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덕곤 소방청 119구조구급국장 |
소방에 ‘구급’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1983년 소방법 개정 이래 구급서비스는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다.
초창기 119구급대가 단순히 환자를 병원에 이송해 주는 것이 역할의 전부였다면 이제는 응급환자에게 적절한 응급처치를 제공해 소생률을 높이고, 퇴원 이후 환자의 예후까지 살피는 세심한 전문 조직으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 119구급대는 1679대의 구급차와 1만 2706명의 구급대원으로 구성된 메머드급 조직으로 성장했다. 또한 119구급차의 3인 탑승률은 90%에 육박하고, 체계적인 전문교육을 받은 간호사와 1급 응급구조사로 구성돼 언제 어디서든 우리 국민에게 최고의 구급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충실히 갖춰가고 있다.
주지의 사실로 응급환자의 대부분을 119구급대가 이송하고 있는 만큼, 현장에서 어떠한 응급처치를 실시 하느냐에 따라 환자의 생명과 예후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현재 119구급대원이 응급환자에게 할 수 있는 처치는 기도 유지와 정맥로 확보, 산소 투여 등 14가지에 불과한 실정이다. 우리나라 구급대원은 심근경색 환자를 이송할 때 필수적인 심전도 측정도 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심정지 환자나 벌 쏘임으로 인한 쇼크 환자에게 에피네프린을 투여하거나 응급분만 산모의 탯줄을 자르는 것조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선진국에서 폭넓게 실시되고 있는 필수적인 응급처치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응급의료법’에서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를 14가지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만일 구급대원이 14가지 범위를 넘어 응급처치를 시행한다면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되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도 있다.
이러한 현실과 법의 괴리로 119구급대원은 응급상황에서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불가피하게 법을 어길 수밖에 없는 위험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119구급대 구급차들이 구조 활동에 들어가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이에 소방청은 지난 2019년부터 ‘응급처치 확대 특별교육’을 이수한 구급대원을 대상으로 특별구급대 223개 대를 편성해 5가지 항목을 추가로 하는 응급처치 확대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위급환자 이송 시 의사의 지도하에 ▲12유도 심전도 측정 ▲응급분만 시 탯줄 처치 ▲급성 외상환자 진통제 투여 ▲심폐소생술 및 아나필락시스 쇼크 환자에게 에피네프린을 투여하는 등의 항목이다.
특별구급대의 운영 성과는 통계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심정지 환자의 병원 전 자발 순환 회복률은 시범운영 전 10.4%에서 15.3%로 급상승했고, 아나필락시스 환자의 정상혈압 회복률이 58.3%에 달하는 등 5가지 확대 응급처치 모두에서 임상적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성과들만 보아도 구급대원들이 법적 보호 속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하루빨리 법제화가 필요하다. 다른 입법이 된 사례들을 보아도 법제화의 설득력은 충분하다.
농어촌의료법에는 의료 취약지역에 근무하는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에게 필요한 의료행위를 허용하고 있다. 또한 학교보건법에도 생명이 위급한 학생에게 보건교사가 투약행위 등 응급처치를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민은 119를 부를 수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구조될 수 있다고 믿는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며, 소방관들은 재난 현장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국민에게 국가 그 자체다”
지난 2019년 독도 헬기 추락사고로 순직 소방관 합동영결식 당시 문재인 대통령 추도사의 일부다. 국민 대부분은 위급한 상황에 닥치면 119부터 찾는다. 위난 상황에 처한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무다.
그러한 사명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119구급대원들은 거리로 달려가고 있다. 119구급대원들에게 현실에 맞는 업무 범위를 허용하는 것이야말로 이들의 사명감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일 것이다.
어딘가에 쓰러져 있는 낯선 사람이 언제든 내 가족일 수 있다. 내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이 순간에도 자신을 던져 응급환자의 생명을 구하고 있는 119구급대원에게 날개를 달아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