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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국제 한반도 포럼(GKF) 기조연설

2025.09.30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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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갑습니다.

통일부 장관 정동영입니다.

냉전과 대립을 넘어 통일을 이루어 낸 독일에서 「국제 한반도 포럼」을 개최하게 된 것을 굉장히 뜻깊게 생각합니다.

임상범 주독일한국대사님, 무에서 유를 창조해주신 이은정 베를린자유대 교수님을 비롯하여 자리를 빛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특별히 멀리 독일까지 함께 오셔서 논의에 참여해 주시는 전문가 여러분께 각별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25년 전, 2000년 이곳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한반도 분단 80년 역사의 분기점을 만들어 낸 연설이 있었습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남북 간 경제협력, 냉전 종식, 이산가족 상봉, 특사 파견 등을 골자로 하는 「베를린 선언」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도적 해결 의지를 밝혔습니다.

이 「베를린 선언」을 촉매로, 석 달 뒤에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 정상간 역사적인 「6.15 공동 성명」이 발표되었을 때, 남북 교류와 협력의 물꼬가 터졌습니다.


2.
하지만 25년이 흐른 지금, 남북관계는 완전한 단절 상태입니다. 역사는 퇴보했습니다.

지난 정부 3년 간 적대와 대결의 정책은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의 기초를 완전히 파괴했습니다.

자유의 북진론, 흡수통일론은 한반도 안의 긴장을 고조시켰고, 북한은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최근 김정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연설을 통해 '두 국가'를 강조하고 남북관계의 '적대성'을 상세하게 언급했습니다.

남북 간 적대성이 지속된다면 국민의 일상을 흔드는 긴장과 불안, 그리고 '코리아 리스크'는해소되지 않을 것입니다.

동북아와 국제사회의 평화도 위협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현상에 대한 소극적 방치가 아닌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현상 변경, 변화를 모색하고 결단할 시점입니다.

3.
저는 동서독 역사의 물길을 화해와 협력으로 돌리고 분단을 극복해 낸 두 가지 요인을 주목합니다.

동서독이 '두 국가'의 현실을 인정함으로써 평화의 발걸음을 뗀 것, 그리고 일관성 있는 접촉과 경제교류를 유지하면서 평화를 더욱 공고하게 만든 것이 그 것입니다.

냉전의 정점에서 동독은 서독의 1민족 1국가론에 대항해서 2국가론, 나아가 2민족론을 주창했습니다.

자국의 독립성과 국가성을 주장하면서 '통일 불가능론'을 내세웠습니다.

이에 서독은 동독을 '외국이 아닌' 특수관계로 규정하면서도, 동독의 '국가성'을 사실상 인정했습니다.

동독의 국제법적 실체를 인정함으로써 화해·협력의 제도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이후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동서독은 정상적인 선린관계 발전을 명시했고, 국경의 불가침성을 재확인했습니다.

국제무대에서의 독립성 보장에 합의했습니다.

이러한 '국가성'의 인정은 두 독일 체제를 고착화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비판도 있었으나, 이후 동방정책의 본격적인 추진을 통해서 동서독 간 교류협력의 폭과 깊이를 넓히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기본조약」 체결 이후, 동서독은 다방면의 실질적 협력을 급속히 발전시켰습니다.

이는 서독 내 정권교체 상황에서도 일관성 있게 유지되었습니다.

동서독은 「기본조약」 7조를 통해, "경제, 과학, 기술, 교통, 법적인 거래, 우편, 통신분야, 의료, 문화, 스포츠, 환경보호 분야에서 협력을 발전시키고 장려"할 것에 합의했습니다.

특히 경제교류로 인해 동서독 간 접촉면은 전방위로 확대되었고, 긴장 완화와 대립관계 극복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일례로 서독의 폭스바겐 자동차 회사는 연 29만 개의 엔진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동독에 투자했고, 여기서 생산한 엔진을 다시 서독으로 반입하는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 동독은 고용 창출, 기술 이전, 자동차산업 현대화의 이익을 누렸고, 서독의 폭스바겐 사도 차량의 생산단가를 낮춤으로써 가격 경쟁력을 낮출 수 있었습니다.

