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불타는 열정만큼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 8월입니다.
시원한 산들바람처럼 잠시 우리의 열기를 식혀줄 8월의 추천 도서를 소개합니다.
1. [문학] 니클의 소년들 | 콜슨 화이트헤드 저 / 김승욱 역, 은행나무
“텔레비전 화면 속 기자의 어깨 위로 솟은 삼나무들을 보니 살갗이 다시 뜨거워지고 말라붙은 파리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것은 결코 멀리 있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책을 소개할 때를 기다려왔다.
독자로서 나는 콜슨 화이트헤드의 소설을 좋아하지만, 작가로서는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콜슨 화이트헤드의 소설은 너무 크고 방대하며 게다가 무시무시하기까지 하니까. 그런 작가에게서 얻을 것은 명백하다. 사회를 보는 눈, 현실을 직시하는 힘, 그리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 태도와 질문들. 그러므로 나는 항상 콜슨 화이트헤드의 신작을 두 번 읽는다. 독자로서 감동하고, 작가로서 배우기 위해서.
『니클의 소년들』은 플로리다 주의 한 남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허구의 장편소설이다. 차별과 폭력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무너지며, 무너진 그 삶을 어떤 힘으로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 혹은 존엄과 구원에 관한 이야기로, 어쩌면 니클이라는 감화원에서 만난 소년들, 엘우드와 터너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 틈에 어? 하고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게 되는 순간이 생긴다. 이 책의 진가는 사실 그때부터다. 이름으로 인물의 특징과 변별성을 만들어내는 명명법, 플롯, 반전, 그리고 주제까지 소설에서 중요한 거의 모든 요소가 이 장편소설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른이 된 소년 중 한 명이 마라톤 경기를 지켜보다가, 자신은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진술을 할 때의 이런 문장은 잊을 수 없다. “뒤에 처져서 절뚝거리는 사람들은 코스를 제대로 달리지 못했지만 자신의 내면을 향해 깊은 곳까지 달려갔다가 거기서 발견한 것을 쥐고 다시 밝은 곳으로 돌아왔다.”
세상에 이야기는 많고 소설도 그렇다. 그러나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 정말 유용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고 쓰는 작가는 그만큼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콜슨 화이트헤드는 회피하고 숨겨버리고 싶은 과거의 그늘을 여기 고스란히 펼쳐 놓는다. 독자여 이것을 보았는가, 이것을 아는가, 그럼 같이 생각합시다, 라고 제안하는 듯하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그가 이 장편소설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고 소개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제 오십 대 초반의 작가가 이 책으로 퓰리처상 100년 역사상 두 번의 수상을 했다는 사실은 말해두고 싶다. 무책임한 어른들, 그들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차별과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당했던 두 소년. 그들이 삶을 이겨내는 이 방식을 보라!
_조경란 위원, 소설가
2. [인문예술] 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 | 권내현, 너머북스
“유유가 일찍이 산에 들어가 글을 읽다가 갑자기 돌아오지 않으니 유예원과 백씨는 미쳐 달아났다고 말하였다. 말이 문밖으로 나갔으나 아비와 아내가 그렇다 하니 고향 사람들은 믿고 의심치 않았지만, 오직 유연만은 만날 수 없음을 슬퍼하였다.”
이 책은 미시사의 대가인 내털리 제먼 데이비스의 『마르탱 게르의 귀향』에서 영감을 얻어 저술한 16세기 조선의 상속 제도에 관한 미시사 연구서다.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 16세기 프랑스 지방을 배경으로 오랫동안 사라졌던 (가짜)남편을 둘러싼 갈등을 소재로 하듯이, 『유유의 귀향』 역시 16세기 대구 지방을 배경으로 가출했던 유유라는 사람이 아버지가 사망한 뒤 집으로 돌아오면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 물론 집으로 돌아온 유유는 진짜 유유가 아니라 그의 행세를 하는 채응규라는 가짜 인물이었다. 종친이자 집안의 사위였던 이지가 유유의 동생인 유연에게 처음으로 그의 형이 생존해 있음을 알리면서 본격적인 사건이 전개된다. 그가 형이라는 것을 믿지 못한 유연이 그를 관아에 고발했지만, 가짜 유유가 보석을 받아 풀려난 후 사라지자 이번에는 재산을 탐내고 형을 은밀하게 살해한 파렴치범으로 몰리게 된다. 결국 유연은 신문 과정에서 고문을 견디다 못해 자백을 하고 능지처참형을 당하게 된다. 실제 유유는 15년 뒤 우연히 발견되어 자신이 유유임을 자백하게 되었고, 아버지의 상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죄로 100대의 장형과 3년 동안의 노역형을 받은 뒤 2년 후 사망한다. 가짜 유유인 채응규는 같은 해 체포되어 압송되던 중 자결하고, 그와 내통한 것으로 의심받은 종친 이지는 고문을 받다가 사망한다. 결국 부실한 수사와 재판으로 만들어진 유연 사건은 한 집안의 몰락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은 셈이다.
