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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와 소노, 일그러진 일본의 지성

임철순 이투데이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2015.02.24 임철순 이투데이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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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여성 소설가 소노 아야코(曾野綾子·83)는 37세 생일을 맞았을 때 인생 후반전에 들어섰다는 생각에서 이미 노년(그는 사실 만년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의 삶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그가 1972년에 낸 <계로록(戒老錄)>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제목으로 국내에도 번역된 이 책은 40여 년간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그 뒤 <행혹하게 나이 드는 비결>, <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 <부부 그 신비한 관계> 등 소노가 내놓는 책은 늘 주목을 받았다. 아프리카국제봉사재단 이사, 해외 일본인선교사활동 후원회 대표 등의 사회활동으로 소노는 사려와 분별을 고루 갖춘 일본의 지성으로 인식돼왔다.

그런 사람이 2월 11일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의 고정칼럼 ‘노동력 부족과 이민’ 때문에 비난을 자초했다.

소노는 칼럼에서 “(노인 간병인력이 모자라니) 이웃 국가 젊은 여성의 이민을 허용하자”며 “다만 거주 지역은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종에 따라 거주 지역을 분리한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를 일본에 도입하자는 주장을 한 셈이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넬슨 만델라가 1994년 대통령에 당선된 뒤 철폐한 유색인종 격리정책이다.

이에 대해 국내외 비판이 일고 주일 남아공 대사가 “아파르트헤이트를 용인하고 미화한 것”이라며 산케이신문에 서면으로 항의하자 소노는 “그 정책을 일본에서 실시하자고 제창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며 “생활습관이 다른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은 어렵다는 개인의 경험을 쓴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런 변명대로 취지가 그런 게 아닐지 몰라도 소노는 사려와 분별이 모자랐다. 소노는 아베 신조 총리가 애국·도덕 교육 강화를 위해 2012년 12월 발족한 제2차 교육재생실행회의 위원으로 2013년 10월 말까지 활동한 바 있는 보수 논객이다. 2차대전 때 일본군의 강요에 의한 오키나와 주민들의 집단자살을 부인하는 책을 낸 일도 있다.

지난해에는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일본 여성작가 시오노 나나미(鹽 野七生· 78)가 <문예춘추> 10월호의 고정칼럼에 ‘교활(狡猾)함의 권장’이라는 글을 써 역사에 대한 무지와 몰상식을 드러냈다.

시오노는 글에서 위안부 피해자 증언의 신빙성에 의문을 표시하고, 위안부는 ‘참 상냥한(부드러운) 이름’이라고까지 말했다.

‘위안부 대오보, 일본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 시오노가 쓴 글은 자신이 군대위안부 문제의 초점을 모르고 있으며 사실(史實)에도 무지하다는 걸 드러내 보였다.

시오노는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군 점령 하의 다른 지역에서도 강제 연행을 했다고 하니, 그들에게 사료(史料)를 제출하도록 유도하자고 했다.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서 네덜란드 여인들을 연행해 위안부로 삼은 ‘스마랑사건’으로 1948년 자카르타 전범재판에서 책임자가 사형판결을 받고 처형된 사실이 널리 보도됐는데도 그는 모르고 있었다.

시오노는 또 아사히신문의 오보 관계자 전원과 고노 담화가 나오기까지 일본 자민당을 이끈 유력인사들도 살아 있는 사람은 모두 국회에 나와 증언하도록 해 그 광경을 전 세계에 생중계하자고 했다.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자충수다. 군대위안부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하라는 전 세계의 요구에 무지한 것이다.

그는 <로마인 이야기> 출판을 계기로 방한했을 때 일제 식민지시대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한국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철없는 대답을 한 일이 있다.

‘남자와 헤어진 여자가 살아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남자를 증오하고 저주하며 일생을 보내는 것, 다른 하나는 과거를 깨끗이 잊고 새 남자를 찾고, 옛 남자와도 일을 같이 하며 즐겁게 사는 것이다. 이 중 어느 것을 선택하고 싶으냐?’

소노와 시오노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일본의 지성이며 문필가이지만, 인류 공통의 보편성과 동떨어진 편협한 시각을 보이며 지금 한창 득세하는 우익적 사고에 입각한 논조를 드러냈다.

199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80)나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매년 거론되는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66)의 발언과 너무도 대조적이다.

무라카미는 지난해 11월 마이니치(每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태평양전쟁이나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해 책임 회피 경향을 보이는 일본사회를 비판했다.

그는 특히 “태평양전쟁의 경우 군벌이 잘못일 뿐 천황도 국민도 모두 피해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한국인과 중국인은 분노하고 있는데 일본인들은 가해자였다는 인식이 점점 희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에는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일본이 특히 아시아인들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말한 바 있고,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해서는 “헌법에 대한 경외심을 갖지 않는 드문 인간”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2005년 방한 당시 이미 “가장 두려운 점은 일본의 헌법이 바뀌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 뒤 전쟁 포기선언이 명시된 평화헌법의 제9조를 수호하기 위해 ‘9조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이끌고 있다.

오에는 특히 “일본인들은 패배의 의미를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전체 근대화 계획을 취소하고 완전히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시아 국가로서 일본은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공존을 생각하는 대신 다시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름지기 지성이라면, 문화적 문학적 영향력이 큰 사람이라면 자신이 속한 세계와 국가에 편벽되거나 편협하게 갇히지 않고 인류 전체의 발전을 지향하며 양심과 인권 수호에 앞장설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도 팬이 많은 소노 아야코, 시오노 나나미의 언동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특히 시오노의 경우 앞으로 그의 저서를 읽지 않겠다는 독자들이 있을 정도다.

소노와 시오노 같은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우리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그들처럼 편벽되고 역사에 무지하면 안 되지만, 우리에게는 왜 이런 정도로 세계적인 문필가가 없나.

아니 오에 겐자부로처럼 인류의 양심으로 존경받을 만한 지성이 왜 없나, 우리는 언제나 문화적 문학적으로 세계인들의 지지와 성원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인가. 비판하고 경원하는 마음 위에 이런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두껍게 쌓인다.

임철순

◆ 임철순 이투데이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언론문화포럼 회장,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보성고 고려대 독문과 졸. 1974~2012 한국일보사 근무. 기획취재부장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이사대우 논설고문 역임. 현재는 이투데이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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