동서독 간 경제교류 확대 속에서 상호 이해의 폭도 넓어졌습니다.

평화가 경제를 더욱 안정시키는 선순환이 이루어졌고,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동방정책은 일관되게 추진되었습니다.

사민당의 동방정책 추진으로 서독인들에게 동독과의 교류협력과 평화는 어느덧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았고, 정권교체 이후에도 동방정책의 실용성과 그 성과는 흔들림 없이 계승될 수 있었습니다.

꾸준히 이어져 온 동서독 간 경제교류의 성과는 통일 이후의 지역 간 격차를 줄여나가는 바탕이 되었다고도 평가할 수 있습니다.

작년 9월 독일 연방정부가 발간한 「독일통일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독일경제 전체가 정체된 가운데, 두 개의 동독 연방주가 경제성장률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언급한 바도 있습니다.

4.
동서독이 걸었던 화해와 협력의 길을 기억하면서 우리 정부는 한반도 평화공존, 공동성장의 미래를 위한 노력을 경주해 갈 것입니다.

첫째로,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출발점은 남북이 오랜 기간 한반도에 사실상의 '두 국가' 형태로 존재해 온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리고 관계의 초점을 '적대성'에서 '평화'로 바꾸는 것입니다.

동서독의 두 개의 국가론이 평화공존의 시대를 열었던 역사를 상기하면서 한국에서도 이미 1,400년 전 통일신라 시대의 고승 원효대사가 가르쳐준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사상, 즉,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는 사상이 한반도의 현실과 미래를 압축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하나가 아닌 둘이지만, 미래에는 둘이 아닌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평화적인 사실상의 두 국가 형태는 전례가 없는 제안이 아닙니다.

우리 정부가 국제 규범, 남북 간 합의, 공식 통일방안에서 30년 이상 일관되게 유지하고 지향해 온 과제입니다.

남북은 1991년 유엔에 동시에 가입한 독립된 두 유엔 회원국입니다.

국제법적으로 주권을 존중받는 두 국가로 인식되어 왔고, 회원국의 주권평등, 영토보전을 명시한 유엔 헌장을 함께 준수할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북은 같은 해,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상호 체제를 서로 인정하고 존중한다', '내부문제 불간섭한다'를 약속한 바 있습니다.

또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2단계인 '남북연합' 단계는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공존공영하면서 평화를 정착시키는" 단계입니다.

이것은 사실상의 '평화적 두 국가'를 의미합니다.

통일을 지향하면서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과도기적인 단계입니다.

통일 지향의 특수관계에 기반한 '평화적 두 국가'는 평화공존의 시대를 열기 위한 대한민국 정부의 주도적인 결단입니다.

남북 간 합의와 국제규범을 함께 지켜 나가자는 원칙의 표명입니다.

지난 정부의 '강 대 강' 대결정책은 우리의 대북정책에 대한 북한의 뿌리 깊은 불신을 초래했습니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언제든지 북한 체제를 부인하고 흡수통일을 시도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평화적 두 국가'는 대한민국 정부가 먼저 남북 간 합의 준수, 그리고 국제규범 준수를 통해서 북한의 체제를 존중하고 인정한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약속입니다.

남북이 화해협력의 파트너로서, 동등한 유엔 가입 회원국으로서 상호 협력을 증진해 나가기를 희망합니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이 먼저,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과 적대 행위의 악순환을 끊어낼 것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8.15 경축사와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서 '첫째,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둘째,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 일체 적대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3원칙을 거듭 천명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상호 인정과 존중의 원칙이 우리 정부 대북정책의 기조가 될 것입니다.

이는 김대중 대통령께서 「베를린 선언」을 한마디로 설명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북한을 흡수 통일하거나 해칠 생각이 없다.

그러니 안심하고 협력해 가자"라는 그런 선언입니다.

우리는 한반도의 갑작스런 통일을 기대하거나 원하지 않습니다.