이 책의 장점은 이 사건을 소재로 삼아 필자가 조선 시대 상속 제도의 변화와 종법 질서의 확립 과정을 면밀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은 17세기를 전후로 하여 상속제도에서 큰 변화를 보이는데, 이는 17세기 이후 장자상속제를 기반으로 한 종법 질서가 확립되었다는 사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17세기 이전까지 조선 사회에서는 아들과 딸이 모두 균등하게 재산을 분배 받았다. 사위가 처가살이를 하면서 처가의 대소사에 관여를 했고 장인과 장모가 사망한 이후에는 제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이후 경제 상황이 크게 악화되면서 장자를 중심으로 가문의 영속성을 확립하려는 종법 질서가 강화되고 이에 따라 처가살이 대신 시집살이가 보편화되면서 출가한 딸과 사위는 상속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동시에 사색당파의 본격적인 전개 과정과도 연동되어 있었다.
『유유의 귀향』은 상속 문제를 둘러싼 한 집안의 비극을 배경으로 16~17세기 조선 사회의 욕망과 갈등, 관습과 제도를 면밀하게 살피고 있다. 탄탄한 구성과 면밀한 자료 분석, 풍부한 문제의식이 어우러진 흥미롭고 뛰어난 작품이다.
_진태원 위원,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
3. [사회과학]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팽창문명에서 내장문명으로 | 김상준, 아카넷
“그렇다면 바로 지금이야말로 오랜 기간 안정, 평화, 번영을 누리며 존속했던 유교형 내장주권체제의 역사적 경험을 눈을 비비고 새롭게 다시 보고 창조적으로 재해석해야만 하는 때가 아닐까요?”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 사이에 전개된 미소 냉전 시대가 끝나고 미·중 간의 패권 다툼이 경제전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의 운명은 해양세력 미국과 대륙세력 중국의 관계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도광양회, 화평굴기, 일대일로를 내세우며 전 지구적 차원에서 영향력을 높여가는 중국의 미래를 생각해보려는 독자들에게 권할만한 책이다. 중국은 서구 제국주의의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인류 문명을 창조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을 대신하는 또 하나의 패권 국가로 자리 잡을 것인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장기적 전망과 거시적 관점을 취하고 있는 이 책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작은 이야기들’에 묻혀 있던 거대 서사의 부활을 예고한다. 길게 보면 500년, 짧게는 지난 200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서구 중심의 팽창문명과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내장문명을 대비시키고 있는 이 책은 눈앞의 사적 이해 관심을 벗어나 지구적 차원의 기후위기와 범유행, 불평등 심화와 폭력의 증가로 대파국이 예상되는 인류공동체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한다. 무려 2500년 전에 나타난 제1의 축의 시대가 인류사의 거대한 분기점을 이루었듯이 대파국이 예상되는 인류사의 대전환을 위해 제2의 축의 시대가 요구된다는 저자의 주장은 누구라도 경청할만하다. 이 거대한 이야기는 저자의 일인칭 글쓰기가 아니라 네 사람의 화자가 등장하여 물질의 생산과 정치 질서의 유지, 기본 복지의 보장과 사회통합의 모색 등 인간사회의 필수적 요구사항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이상적 방안을 토론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1000쪽 가까운 대작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_정수복 위원, 사회학자/작가
4. [자연과학] 실험실의 진화: 연금술에서 시민과학까지 | 홍성욱, 김영사
