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9일 타계한 김흥수(金興洙) 화백은 95세의 나이에도 붓을 놓지 않고 열정적으로 작업해 온 화가였다. 구순이 넘어 “지금에야 머리가 맑아져 미술을 알 것 같은데 90대 노인이 돼 버려서 생각대로 하지 못 하는 게 화가 난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구상과 추상의 혼합과 융화를 통해 새로운 예술세계를 개척한 그의 하모니즘(조형주의) 작품은 첫 선을 보인 1977년 이후 줄곧 화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1990년 프랑스 파리 뤽상부르미술관, 1993년 러시아 모스크바 푸슈킨미술관, 생트 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박물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어 국제적인 호평도 받았다.
그는 칠순을 넘어서도 젊은 사람들과 팔씨름을 할 정도로 건강한 ‘만년청년’이었다. 하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는 데다 2002년 10월 이후 세 차례나 척추수술을 받아 쇠약해진 터에 2012년 부인과 사별한 것이 그에게 결정적인 타격이 됐다. 덕성여대 제자였던 그의 부인은 나이가 43세나 적었지만 그에게는 삶과 미술의 충실한 동반자였다. 1992년 부부가 되어 함께 살아온 20년은 김 화백에게 예술적 완성기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그의 예술적 성취나 미술계에 관한 것이 아니다. 김 화백의 부음이 알려진 이후 인터넷에 뜬 댓글을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무지와 무관심, 특히 젊은 세대의 문제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김 화백이 사망했다는 기사가 뜨자 “김흥수 얘가 누구야? 난 모르는데”라고 댓글을 단 사람이 있었다. 각 매체는 다투어 사망기사를 냈고, 한 매체의 기사가 김 화백을 가리켜 ‘한국의 피카소’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러자 “오래 살면 다 피카손가? 피카소를 어디 이 사람과 비교하나?”라고 쓴 사람이 있었다. 피카소가 오래 살았다는 걸(그는 92세로 타계했다)알고 있는 사람이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나쁜 댓글은 김 화백이 43세 연하의 여성과 살았다는 점에서 큰 불륜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비난하고, 누드화를 많이 그린 형편없는 작가라고 매도하는 내용이었다. 그가 누군지 잘 모르고 있다가 기사를 보고 시비를 거는 식이었다. 더 나쁜 것은 그가 친일파 화가였다고 비난한 댓글이다. 친일파 작가가 어떻게 예술원 회원이 될 수 있었으며 이름을 날릴 수 있었느냐는 식이었다.
왜 이런 댓글이 나왔을까. 짚이는 건 두 가지다. 30여 년 전인 1983년 모 미술잡지가 일제시대부터 내려온 ‘식민화풍’을 청산하자는 기획을 한 일이 있다. 평론가 9명이 집필한 이 특집기획은 해방 이후 활약한 거의 모든 작가를 친일파로 몰아붙였다는 점에서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 명단에 김흥수도 들어 있었다.
또 한 가지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파 명단인데, ‘의원 관료’ 중에 김흥수라는 이름이 올라 있다. 당연히 김흥수 화백과는 관계가 없는 딴 사람이다. 그 김흥수의 한자도 알 수 없다. 어쨌든 인터넷에 검색을 하면 친일파와 김흥수가 연관 있는 듯이 나온다.
기사를 보고 즉흥적으로, 감각적으로 올리는 댓글 중에는 초등학생, 이른바 초딩들이 쓴 게 꽤 있고, 전체적으로는 주로 10대들이 장난삼아 쓴 게 많은 것 같다. 그런 세대가 김흥수 화백을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할아버지도 한참 위의 할아버지뻘이다. 미술에 관심이 없으면 이 아이들의 부모들 중에서도 김 화백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문제는 모르는 일과 사람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거나 무관심한 태도이며 모르는 것에 대해 이유 없이 반감을 갖고 배척하는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는 감각이 잘 발달돼 있고 재치와 기능은 뛰어나지만 전반적으로 허점이 많으며 지식의 총량은 부족하다. 특히 고전이나 윗세대의 일과 성취에 대해 무지하다.
10대만 그런 게 아니다. 2001년에 가수 황금심 씨가 타계했을 때 모 신문의 가요 담당 기자는 황금심이 누구인지 몰라 기사를 쓰려 하지 않았다. 최근 ‘무등산시인’으로 알려진 광주의 범대순 시인이 타계했을 때에도 그의 사망을 기사로 보도한 신문은 많지 않았다. 지금 기자들 대부분이 그를 모르는 세대이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모르면 알려 해야 하고 남들에게 물어 취재를 해야 되지 않나. 실제로는 모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거나 모르는 것을 궁금해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런 현상은 호기심이나 학습욕과도 관련된 일일 것이다. 우리의 교육, 지적 풍토에도 문제가 있다. 남의 창작물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베끼고 퍼 와서 얻는 지식은 내 것이 아니다. 모르면 가만히나 있지 왜 쓸데없는 낙서를 하고 이유 없는 비판을 하는 것인가.
인터넷 포털업체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사람에 관한 정보를 검색하면 온통 연예인 스포츠 스타투성이다. 불과 30~40년 전에 활동한 인물에 대해 알려고 하면 동명이인인 연예인에 관한 자료만 잔뜩 뜰 뿐이다. 지식사회의 발전과 청소년들의 학습활동을 돕기 위해서라도 윗세대, 나이든 세대에 관한 자료와 정보를 충분히 확보해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무지해지지 않도록 각 개인이 노력해야 하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와 병행해서 교육현장이든 무엇이든 올바른 지식이 전승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개선을 해야 한다. 자기 세대의 것과 인물에 대해서만 밝은 것은 충분한 지식이 아니다. 무지나 무관심이 죄는 아닐지 몰라도 게으름과 무성의의 소산인 것은 분명하다.
◆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자유칼럼그룹 공동 대표
언론문화포럼 회장,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보성고 고려대 독문과 졸. 1974~2012 한국일보사 근무. 기획취재부장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이사대우 논설고문 역임. 현재 논설고문으로 ‘임철순칼럼’ 집필.
문의처 :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포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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