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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평해전’과 ‘국제시장’과 ‘명량’

광복 70년 분단 70년, 애국을 생각한다

2015.07.23 한기봉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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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평해전’(감독 김학순)을 본 사람이 500만 명을 넘어 6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7월 22일 기준). 개봉한 지 한 달 만에 올해 한국영화 중 최다 관객 기록을 세웠다. 이 영화를 두고 이념적, 정치적, 영화적 완성도 면에서 논란이 있는 걸 잘 알고 있는데다, 영화를 안 보면 왠지 시류에 뒤질 거 같아서 뒤늦게 그 대열에 합류했다.

토요일 오전 10시경 서울 강남역 근처에서 조조할인으로 혼자 영화를 봤다. 이른 시간인데도 50명 이상이 표를 끊었다. 20대로 보이는 관객이 절반 가량이었고 노부부도 눈에 띄었다. 내 자리 근처에는 군대를 갔다 왔을 만한 나이의 20대 남자와 여자가 나란히 앉았다. 영화가 끝난 후 이들의 반응이 궁금했는데 청년은 나지막이 “미안해” 라고 독백하는 게 들렸고, 여자는 “오빠, 넘 찡하다”라고 말했다.

영화 ‘연평해전’은 엄밀히 말하면 전쟁을 소재로 삼은 이른바 고전적인 명화류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전쟁명화로 통하는 영화들은 기본적으로 반전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디어헌터’(1978년, 마이클 치미노 감독), ‘지옥의 묵시록’(1979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플래툰’(1986년, 올리버 스톤 감독)이나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 강제규 감독) 같은 영화가 주는 감동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런 류의 영화들은 전쟁의 비참한 실상과 인간의 광기, 휴머니즘을 녹여서 전쟁과 인간에 대한 철학적 고뇌를 하게 만든다. 물론 김학순 감독도 “이 영화는 정치적으로 무관하며 인간의 삶과 그 가족의 애환을 담은 이야기”라고 말했지만, 실화와 기록을 토대로 가족의 이야기를 픽션화한 영화이다.

그래서인지 시사회에서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거라고 내다본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포털 네이버영화에서의 평점은 관람객은 9.22점, 기자평론가는 4.94점이다. 개인적 경험으로 볼 때 흥행에 성공한 영화에 대한 평론가 점수는 대체로 야박했다는 걸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영화 감상평을 읽어보면 관객들의 반응은 정말로 진솔하고 뜨겁다.

영화 ‘연평해전’이 누적 관객 수 500만명을 돌파한 16일 서울 종로구의 한 극장에서 시민들이 연평해전 포스터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연합뉴스.무단전재-재배포금지)
영화 ‘연평해전’이 누적 관객 수 500만명을 돌파한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의 한 극장에서 시민들이 연평해전 포스터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연합뉴스.무단전재-재배포금지)

나는 영화에 대한 논란이 일 때마다 ‘영화는 영화로 보고 평론은 평론으로 읽는다’는 말을 떠올린다. 민주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예술이든 평론이든 표현의 자유이다. 다만 어떤 의도를 갖고 상대나 진영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데 예술작품을 이용하는 것은 찬성하지 않는다. 최근에 흥행에 성공한 영화 ‘변호인’ 때도 같은 생각이었다.

영화에 대한 감상은 누구나 다르다. 그 사람의 삶의 궤적과 가치관, 현재의 처지가 어쩔 수 없이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예술작품이 지닌 정화와 위로와 공감의 힘이 아닌가 싶다. 군인 가족, 군대를 갔다온 사람, 자식이나 사랑하는 이를 군대에 보낸 사람은 이 영화를 보면서 특히 남다른 감회가 들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그 체험과 기억의 농도는 다를지언정 군과 전혀 무관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이 영화가 큰 울림을 준 것은 그 사건의 배경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기억이자 사실을 일깨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댓글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연호했습니다. 그들은 그때 대한민국을 엄호했습니다”라고. 이 영화는 그래서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도 만든다. 2002년 6월 29일 그날 우리와 그들은 대한민국 땅에 같이 발을 딛고 서있었지만, 바라보는 곳은 달랐다. 전 국민의 눈과 귀는 월드컵에, 그들의 오감은 오직 방아쇠와 적을 향해 있었다. 우리의 집단적 흥분 속에서 그들은 스러져갔고 방관되었고 잊혀져 갔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행위 자체에는 빚을 갚는 속죄의 심정이 작용한다. 그 청년이 “미안해”라고 독백한 것처럼. 