“과학의 역사에서 처음을 정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과학의 오랜 진화 과정에서 개념, 이론, 도구들의 다양하고 서로 다른 요소들이 합쳐지고, 그중 어떤 것들은 다시 떨어져 나가면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과학이 태어나는 곳은 실험실이다. 이 책의 말마따나 “과학기술 연구의 8할은 실험이고, 실험의 8할은 실험실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험실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른다. 그저 흰 가운을 입은 약간은 치우친 천재들이 자기들끼리 아는 말로 중얼거리며 신기하고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장소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과학의 역사는 실험의 역사이며, 실험의 역사는 곧 실험실의 역사이다. 인간이 자연을 “고문”하여 자연의 진리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실험실은 과학과 뗄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 그 곳은 초창기에는 부엌, 작업장, 혹은 서재로부터 출발하였을지도 모르나 이제는 거의 한 도시를 차지하는 입자가속기와 같은 실험실, 또는 우주정거장의 실험실까지 매우 다양한 모습을 띤다. 이 책의 미덕은 바로 그런 실험실의 역사를 보여주면서 현대의 과학기술이 하루아침에 어떤 천재의 머리에서 바로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땀과 시행착오와 실수로부터 빚어진 것임을 알려주는 데 있다. 앞으로도 과학기술의 역사에서 이는 되풀이될 것이다. 홍성욱 교수의 과학기술을 모르는 일반인도 읽기 쉽고 평이한 서술을 역시 생명과학을 전공한 박한나 작가의 아름다운 일러스트레이션이 빛내주고 있다. 주제와 형식 양 면에서 이 책은 아름답고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_권복규 위원, 이화여자대학교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5. [실용일반] 세상과 나를 바꾸는 지도, 커뮤니티매핑 | 임완수, 빨간소금
“커뮤니티매핑의 본질을 잘 살리면 미세한 부분에서 사회혁신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혁신은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세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땅에 있는 것들을 잘 관찰할 때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커뮤니티매핑(Community Mapping), 많은 이들에게 낯선 개념이다.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공동체 지도 만들기’다.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 임완수 교수(미국 메해리의대)는 2005년 연말, 가족과 뉴욕에 갔다가 화장실을 찾는 데 애를 먹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뉴욕의 화장실’ 웹페이지(nyrestroom.com)를 만들었다. 한 달 동안 홈페이지를 공개하니 뉴욕 시민들이 각자 아는 공중화장실 위치를 자발적으로 표시해 지도가 완성됐다.
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 동북부를 강타했다. 도로가 막혀 많은 주유소가 기름을 공급받지 못해 혼란이 심했다. 어느 주유소에서 기름을 파는지, 대기 줄이 얼마나 되는지, 언제 주유소를 다시 여는지. 임 교수와 지역 고등학생들은 주유소에 전화를 걸어 지도 위에 데이터를 올리기 시작했다. 주민들도 실시간 데이터를 제공했다. 이렇게 만든 ‘주유소 지도’는 미국연방재난관리국, 구글, 뉴욕시, 백악관에서도 사용했다.
임 교수는 2013년 우리나라에 커뮤니티매핑센터를 설립해 독립운동 순례길, 코로나19 마스크 지도, 폭설 및 지진 지도 등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위치기반지리정보시스템(GIS) 기술이 일반화됐다. 구글이나 포털에서 온라인 지도를 제공한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 정보통신 환경이 향상됐다. 이런 배경에 힘입어 일반인들이 예전보다 어렵지 않게 온라인 지도를 만들어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책에서 임 교수는 커뮤니티매핑의 사례들과 함께 커뮤니티매핑의 정의, 작동 원리 등을 설명한다. 특히 커뮤니티매핑이 지도 만드는 기술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함께’라는 가치가 중요하고 매핑 과정을 조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 행동하여 지역의 문제를 풀어나가고 사회적·공동체적 가치를 창출해내는 활동인 것이다. 그러니 커뮤니티매핑을 우리말로 풀어 옮기면 ‘함께 만드는 공동체 지도’가 적합하다. 커뮤니티매핑을 기획하고 만들어보고픈 의욕을 자극하는 책이다. 물론 혼자가 아니라 함께.
_표정훈 위원, 평론가
6. [그림책·동화] 긴긴밤 | 루리, 문학동네어린이
“이 애를 바다에 데려다줘”우리는 얼마나 ‘긴긴밤’을 지나야 소중하게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긴긴밤』은 지난날의 기억 때문에 악몽에 시달리는 밤, 내일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두려운 밤, 하지만 서로 이해하고 지켜주고 지켜봐주고 그래서 한 걸음 나아갈 힘을 얻는 그런 긴긴밤에 대한 이야기이다.