통일은 점진적이고, 단계적이고, 평화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북한이 의심하는 독일식 흡수통일은 우리가 원하는 통일의 길이 아닙니다.

북한은 정치적 실체가 있는 국가이며, 동독과 북한은 조건과 성격이 다른 국가입니다.

동독은 사실상 소련의 위성 국가였으며, 냉전의 해체기에 스스로 무너져 내렸으나, 현실적으로 한반도에서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평화적으로 공존해야할 시간이고, 적대가 아닌 평화로의 전환이 이루어질 때, 대화와 접촉, 교류의 재개도 논의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 정부는 남북 간 대화와 소통을 복원하고, 남북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교류협력을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서 발표한 「E.N.D」이니셔티브는,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를 중심으로 포괄적인 대화로 한반도에서의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END)하고, '평화공존과 공동성장'의 시대를 열어가자는 구상입니다.

교류, 협력이야말로 평화의 지름길입니다.

남북은 이미 화해와 협력의 역사를 써내려온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 간 인적, 물적 교류는 이산가족, 역사, 문화, 종교 등 다방면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남북 철도·도로 연결 등 3대 경협사업으로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을 이루어낸 바 있습니다.

개성공단에서는 5만 5천명의 남북 근로자가 함께 근무했고, 금강산에 200만 명이 다녀왔습니다.

한반도 평화공존과 공동성장의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다시 시작해야 할 가슴 뛰는 성과입니다.

독일 통일의 설계자라고 불리는 에곤 바르(Egon Bahr) 박사께서 개성공단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에곤 바르 박사께서는 "동독에 서독의 공단을 설치하는 개성공단 같은 발상을 할 수 있었다면 통일 이후 과정이 굉장히 순조로웠을 것"이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남북 공동성장의 천리 길을 향한 한 걸음을 뗄 수 있도록, 정부는 신뢰 회복과 대화 복원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남북 주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호혜적 교류협력의 기반을 회복하면서, 평화가 경제를 발전시키고 경제가 다시 평화를 공고하게 하는 한반도 평화경제의 미래를 구상해 나가겠습니다.


5.
그간 남북 간 '강 대 강' 대결의 시간으로 인해 쌓여온 불신과 긴장의 벽은 아직도 높습니다.

그러나 독일 속담처럼 "모든 시작은 어렵습니다.(Aller Anfang ist schwer)" 하지만 시작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평화의 시대를 향한 대전환을 이루어내기 위해, 우리 정부는 지금 할 수 있는 평화의 조치부터 꾸준하고 일관되게 추진할 것입니다.

저는 20년 전 정치적 재충전을 위해서 이 곳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한 학기를 보내면서 포츠담에 살았습니다.

매일 같이 집 근처 체칠리엔호프 궁전 광장을 돌면서 트루먼과 스탈린, 에트니를 생각했습니다.

'적절한 시점에 자유롭고 독립된 조선이 될 것이다'는 포츠담 선언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소련의 대일 참전을 핵심으로 한 포츠담 합의는 소련의 한반도 진공을 허용하면서 결과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미소 전략경쟁의 장으로 이동시킨 전환점이 분단의 기원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이제 한반도는 과거 강대국들의 임시적이고 편의적인 결정에 따라서 정해진 적대적 분단의 운명을 거부하고, 스스로 평화공존과 평화 통일의 길을 개척해 가야할 용기를 가져야 할 때입니다.

동서 냉전의 절정기였던 1960년대 후반 당시 베를린 시장이었던 브란트 수상은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통일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냐, 만나기라도 해야할 것 아니냐. 먼저 작은 발걸음 정책, 접촉을 통한 변화, 동방정책을 시작해보자'는 구상을 했습니다.

브란트 수상의 그런 고심처럼 분단 80년 우여곡절 끝에 다시 남북 적대 관계로 추락한 한반도에서 해야할 일은 우선 만나야 하고, 만나서 평화 공존의 길을 열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독일이 걸었던 평화와 화해협력의 길에 남과 북도 함께 설 수 있도록, 평화문제의 전문가이신 여러분께서 깊은 통찰과 해법을 제시해 주시는 귀한 자리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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