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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시가 된 노래, 노래가 된 시] (41)이문세 ‘광화문 연가’

2024.03.19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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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어진 사랑은 사진으로 남고, 이루지 못한 사랑은 노래로 남는가. 길을 걷다 우연히 들려오는 노래에 누군가가 오버랩된다면, 그 사랑은 미완이거나 미결이다. 사랑에 종결은 없다. 사랑은 백신이 부재하는 종신형이다. 사랑이 신비로운 건 결국은 혼자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너의 사랑은 끝났지만 나의 사랑은 시작되기도 한다.

그런 노래가 바로 이 노래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1988년 이영훈 작사·작곡, 이문세 5집)

우리 젊은 봄날, 손을 잡고 그 길을 걸어야 사랑은 비로소 시작되는 것 같았다. 그 길은 그런 길이었다. 오월의 진한 라일락 향기처럼 그 사랑은 백리향 천리향 만리향인 줄 알았다. 그러나 너는 떠나갔다.

세월이 흘렀다. 나는 오늘 눈 덮인 그 길을 걷는다. 두 손 잡고 언약하던 언덕 밑 조그만 교회당은 그 자리에 있다. 슬며시 팔짱 끼어도 짐짓 모른 척 걷던 고궁의 돌담길도 색깔이 변했지만 그대로다. 문득 향긋한 꽃향기가 가슴 속에 훅 밀려온다. 어디선가 네가 서서 날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 자꾸 뒤를 돌아본다. 너는 어디에 있는가.

‘광화문 연가’는 꿈에서 깨어난 순간 사라진 장면 같은, 그런 사랑의 후일담이다. 노랫말에 이별이란 단어는 없다. 많은 청춘이 그곳에서 기다렸고 사랑을 했고 이별을 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홀로 그곳을 다시 찾을 때 사랑과 이별은 또 한 번 시작되는 거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과 아직도 남아 있는 것, 새로 생긴 것들이 공존하는 정동길. 저기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도 언젠가는 세월을 따라 떠나갈 것이다. 덕수궁 돌담길에 기대 웨딩 사진을 찍는 저 연인들의 앨범도 언젠가는 빛이 바랠 것이다.

노래는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에 나왔다. 그때의 청춘은 50대 후반이 되었다. 60대에게 ‘낭만에 대하여’가 있다면 50대에겐 ‘광화문 연가’가 있다. 전자는 그저 ‘다시 못 올 것’에 대한 비탄과 공허이지만, ‘광화문 연가’에는 세월을 관조하는 정서와 미학이 있다. 노래방 50대 애창곡 목록에서 이 노래가 빠지지 않는 건 사라진 것의 애틋함과 여전히 남은 것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꼭 사랑이 아니면 어떠랴.

이문세-이영훈(작사·작곡)은 ‘광화문 연가’ 3년 후 마치 이 노래 후렴인 듯한 ‘옛사랑’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내 맘에 둘 거야/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내버려두듯이/흰 눈 나리면 들판에 서성이다/옛사랑 생각에 그 길 찾아가지/광화문 거리 흰 눈에 덮여가고/하얀 눈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네”

대중가요가 사랑과 이별을 먹고 자라지만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처럼 의연한 구절이 어디 또 있을까. 이제는 그만 초탈하고 싶은 것일까.

이 노래 제목이 ‘광화문 연가’가 아니고 ‘정동길에서’나 ‘정동 연가’였다면 시대를 초월해 이토록 사랑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연가(戀歌)’는 통상 ‘엘레지’라 부르는 ‘비가(悲歌)’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한 걸음 떨어져 슬픔을 누르고 담담하게 그리워하는 노래다.

광화문(光化門)은 행정구역이나 지명은 아니다. 조선 왕조가 막 열린 1395년 경복궁의 남쪽에 세운 정문의 이름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파괴된 것을 1865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복원했다.

우리는 그냥 그 일대를 광화문이라고 부른다. 도로 원표도 여기서 시작한다. 대한민국의 중심이고 상징이고 한국인에겐 정신적 고향 같은 곳이다. 서정주 선생은 시 ‘광화문’에서 ‘광화문은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라고 했다.

강남이 발달하기 전 광화문 일대와 종로통은 젊음과 문화의 거리였다. 서울고, 경기여고 등 많은 남녀 명문고가 광화문 네거리를 중심으로 빙 둘러쌌다. 기성세대에게는 젊은 날의 흑백 앨범 같은 곳이다. 이영훈은 한 인터뷰에서 “어릴 때부터 광화문과 덕수궁을 무척 좋아해 자주 다녔고 그게 내 정서가 됐다”고 말했다.