밀렵꾼에게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은 노든과 동물원에서 나고 자란 펭귄 치쿠는 어느 날 우연히 함께 동물원을 탈출한다. 알 수 없는 폭격(전쟁)으로 아수라장이 된 통에 함께 길을 가게 된 뿔이 잘릴 코뿔소 노든과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펭귄 치쿠, 둘에게 는 각자 해야 할 일이 있다. 노든은 아내와 딸과의 행복한 시간을 빼앗아간 밀렵꾼에게 복수해야 하고, 치쿠는 동물원에서 단짝 친구 윔보와 함께 정성스럽게 품어온 알에서 새끼 펭귄을 무사히 세상에 내보내야 했다. 그렇게 길동무가 된 둘은 바다를 향해 간다. 생명이 위태로운 펭귄을 위해 노든은 일단 복수를 접었다. 이렇게 시작된 이들의 긴긴밤. 노든은 매일 악몽에 시달리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치쿠는 새끼 펭귄을 부화시켜 바다로 보낼 수 있을지 전전긍긍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악몽 같은 밤을 견뎌나간다. 그리고 결국 알에서 나온 아기 펭귄은 바다를 향해 선다.
“나에게는 이름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이 이야기는 나의 아버지들, 작은 알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던 치쿠와 윔보 그리고 노든의 이야기다”라고 시작되는 동화는 아기 펭귄이 화자로 등장해, 자신을 있게 한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다. 결국 자신을 있게 한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혀 관계없는 존재들이 모여 서로 보듬고, 의지하고, 희생하고, 그렇게 세상에 또 다른 존재를 걸어가게 하는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저 바닷물 속으로 곧 들어갈 것을,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을,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 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아기 펭귄의 마지막 말은 삶이 언제나 환할 수만은 없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이야기, 아름다운 그림 그리고 아름다운 문장. 아이와 함께 읽고 함께 울었다는 많은 감상처럼 아마 많은 이들을 울컥하게 할 작품이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_최현미 위원, 문화일보 문화부장
7. [청소년] 소년, 어른이 되다 | 설흔, 위즈덤하우스
“훗날 제자들에게 밝힌 바에 따르면 퇴계는 ‘세 번 연속으로 실패를 했어도 아주 의기소침한 상태는 아니었다’고 고백을 한 바 있다. 진심이었을 것이다. ”
시인 박성우는 『아직은 연두』라는 시에서 “난 연두가 좋아 초록이 아닌 연두” 라고 말한다. 뜨거운 태양과 짙푸른 녹음이 우거진 한여름이 청년과 유사하다면 푸릇푸릇 연둣빛 새싹이 돋는 봄은 소년을 닮았다. 아직 설익은 생각과 감정이지만 단단한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예나 지금이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한 인간의 성숙은 아픔과 고통을 수반한다.
근현대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은 물론이고 역사에 기록된 인물들은 타인과 세상을 위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사람들의 면면을 떠올려보자. 그들을 ‘롤모델’로 삼아 자신을 가다듬는 사람들이 많지만 개인사에 얽힌 고뇌와 유년 시절의 아픔까지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책은 역사에서 일곱 명을 소환한다.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익숙한 사람들을 가려 뽑은 건 작가의 선택이겠으나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그들의 공통점이나 위대함이 아니다. 우리는 이들의 ‘소년’ 시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위인전과 인물 평전은 대체로 한 인간의 특별함과 업적에 치중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점, 마음에 상처와 아픔이 수없이 많았다는 점, 갈등과 고뇌의 순간마다 선택의 갈림길에 있었다는 점 등을 떠올리면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진다.
최치원, 이규보, 이황, 이이, 허균, 박제가, 박지원, 일곱 명의 위인에 대해 다시 주목할 만한 새로운 정보와 지식보다 이들은 어떤 소년이었을지 상상해보자, 소년 시절에 어떤 경험과 생각이 쌓여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는지 살펴보자. 청소년들은 역사 속 인물을 인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며 자신의 혼란스런 생각과 감정 그리고 현재 자기 삶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_류대성 위원, 『읽기의 미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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