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영식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
문재인 대통령은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리셉션 축사에서 “눈사람은 눈 한 뭉치로 시작한다”고 노래한 시를 인용하면서 “지금 두 손안의 작은 눈 뭉치를 우리는 함께 굴리고 조심스럽게 굴려가야 한다”면서 평창 올림픽 기간의 남북관계 일시적 해빙이 결코 북한 비핵화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적어도 문재인 정부가 주도적으로 평창 올림픽 기간 만큼이라도 한반도에서 긴장 완화를 이루고 북미 간 탐색적 대화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과거 노무현 정부 2.0에 불과하므로 북한의 평화공세에 현혹돼 비핵화라는 절체절명의 국가안보목표를 쉽게 포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간혹 우리 사회 일각에서 또 국외에서 제기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전 정부의 북한 포용전략과 비교해 평가해 볼 때,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전 진보성향 정부의 대북정책과 큰 차이를 보이며, 한국이 남북관계 개선의 목표에 집착해 북한의 미사일 개발과 핵무기 개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에서 이탈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일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반도기를 함께 든 남과 북 선수들이 아리랑 선율에 맞춰 입장하고 있다. (사진 =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
예를 들어 북한 정부가 소위 ‘백두혈통’인 김여정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을 특사로 보내 가능한 한 조속한 시일에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길 희망한다는 친서를 전달했으나, 문 대통령은 ‘적절한 여건이 형성’ 없이 남북정상회담의 개최가 무리임을 분명하게 북측에 전달했고, 북미대화에 대한 북한의 긍정적인 자세 변화도 촉구했다. 반대로 미국에 대해서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북한과의 대화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트럼프 행정부는 비록 비핵화 조건은 불변이나 비핵화를 위한 대화의 개시를 위한 탐색적 대화를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 시작했다.
새해 벽두부터 숨 가쁜 속도로 일어난 이러한 변화를 놓고 볼 때, 한국을 통하면 전략적 이해의 달성이 쉬워지며, 유사사태의 발생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는 주변국의 한국 신뢰가 확실히 높아졌다고 하겠다. 즉 더 이상 ‘코리아 패싱’이 아니라 ‘평화의 길은 한국을 통한다’는 국제사회의 인식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지만, 또 ‘끝이 좋아야 모든 게 좋다’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제목도 있다. 문재인 정부 스스로가 천명했듯이, 평창 올림픽 평화는 한반도에서의 유사사태 발생 방지 및 평창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라는 단기적 목표 달성에는 성공했으나, 이러한 성공이 북미 간 대화와 협상을 통한 북핵·미사일 위기의 해결이라는 장기적 목표의 ‘마중물’이 될지, 아니면 2달간의 평화로 그칠지는 아직 아무도 예단할 수 없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태도 변화다. 북한 정권은 북한이 미국과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를 시작하지 않는 한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포함한 남북관계의 개선도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도 계속될 것이다.
북한 정부는 2월 17일 노동신문 개인 기고문을 통해 ‘가질 것을 다 가진 우리(북한)는 미국과의 대화에 목마르지 않으며 시간이 갈수록 바빠날(급해질)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이라고 밝혔다. 4월 초 재개될 것으로 예상하는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북한의 강력한 반발도 예상된다.
그러나 북한의 호전적 자세와 도발은 결국 북한이 애써 공들였던 평화공세의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들 것이며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한반도 평화 형성과 북핵위기의 외교적 해결을 주도하는 한국 정부의 전략적 선택지를 축소하는 자충수에 불과한 것이다.
북한이 문재인 정부가 주도적으로 형성한 대화국면을 지혜롭게 활용하지 않는다면 결국 북한 정권은 올해 더 많은 미사일 시험 강행할 것이며 미국의 북핵 대응 결정의 시각이 가까워졌다는 미국의 댄 코츠 미국 국가정보국 수장의 불길한 전망이 미국 내에서 기정사실로 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북한 정부의 현명하고 과감한 전략적 결심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