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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처레스크, 그림 같은 도시

윤태건의 ‘공공예술 즐기기’ ⑤

2010.09.02 윤태건 The Ton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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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누구나 알법한 남진의 <임과 함께>의 첫 소절이다. 그러고 보니 모를 수도 있겠다 싶어서 사무실의 직원에게 물어 봤다. 먼저 30대. 여기까지는 당연히 안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올해 큐레이터과를 갓 졸업하고 입사한 우리 막내다. 이제 24살.

“OO씨 남진이라고 알어?”
“네 알아요. 트로트가수죠?”

오! 남진이 유명하긴 유명한가보다. 남진이라면 나훈아와 함께 70, 80년대를 휩쓸었던 대표가수가 아닌가. 지금으로 친다면 남진은 2AM, 나훈아는 2PM쯤 되지 않을까?

“그럼 남진 노래 중에 <임과 함께>라는 노래는 알어?”
“그럼요...”

잘 안다는 듯 호기롭게 대답한 OO씨가 이어서 노랫말을 흥얼거린다.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사무실의 전 직원들이 박장대소하며 한바탕 뒤집어 진다. 몇 일전 오후의 일이다. 20대 이쯤 되면 10대는 아마 모를 수도 있겠다.(주변에 아는 10대가 없어서 물어보질 못했다.) 하기야 40,50대에겐 남진이 ‘아이돌’이겠지만 10대에게 남진은 할아버지뻘이다. 세월의 무정함이여...

시간이 그리고 시대가 변하면 의미도 변하는 법이다. 남진의 <임과 함께>의 가사는 당시에는 그저 가진 것 없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도록 살 수 있다면 최고의 행복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저 푸른 초원위의 그림 같은 집’은 ‘멋쟁이 높은 빌딩’과 대비되는, 즉 문명, 도시와 대비되는 자연, 농촌을 상징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저 푸른 초원위의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려면 웬만한 부자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생각해보라. 적어도 대지가 1,000평 이상은 되어야 ‘저 푸른 초원 위’의 분위기가 살 것이고, 유럽의 성까지는 아니어도 최소 이름 날린 유명건축가의 2층 이상의 멋드러진 집쯤 되야 ‘그림 같은 집’ 느낌이 나지 않겠나.

물론 ‘그림 같은 집’이 반듯이 비싼 집, 웅장한 건축물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림 같은 집’은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집이라는 의미에 더 가까울 것이다. 우리가 흔히 멋진 집, 멋진 풍경을 마주했을 때 종종 ‘그림 같은 집’이나 ‘그림 같은 풍경’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그림 같은’의 의미는 영어로 픽처레스크(Picturesque)다. 이 말은 1782년 윌리엄 길핀이 쓴 <와이강과 남웨일스 지방의 관찰기>라는 책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실낙원의 저자 존 밀턴은 영국의 스토어헤드 공원을 보고 “낙원이 있다면 스토어헤드 공원을 본떠 만들었을 것”이라고까지 칭송했다. 스토어헤드 공원은 프랑스 고전주의 풍경화의 대가인 클로드 르 로랭의 그림을 본떠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18세기 영국의 풍경식 정원으로 풍경화를 그대로 현실로 만들어 마치 그림 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이 나도록 만드는 조경 양식이다. 픽처레스크, 즉 그림 같다는 말의 유행을 불러온 계기가 되었다.

스토어헤드 공원
스토어헤드 공원 (사진 출처=voyager01.tistory.com)
 
자연적인 풍경 외의 인공적인 도시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그림 같은 도시인 화이트와 지중해의 블루의 두가지 칼라로만 만들어진 산토리니 같은 곳을 벤치마킹하려는 시도가 한 때 유행이었다. 우리가 한강변의 병풍처럼 늘어선 아파트 군락 덕택에 잃어버린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되살리고 하는 노력이나, 문화유산으로 남길만한 건축물을 조망할 수 있도록 새롭게 지어지는 건축물의 층고를 제한하는 규제들. 공공미술이나 공공디자인, 조형적인 건축물에 대한 최근의 높아진 관심도 도시를 좀 더 아름답게 만들려는 시도들은 대체로 ‘그림 같은 도시’를 만들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산토리니 섬
산토리니 섬
 
이처럼 픽처레스크의 등장 이후 지금까지 오랫동안 ‘그림 같은 무엇’은 우리의 관념을 여전히 지배한다. 낙원처럼, 그림처럼, 천국처럼 이상적인 집, 풍경, 도시에 대한 환상을 품게 만들고 ‘그림 같은 무엇’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픽처레스크의 모태가 된 클로드 르 로랭이 만든 것 중에 재미있는 것이 있다. ‘클로드 유리(Claude Glass)’라는 것인데, 코팅된 흑색 볼록 거울로 이것을 통해서 사물을 바라보면 초점이 흐릿해지고, 칼라 또한 낮은 톤으로 보이게 된다. 이 유리를 통해 본 풍경은 부드러운 톤과 그윽한 색채로 이루어져, 일종의 그림 같은 풍경을 그릴 수 있는 장치인 셈이다. 아름다움을 창조하려는 예술적 행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실제가 아닌 허상을 미화시키는 장치이기도 하다.

클로드 르 로랭 풍경 목자와 소떼
클로드 르 로랭의 풍경 ‘목자와 소떼’
 
사실 그림 같은 풍경은 다분히 감상하는 차원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한 발 물러서서 감상하기에는 좋을지언정, 그 속에 직접 들어가 체험하고, 부딪치고, 관계를 맺기에는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감상을 위해서 다른 것들은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같은 점 때문인지 최근의 공공미술이나, 디자인,건축,조경에서는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함께’ 공감하는 쪽을 선호하곤 한다. 한편으로는 ‘그림 같은 도시’를 만들려는 노력도 계속되지만, 한편으로는 단순히 감상하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문화적 체험과 공동체간의 관계를 맺는 것을 중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그림 같은 도시’도 좋지만 정작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단지 감상만을 위해 ‘그림 같은 도시’를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그림 같은 도시’를 만드는 데 희생양이 되지 않고 그 속에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삶 자체가 예술이고, 도시 자체가 공공미술인 그런 도시가 진정한 그림 같은 도시가 아닐까.


※ 윤태건은?

윤태건(42)은 공공미술 분야에서 대표적인 젊은 기획자다. 신문로의 ‘망치질 하는 사람’ 등 많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삼성문화재단 환경미술팀 연구원과 카이스갤러리 디렉터를 거쳐 지금은 공공미술 컨설팅회사인 ‘THE TON’을 운영하고 있다. 공공미술이 필요 없는 도시, 삶 자체가 예술인 도시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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