최근 1년 안에 한국영화의 역대 관객기록 1, 2위를 갈아치운 영화가 있었다. 아마 영원히 깨지기 어려울 1760만 명이라는 최다 관객기록을 갖고 있는 ‘명량’( 김한민 감독)과 1400만 명 이 관람해 2위 기록을 세운 ‘국제시장’(윤제균 감독)이다. 22일 개봉한 ‘암살’(최동훈 감독)의 예매 기세도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친일파와 일본사령관을 암살하는 이름 없는 독립군의 이야기이다.  

앞서 세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바 ‘애국심’이며 ‘대한민국(조선)’이다. 구국의 지도자(명량)부터 평범했을 장병(연평해전), 평범한 서민(국제시장)이 각 영화의 주인공이지만 그 주인공들은 국가를 지키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번영을 이끈 주역이다.

‘연평해전’을 본 한 관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필승”이라고 외치며 거수경례를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 영화의 관객 중 45%가 20대로 집계돼 젊은 층의 보수화가 뚜렷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이순신 장군이나 참수리 357호의 장병들은 그들의 애국적 행동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때 지도자나 국가로부터 버림받거나 외면받았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어 영화를 보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우리와 부모 세대는 한국의 현대사 속에서 그게 가난이든, 전쟁이든, 독재에 대한 투쟁이든, 희생과 헌신, 그리고 그 결과인 경제적 번영과 민주화를 주고받았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집단적 공감을 주는 역사적 사실이다. 세대와 계층을 뛰어넘어 동질감과 연대감, 소속감 같은 정서를 불러 일으킨다. 일종의 ‘애국의 집단기억화’ 같은 현상이라고 표현한다면 지나칠까.

애국, 호국, 더 나아가 보훈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변함 없는 가치이다. 그것은 국가의 탯줄 같은 것으로 정신적 인프라이기도 하고 국민통합의 구심점이 되기도 한다. 동서양의 역사 속에서 정치적으로 악용한 정권도 있었지만, 애국은 불변의 가치이자 정신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국가유공자를 예우하듯, 모든 나라는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을 기린다. 그건 국가의 자존심이자 자존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세 영화에 관객이 몰린 것은 국민적 자존감의 부활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난 5월 프랑스 파리의 팡테옹에는 나치에 맞서 싸우다 스러진 평범한 레지스탕스 남녀대원 4명이 묻혔다. 묘지의 흙을 퍼다 안장하는 국가적 행사를 했다. 팡테옹은 볼테르, 루소, 위고, 퀴리부인 같은 프랑스의 위인 70명을 안장한 이 나라 최고영예의 국립묘지 같은 곳이자 프랑스 정신의 상징인 건물이다. 평범한 레지스탕스 대원 네 명이 그들과 같은 반열이 되었다.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6명의 장병은 계급에 따라 대전현충원에 각각 안장돼 있다. 국가보훈처는 최근 유족이 합의한다면 합동묘역을 조성하고 묘비 뒷면의 ‘연평도 근해에서 전사했다’는 문구도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했다’로 고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들이 산화한 지 13년이 되었다. 늦었지만 당연한 예우이다. 

올해는 광복 70년, 분단 70년의 해이다. 광복절에는 정부와 민간이 주도하는 대대적인 다양한 기념행사들이 치러진다고 한다. 이런 시점에 이 세 영화가 차례로 흥행기록을 세워 나가는 걸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한기봉

◆ 한기봉 전 언론인

한국일보에서 30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편집국부국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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