80년대 중후반 가요계 변방에 있던 이영훈(1960~2008)은 신촌블루스 엄인호의 소개로 작곡가를 찾던 한 살 많은 이문세를 처음 만났다. 이영훈은 클래식 현악기가 가미된 세련된 멜로디에 시적 가사를 입힌 고품격의 노래들을 만들어 이문세에게 주었다. 처음 참여한 이문세 3집(1985년)부터 4집(1987년), 5집(1988년)까지 3년간 지금도 ‘명반 3부작’으로 추앙받는 한국 대중가요계의 기념비적 음반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세 음반은 연속 골든디스크상을 받았다. (다음 편에 ‘이영훈’ 별도)

7집(1991년)의 ‘옛사랑’과 함께 이문세를 대표하는 ‘광화문 연가’는 5집에 실렸다. 한 음반에서 대체로 히트곡이 하나만 나오던 시절에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붉은 노을’ ‘시를 위한 시’ 등 음반 수록곡 대다수가 크게 히트했다. 5집은 선주문만 수십만 장에 260만 장이 팔렸다. 세 앨범의 상업적 성공은 대단해 3집 ‘난 아직 모르잖아요’는 150만 장, 4집 ‘사랑이 지나가면’은 280만 장 이상 팔렸다.

‘광화문 연가’가 수록된 이문세 정규 5집 앨범 표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붉은 노을’ 등 대다수 곡이 히트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광화문 연가’가 수록된 이문세 정규 5집 앨범 표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붉은 노을’ 등 대다수 곡이 히트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문세와 이영훈, 이영훈과 이문세를 평가할 때 결코 놓쳐선 안 되는 게 있다. 두 사람은 사실상 최초로 ‘한국적 발라드’를 음악 대중에 이식한 ‘위대한’ 뮤지션이다.

포크도 아니고 종전의 발라드와도 다른 이 음악을 평론가들은 그렇게 명명했다. 두 사람의 음악은 팝송에 비해 저평가를 받아온 대중가요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킨 계기가 되었다. 대중은 곧바로 빠져들었다. 감수성을 충족할 가요가 부재해 허전하던 음악시장의 큰손 20대 30대 여성들에게는 단비였다. 심야의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서 가요와 팝의 역전이 이뤄진 때가 바로 이때다.

한국적 발라드의 태동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유재하도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다. ‘광화문 연가’ 한 해 전인 1987년 첫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를 유작으로 남기고 그해 늦가을 거짓말처럼 교통사고로 홀연히 떠난 영원한 스물다섯 청년 유재하. 그도 발라드의 주소를 바꾼 뮤지션이다. 모든 곡을 작사·작곡·프로듀싱하고 클래식 기법과 악기를 사용했다는 점, 담백하면서도 단아하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음악이 서로 닮았다. 유재하는 한양대 작곡과를 막 졸업한 클래식 전공자였다.

당시 대중가요에는 발라드의 옷을 입었어도 ‘뽕끼’니 ‘뽕삘’이란 게 남아 있었다. 조용필도 그랬다. 이영훈의 고급한 선율을 배경으로 한 이문세의 창법은 트로트의 정서를 말끔히 씻어냈다. 툭툭 던지는 듯한 중저음대의 감미로운 창법, 뛰어난 해석력과 표현력, 대중 친화적 무대 매너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서로의 ‘페르소나’인 두 사람은 7집까지 전 곡을 함께 했고 9집에서 다시 만나 14집 ‘빨간 내복’(2002년)까지 17년 동안 초창기의 환호만큼은 아니었어도 어깨동무를 했다.

1990년대의 이문세와 이영훈. 두 사람은 서로의 ‘페르소나’였다.(ⓒ위키백과)
1990년대의 이문세와 이영훈. 두 사람은 서로의 ‘페르소나’였다.(ⓒ위키백과)

2008년 이영훈은 대장암 투병 끝에 47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문세는 이영훈의 손을 잡고 기도하며 임종을 지켰다. 그 1년 후 ‘광화문 연가’ 노래비가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정동제일교회 건너편에 세워졌다.

이영훈을 보낸 지 25년이 흐른 지금 이문세는 60대 중반(65세)의 미중년이 되었으나 여전한 현역이다. 그는 TV보다 22년간 라디오 음악프로그램 진행을 사랑했고 콘서트 무대를 고집해 왔다. 대중음악 공연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든 선구자다.

거의 해를 거르지 않고 새로운 컨셉과 빼어난 수준, 재미를 겸비한 전국 순회공연의 티켓 파워는 조용필, 임영웅과 맞먹는다. 잠실종합운동장에 빈자리가 없게 했다. 올해 3월 8일 전주에서 시작한 ‘2024 Theatre 이문세’ 순회공연도 전 지역이 이미 매진됐다. 팬클럽 ‘마굿간’의 사랑도 그의 얼굴만큼이나 긴 세월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올해 3월 초부터 시작한 이문세의 전국 순회 콘서트 포스터. 그의 콘서트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공연했다. (ⓒ팬클럽 ‘마굿간’)
올해 3월 초부터 시작한 이문세의 전국 순회 콘서트 포스터. 그의 콘서트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공연했다. (ⓒ팬클럽 ‘마굿간’)

대중성과 음악성, 시대를 초월한 정서를 두루 갖춘 이문세-이영훈의 음악은 우리 가요계의 여전한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다.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는 “K팝이라는 이름으로 글로벌 성공을 쾌척해 낸 우리 대중가요가 서구의 종속에서 벗어나 독립과 자유를 획득한 서막을 이영훈과 이문세가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평가했다.

한기봉

◆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과 신문윤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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