의 ‘국민 감독’ 지위에 올라선 그는 또 다른 꿈을 꾸는 것 같다. 그 화려한 풍경화도 속살을 벗겨보니 스케치도 제대로 안 된 조잡한 낙서였음에 오르가슴은커녕 비애를 느껴야 했던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그 엄청난 규모의 스펙터클과 황홀하고 휘황찬란한 색감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전쟁이나 폭력, 살육은 어떤 방식으로든 정당화될 수 없음을 장이모우는 잊고 있던지, 알고 있지 못했던 것 같다.
국정넷포터 이김준수 jslyd012@lycos.co.kr
정책브리핑 공공누리 담당자 안내
닫기
문의처 :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포털과
| 뉴스 |
|
|---|---|
| 멀티미디어 |
|
| 브리핑룸 |
|
| 정책자료 |
|
| 정부기관 SNS |
|
※ 브리핑룸 보도자료는 각 부·처·기관으로부터 연계로 자동유입되는 자료로 보도자료에 포함된 연락처로 문의
※ 전문자료와 전자책의 이용은 각 자료를 발간한 해당 부처로 문의
이전다음기사
다음기사추억이 담긴 치열한 삶의 현장 재래시장정책브리핑 게시물 운영원칙에 따라 다음과 같은 게시물은 삭제 또는 계정이 차단 될 수 있습니다.
- 1. 타인의 메일주소,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등의 개인정보 또는 해당 정보를 게재하는 경우
- 2. 확인되지 않은 내용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경우
- 3.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시키는 경우
- 4. 욕설 및 비속어의 사용 및 특정 인종, 성별, 지역 또는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용어를 게시하는 경우
- 5. 불법복제, 바이러스, 해킹 등을 조장하는 내용인 경우
- 6.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광고 또는 특정 개인(단체)의 홍보성 글인 경우
- 7. 타인의 저작물(기사, 사진 등 링크)을 무단으로 게시하여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 글
- 8. 범죄와 관련있거나 범죄를 유도하는 행위 및 관련 내용을 게시한 경우
- 9. 공인이나 특정이슈와 관련된 당사자 및 당사자의 주변인, 지인 등을 가장 또는 사칭하여 글을 게시하는 경우
- 10. 해당 기사나 게시글의 내용과 관련없는 특정 의견, 주장, 정보 등을 게시하는 경우
- 11. 동일한 제목, 내용의 글 또는 일부분만 변경해서 글을 반복 게재하는 경우
- 12. 기타 관계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
- 13. 수사기관 등의 공식적인 요청이 있는 경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