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미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체험관장 |
2005년 2월 25일, 시마네현의회 의원 38명 중 35명이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하는 조례안’을 의회에 상정하였다.
이 안은 3월 16일 본의회에서 찬성 35명, 반대 2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되었고 8일 후인 3월 25일에 공표되었다.
이후 시마네현은 매년 2월 22일에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개최하고 있고, 올해 제10회차 행사를 개최했다.
이른바 ‘다케시마의 날’은 일제가 내각회의에서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시키는 결정을 하고, 이어 시마네현이 고시로 독도 편입 사실을 공표한 날이라고 주장하는 1905년 2월 22일부터 100년째가 되는 것을 기념하여 제정하였다는 것이 일본 측 설명이다. 그런데 과연 당시 일본 정부의 독도 편입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1905년 1월 28일, 일본 내각 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청원을 심의하여 독도 편입을 결정하였다고 한다.
“북위37도 9분 30초 동경 131도 55분 오키도에서 서북 방향으로 85해리 떨어져 있는 무인도는 다른 나라가 점령했다고 인정할 만한 형적이 없고, 1년 전인 1904년 우리나라 나카이 요자부로라는 사람이 어사를 짓고 사람을 이주시키고 어구를 갖춰 바다사자 포획에 착수하여 이번에 영토편입 및 임대 청원을 하였는데 이 때 소속 및 섬의 명칭을 확정할 필요가 있어 이 섬을 다케시마라고 명명하고 이후 시마네현 소속 오키도사의 소관하에 두자.”
독도 편입 후 약 3개월이 지난 1905년 5월의 27일 28일 양일간, 울릉도와 독도 부근에서 일본 해군 연합 함대와 러시아 해군 제2, 제3 태평양 함대 간에 큰 해전이 벌어진다.
이 해전에서 일본 해군 연합 함대는 대승리를 거둔다. 승전보는 5월 29일 부터 관보나 신문기사를 통해 곧바로 일본 국민에게 알려졌다. 이 승전보와 함께 새로 편입한 섬 ‘다케시마’도 일본 국민에게 알려지게 된다.
한국해양대 실습선인 한나라호 선미에 걸린 대형 태극기 아래로 보이는 독도의 모습.(사진=저작권자 (c)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울릉도와 독도 부근 해전에서 대승리가 없었다면 일본 국민들은 새로 편입한 섬 ‘다케시마’에 대해서 잘 몰랐을 것이다.
그 전에는 시마네현과 주변 지역 주민 소수가 ‘량코도(Liancourt Rocks)’라는 명칭으로 알고 있는 정도였다. 나카이 요자부로도 시마네현 사람이다. 일본 정부차원 인식도 약했다.
일례로 일본 해군 연합 함대가 승리 소식을 알린 1905년 5월 29일자와 30일자 관보에 독도는 ‘리앙코루도 암’(Liancourt Rocks)으로 나온다. 이 표기는 6월 5일이 되어서야 ‘다케시마’로 정정된다.
한편 신문기사 등을 통해 새로 편입한 섬 ‘다케시마’ 를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은 이 섬을 울릉도라고 생각했다.
당시 지리학자 다나카 아카마로(田中阿歌麻呂)는 1905년 8월에서 10월까지 『지학잡지』에 ‘다케시마’와 관련한 논문 3편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다케시마’는 울릉도다.
이 오류는 다음해인 1906년 6월호에 가서야 정정된다. 이 외에도 당시 일본의 많은 지리학자들이 새로 편입한 섬 ‘다케시마’를 울릉도로 알고 있었다. 약 150여 년동안 다케시마는 울릉도를 일본인들이 부르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독도는 ‘마쓰시마’로 알려졌었다.
1867년 일본에 메이지 정부가 들어 선 후, 17세기 이래 시마네현과 그 주변 지역에서 마쓰시마라고 알려졌던 섬의 실체가 갑자기 독도에서 울릉도로 바뀐다. 그리고 이 독도는 프랑스식 명칭 리앙쿠르 록스라는 섬으로 바뀐다.
그런데 일본의 독도 편입은 이 섬이 프랑스식 명칭의 섬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편입을 위해서는 무주지이여야 하고 무주지라면 다른 나라가 점령했다는 흔적이 있어서는 안 된다.
즉 조선어 명칭이나 일본어 명칭이 붙어 있는 섬이어서는 편입할 명분이 부족하다. 그런데 프랑스 포경선이 부여한 리앙쿠르 록스라는 명칭의 섬이라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1905년 일본의 독도 편입은 울릉도와 독도의 일본식 명칭의 교묘한 뒤틀림 사이에서 불거져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뒤틀림에는 다분히 고의적이고 인위적인 무언가가 있다.
시마네현이 10년째 소위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치뤘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고 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