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인도네시아에서 개최된 아세안(ASEAN) 관련 정상회담에 참석한 후 9일에는 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인도로 이동했다. 그리고 10일 G20 정상회의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의 정상회담의 일정을 소화했다. 아세안 관련 정상회담 기간 아세안+3(한·일·중), 한-아세안 회의,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등이 연쇄적으로 개최되었다. 인도에서도 윤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에서와 같이 G20 정상회의 참여국 중 몇 개 나라의 정상과 약식회담을 가지기도 했다. 올해 윤 대통령이 G20에 참여한 의미는 작년 첫 참석과는 사뭇 다른 점이 있어 주목할 만하다고 할 수 있겠다.
작년에는 취임 첫해인 만큼 윤 대통령은 G20 협력 사항에 대한 신정부의 참여 의사를 확인시켜 주는 기회로 활용했다.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 수호에 동참할 의사를 명확히 전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올해 회의에서 그의 발언문에는 국제사회와 연대하여 규범 기반의 국제질서 정립 노력에 적극 가담할 의사와 의지를 일관되게 강조했다. 그리고 이를 위한 기여와 지원을 약속하는, 보다 적극적인 참여 의욕을 전했다. 가령, 안보·인도·재건 분야를 망라한 포괄적 지원 프로그램의 이행을 약속했다. 이를 위해 내년에 인도적 지원을 포함한 무상 개발 협력과 국제금융기구를 통한 3억 불 지원을 통해 국제사회의 발전과 번영에 기여하는 의지를 강하게 밝혔다.
규범 기반의 국제질서의 확립을 위한 구체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지난 6월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인공지능(AI)을 포함한 디지털 질서 규범 제정을 위한 국제기구의 설립 제안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그는 이달 말 한국이 ‘디지털 권리장전’ 발표 계획을 설명하고, 한국이 디지털 질서 규범 제정에 적극 참여할 결의를 내비쳤다. 이를 계기로 그는 또한 한국이 디지털 향유권을 인간의 보편적 권리로 천명할 것을 약속했다. 이를 선도적으로 견인하기 위해 그는 한국이 더 나아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쟁점 해결을 위한 국가 차원의 기준과 원칙을 제시할 포부도 밝혔다. 그러면서 G20이 새로운 디지털 규범 정립과 AI에 대한 국제 거버넌스 마련을 위한 국제사회와의 연대와 협력을 강화할 의지를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G20 정상회의 개최 전날인 9일 윤 대통령은 약식 회담을 연쇄적으로 가졌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튀르키예, 코모로, 방글라데시 등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리고 다자차원에서 믹타(MIKTA, 한국·멕시코·인도네시아·튀르키예·호주 등이 참여하는 중견국 다자협의체) 정상회동을 개최했다. 이튿날 독일, 이탈리아, 모리셔스 총리들과 약식 회담을 가졌고, 인도 총리와는 정상회담을 가졌다. 독일, 이탈리아, 튀르키예 정상과는 방산과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구하는 초석을 다지는 데 일치된 인식 도출에 성공했다. 특히 반도체 생태계와 공급망 협력, 그리고 방산과 우주 항공 분야 등에서 협력 필요성과 관련하여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고무적인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윤 대통령은 독일이 반도체 인력 양성과 기업 유치를 원하는 것에 협조할 의사를 또한 전했다.
글로벌 사우스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남미의 아르헨티나,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 인도양 아프리카 연안국 모리셔스 정상과의 회담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다. 우선 아르헨티나의 말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한국과 신재생에너지 및 핵심 광물 공급망 분야에서 협력 잠재력을 강조하며 미래산업 협력의 증진 의사를 밝혔다. 특히 리튬 채굴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통해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배터리를 공동 생산하는 의욕도 보였다. 이에 윤 대통령은 함께 검토하는 것으로 호응하면서 수소·재생에너지 활용 방안 마련을 위한 양국의 긴밀한 소통을 약속했다. 이로써 우리의 리튬 대안 시장을 위한 남미에서의 첫발을 내디딘 사실만으로도 상당한 결실이 있었던 회담이었다.
내년 상반기에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앞두고 윤 대통령은 나이지리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참석을 초청했다. 그러면서 나이지리아가 한-아프리카 교역에서 13%를 차지하는 한-나이지리아의 무역 규모에 걸맞게, 한국과 아프리카의 가교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 모리셔스 총리와도 해양자원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청색경제(blue economy)에서 양국의 협력을 강화하는 데 합의했다. 그리고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에 모리셔스 대통령의 참석을 초청했다. 인도-태평양 전략 관점에서 핵심 협력 대상국인 모리셔스와 이번 회담을 계기로 미래지향적인 협력 관계의 기반을 구축한 점에 찬사를 보낼 수 있겠다.
인도와의 정상회담에서는 신산업 분야와 국방·방산 분야에서의 협력을 발전하는 데 합의를 도출했다. 특히 우주산업 분야에서의 인도와의 협력 강화가 합의된 점은 우주산업의 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 중인 우리 정부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성과라 할 수 있겠다. 이런 합의를 도출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이 한국과 인도가 가치를 공유한 사실이었기에 윤 정부의 외교 기조의 실효성을 입증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번 G20 정상회의의 최대 성과는 우리의 ‘주고 받는(give and take)’ 접근방식으로 글로벌 중추국가로 거듭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말로만 하는 글로벌 중추국가가 아닌 실질적인 연대·기여·지원으로 서로 ‘윈-윈’하는 협력 구상이 그 실효를 발휘한 결과였다. 다시 말해 상대국에 협력을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보다는, 요구에 곁들여서 연대·기여·지원을 제안하는 접근 전략이 설득력을 보였다. 이제 이를 토대로 실질적인 이행과 실천으로 우리 국익과 국력을 더욱 증진하는 데 집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