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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휴대폰

2016.06.30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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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강의하면서 학기말 고사를 백일장으로 대신했다. 무슨 시제를 내걸 것인가, 꽤 오래 생각했다. 학생들이 어렵지 않게 술술 써나갈 수 있는 소재, 생활밀착형 이야기, 자신의 삶에서 희로애락의 사연이 담긴, 그리고 나를 한번 되돌아볼 수 있는 글감을 내려고 많은 후보를 떠올렸다. 고민 끝에 내가 칠판에 적은 제목은 ‘어머니의 휴대폰’이다.

학생들은 작문 제목을 보자 잠시 탄성과 한숨을 내쉬었다. 미처 생각 못 해본 제목이었을 거다. 그들은 바로 원고지를 채워나가지 못했다. 모두들 생각에 잠기는 모습이었다. 무심코 지나쳤던 엄마의 휴대폰에서 무엇인가를 떠올리느라 시간이 필요했을 거다. 기억의 서랍 속을 열고 뒤져서 엄마와 나의 스토리를 소환하느라 과거로의 여행도 시작했을 거다.

채점을 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몇 번이고 눈시울이 적셔왔고 어떤 사연에는 박장대소를 했다. 글을 풀어나가는 솜씨와 표현력에는 차이가 있지만, 글이 주는 진솔한 감동에는 우열이 없었다.  

“언젠가 우연히 엄마의 통화 기록을 보았다. 남편, 잘난 아들, 사랑하는 딸래미, 이 세 글자의 반복이었다. 엄마는 아는 사람이 이 세 명밖에 없을까. 카톡을 보았다. 프사(프로필 사진)에는 늘 내 사진이나 동생의 사진이다. 엄마 사진을 올리는 적은 한 번도 못 봤다. 내용을 쭉 읽어봤다. 밥 먹었니, 언제 오니, 전화좀 해줘. 이 세 문장이 도배를 하고 있다. 엄마가 바라보는 세상은 왜 이리 좁을까. 마음이 아파왔다. 나는 엄마의 휴대폰이 아닌, 한 여자의 휴대폰이길  바란다.”

“내가 중학생일 때 우리 가정은 어려웠다. 난 폴더폰을 쓰는 게 부끄러워 휴대폰을 책상 위에 꺼내놓지도 않았다. 엄마는 휴대폰도 아예 없었다. 난 매일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졸라댔다. 어느날 엄마는 내 소원을 들어주었다. 난 뛸 듯이 기뻤다. 그리고 대학에 가서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됐다. 엄마가 금반지 예물을 팔았다는 것을. 난 그날 내 휴대폰이 원망스러워 한강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우리 엄마는 억척스러운 아줌마 스타일이다. 집에선 늘 박스티에 반바지 차림이다. 어느 날 엄마 폰에서 노래 앨범을 우연히 봤다. 조용필, 이선희, 녹색지대, 마이클 잭슨... 옛날 가수들 이름 별로 노래가 정리되어 있었다. 아, 엄마에게도 소녀 시절이 있었구나. 엄마는 신이 나서 그 가수들 이야기를 했다. 난 그런 엄마가 모처럼 좋아져서 콘서트 티킷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콘서트 표가 얼마나 비싼데, 그냥 이 걸로 들을게’였다. 울 엄마는 역시 아줌마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사연은 학생 수만큼 다양했다. ‘게임에 빠져 매일 하트를 날려달라며 날 귀찮게 하던 엄마였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그게 엄마가 외로움을 푸는 유일한 방법인 줄 몰랐다. 그리고 내가 보내주는 하트가 내가 잘 있는지를 확인하는 엄마의 방법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낡은 폴더폰 속에 저장된 어릴 적 자식들 사진이 날아가게 될까봐 엄마는 폰을 바꾸지 못한다. 폰을 바꾸어도 사진을 옮길 수 있다고 해도 싫다고 한다. 정말 엄마는 바보일까’,  ‘엄마는 나에게 평생 수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난 엄마가 스마트폰 사용법을 가르쳐달라고 할 때마다 혼자 해보라고 왕짜증을 냈다. 엄마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유일한 것마저 외면했던 나는 참으로 무심한 아들이었다’,  ‘시골 사는 내 엄마는 기계치라서 문자 쓰는 법을 여러 번 가르쳐줘도 못한다. 하루는 문자가 왔다. 너무 반가워서 전화했더니 내가 바쁜데 방해될까봐 열심히 배웠다고 한다. 그런데 문자를 유심히 보니 획이 듬성듬성 빠져 있었다. 난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이 어머니의 휴대폰에 대해 쓴 것들은 대체로 이런 것이었다. 어머니의 사랑에 무심했던 미안함과 후회, 한 인간으로서의 어머니 삶에 대한 바람 같은 게 원고지 행간에 넘쳤다. 그들 눈에 비친 엄마의 휴대폰은 자신들의 것과는 너무나 다른 좁은 세상이었다. 폰의 기능은 검색도 저장도 세상과의 소통도 아니었다. 결국 그 폰의 주인공은 어머니 당신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던 거다.

우리는 휴대폰을 친구처럼 끼고 살지만, 엄마의 휴대폰에 대해서는 몇 번이나 생각해 봤을까. 그 속을 얼마나 알까. 오늘밤 살짝 엄마의 휴대폰에 들어가 보든지, 보여 달라고 해보자. 거기엔 엄마의 모습, 한 여자의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한기봉

◆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 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언론보도로 피해를 입은 사람을 구제하는  언론중재위원이며, 국민대 언론정보학부에서 한국 언론과 글쓰기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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