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
정부가 2월 4일 메머드급 주택 공급 계획을 발표했다. 골자는 2025년까지 서울 32만, 전국 83만 가구 공급 부지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분당 신도시급 8개, 서울 기준으로는 3개 규모 물량이다. 본격적인 ‘공급 드라이브’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역세권, 준공업지역, 저층 주거지, 재건축·재개발, 택지지구까지 동원가능한 땅을 최대한 찾아 집을 짓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부지를 확보하고 인허가나 공사 기간을 감안하면 입주시점은 부지확보 시점보다 더 늦을 것이다. 다만 정부와 지자체가 합동으로 인허가를 대폭 줄이는 패스트랙을 가동하면 진척이 빨라질 수 있다.
답보상태인 재건축 공급에 ‘물꼬’
이번 대책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재건축 공급에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재건축사업은 ‘5대 족쇄’라고 부를 만큼 각종 걸림돌에 부딪혀 진행이 지지부진했던 게 사실이다.
이 가운데 가장 강도 높은 규제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이다. 강남권 재건축 단지 기준 조합원 1인당 최대 5억 2000만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공공방식으로 재건축을 하면 재초환 부담이 없다. 국토교통부는 공공 직접 시행 방식은 개발이익이 공공으로 귀속되므로 부담금 부과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공공이 사업시행자가 되므로 조합설립인가, 관리처분계획인가 같은 절차도 없다. 토지주(아파트 소유권자)는 현물을 공공에 선납하고 특별 할인 아파트 분양권을 받는 격이 된다. 사업이 ‘초 스피드’로 진행되어 통상 13년에서 5년 이내로 단축시킬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재건축아파트 주인 입장에선 종전방식과 공공방식 중 한 가지를 선택하는 ‘옵션’이 주어진 셈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비강남지역의 초기 단계 재건축 단지에서 공공 재건축 방식을 선택하는 단지들이 제법 나올 것으로 보인다. 사업이 막바지인 재건축 조합은 공공방식을 선택할 경우 중도에 조합을 해산해야 하므로 기존 방식대로 개발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이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공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방안’을 발표하고 있다.(사진=국토교통부) |
개발 후보지역 불안 가능성은 낮아
또 역세권, 저층 주택가와 공장 지대를 활용하는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은 3년간 한시적으로 시행된다. 이중 역세권은 부지면적 5000㎡이상 되는 곳에서는 용적률을 최대 700%까지 올려준다. 그만큼 아파트를 더 지을 수 있게 되어 사업성이 좋아진다는 의미이다. 개발업계에서는 이 같은 인센티브로 ‘공급의 각’이 나온다는 반응이 나온다.
메머드급 개발 계획 발표에도 후보지역에서 불안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 같다. 대책 발표일(2월 4일) 이후 재건축·재개발, 역세권, 준공업지역 등 사업구역 내에서 신규 계약 체결자는 아파트 우선 공급권이 없고 현금청산 대상이되기 때문이다. 이런 규제로 후보 사업구역에서는 불확실성 증대로 매수세가 줄면서 위축될 수도 있다. 최근 거래가격 또는 거래량이 예전보다 10~20% 늘어나면 개발지역에서 제외키로 한 점도 가수요를 차단하는 또 다른 장치다.
전세난 발생하지 않도록 시기 조정 필요
이번 대책에서 물량의 70~80%를 분양주택으로 내놓기로 한 것은 내 집 마련을 꿈꾸는 무주택자들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다만 청약통장 가입자별로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
재건축·재개발 구역은 민간개발이어서 원래 분양물량이 대부분 청약예금·부금 가입자 몫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공공주도로 개발을 진행하면서 청약저축 가입자에게 배정되는 물량이 크게 늘어난다. 청약예금·부금 가입자 입장에서는 그만큼 당첨기회가 줄어 불만이 생길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보유하고 있는 청약통장에 따라 청약기회가 부당하게 축소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후속대책을 기대한다.
대도시 지역 개발은 허허벌판에 아파트를 짓는 신도시 개발과는 다르다. 기존 주택을 한꺼번에 철거하고 거주자를 이주시키면 국지적인 전세난이 유발될 수 있다. 지역과 시기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세밀한 로드맵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