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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즉시공(共) = 인간의 공수래 공수거?

[김창엽의 과학으로 보는 문화] 특정색의 상징과 다양성

2017.01.31 김창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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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영국 식민지 인도 육군의 카키색 군복 차림. 세계 각국 군복 색깔이 카키색 계통으로 자리 잡는데 중심적 역할을 했으며, 훗날 민간에서 카키색 유행을 불러오는 바탕이 됐다. (영국 육군장교 A.C.러블릿 그림)
20세기 초 영국 식민지 인도 육군의 카키색 군복 차림. 세계 각국 군복 색깔이 카키색 계통으로 자리 잡는데 중심적 역할을 했으며, 훗날 민간에서 카키색 유행을 불러오는 바탕이 됐다. (영국 육군장교 A.C.러블릿 그림)

“우리 침대 이불을 이번에 카키색으로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50대 중반인 M씨는 최근 진한 고동색이었던 이불을 카키색으로 바꾸자는 아내의 제안에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그런데 여보, 카키색이 정확히 어떤 색이에요?”하고 그는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카키색이 좀 막연했던 까닭이었다.

아내로부터 돌아온 말은 “아니 당신, 카키색이 무슨 색인지 잘 몰랐어요? 갈색과 연녹색의 중간쯤인 색인데…”하는 거였다. “아~, 좀 옅은 국방색 같은 걸 말하는 거군요?” “네, 맞아요. 나이가 드니 차분하고 편안한 느낌이어서 좋던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두어 해 전 카키색(khaki)이 제법 유행을 탔었다. 의류 가방 등은 물론 침구나 의자 또 실내장식 소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카키색이 선호됐다.

사실 꼭 카키색이 아니더라도, 색은 유행의 한 흐름을 형성하는 굵직한 요소로 꼽힌다. 왜 특정 색이 특정한 시기에 선호되는지를 과학적으로, 체계적으로 분석해내기는 어렵지만, 유행의 한 가운데 색이 자리한 예가 수두룩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색의 유행과 관련해 흥미롭고도 놀라운 대목은 똑같은 색이라도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선호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언론 등에서 ‘카키색 열풍’이라는 제목으로 유행을 전할 때와 ‘국방색 열풍’이라고 했을 때 이를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이다.

미국 버지니아 대학의 심리과학 연구팀에 따르면, 사람들의 심리는 같은 색깔이라도 다른 이름으로 불리면 다르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세계 유명회사들의 로고를 색깔 계통별로 분류했다. 색깔은 선험적이든 후천적이든 인간의 다양한 감성과 연계돼 있다. 낙관, 흥분, 믿음직함, 차분함 등의 느낌으로 색깔이 치환되는 것이다. 사진=로고 컴퍼니(LOGO Company)
세계 유명회사들의 로고를 색깔 계통별로 분류했다. 색깔은 선험적이든 후천적이든 인간의 다양한 감성과 연계돼 있다. 낙관, 흥분, 믿음직함, 차분함 등의 느낌으로 색깔이 치환되는 것이다. (사진=로고 컴퍼니/LOGO Company)

우리 사회에서 국방색이란 표현 대신 카키색이라는 용어에 더 끌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듯, 미국의 경우 갈색이 브라운(brown)으로 불릴 때보다는 모카(mocha)로 호칭될 때 더 인기가 있다는 사실을 버지니아 대학팀의 연구이 밝혀낸 것이었다.

색은 그 자체로 문화의 코드이기도 하고, 그림이나 디자인 광고 등에서는 핵심적인 전달 도구의 역할도 한다. 똑 같은 색이라도 다른 이름으로 불릴 때 색은 다른 심리작용을 불러일으키는 까닭에 어쩌면 문화의 소재나 요소들 가운데서도 그 비중이 월등하다고 할 수 있다.

2009년 이후 미국의 주택 시장 버블이 꺼지면서 ‘색 산업’, 혹은 ‘색 문화’는 드러나 보이지 않는 홍역을 덩달아 치러야 했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집안 인테리어에 이런저런 색깔의 페인트가 적잖게 사용되는데 주택 신축이 저조해지면서 페인트 생산 업체들이 고전을 면치 못했다.

당시 페인트 업계의 전반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선전을 한 기업이 있었는데, 바로 발스파(Valspar)라는 회사였다. 이 회사가 당시 돋보였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제품에 붙인 이 회사 고유의 색깔 이름 체계가 남달랐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빨간색 계통의 페인트만 하더라도 80종이 넘는데, 그 이름이 ‘꽃 소녀’(Flower Girl), ‘오 그토록 붉은’(Oh So Red)이라는 식이었다. 또 거의 90가지에 육박하는 푸른색 계통의 색깔 이름들 역시 ‘태평양의 즐거움’(Pacific Pleasure), ‘물 춤’((Aqua Dance) 등으로 독특할뿐더러 창의성이 넘치는 어휘들로 만들어졌다.

발스파 사가 생산하는 수백 가지 페인트의 색깔 이름 짓기 의도는 분명하다. 사랑, 귀여움, 이국에의 동경, 시원, 경쾌함 등의 감상을 자아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같은 빨강 계통 색이라도 단순히 진한 빨강, 연한 빨강, 보통 빨강 등으로 부르지 않고, 보다 구체적이면서도 듣는 이의 감성을 확장적으로 자극할 수 있는 단어들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데 있어서 이름 덕을 적잖게 본 것은 예의 카키색 또한 예외가 아니다. 카키색(Khaki)이라는 단어의 유래를 추적해 보면, 보다 실감나게 색깔 이름의 영향력을 파악할 수 있다. ‘Khaki’라는 단어는 원래는 인도 지방 말(힌두스탄어)을 영어로 음차하면서 탄생됐다.

힌두어 혹은 우르두어로 ‘khaki’는 “흙 색깔’이란 뜻을 갖고 있다. 19세기 인도를 점령하고 있던 영국은 인도 현지의 환경에서 위장색 등으로 적합한 이 색깔을 군복 색깔로 정했다. khaki라는 영어 단어는 바로 이때 생겨난 셈이다. 영국 육군의 카키색 군복은 이후 적잖은 나라의 군복에 영향을 줬다.

남북한의 군복 색도 역시 카키색의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카키색을 우리 식으로는 국방색이라고 부르는 게 다 이런 연원이 있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 한국사람들이 지칭하는 국방색은 황토색보다는 녹색이 더 돋보이는 카키색이다. 이른바 미술이나 디자인 계통에서는 일반적으로 진한 카키색으로 분류되는 바로 그 색이다.

인도에 주둔하던 영국 육군이 입었던 카키색 군복은 누렇고 옅은 갈색에 가깝기 때문에 한국의 국방색과는 사실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진하든, 진하지 않든 카키색은 나라를 가리지 않고 2차 대전 이후에는 군인들의 유니폼 색깔로서 그 이미지를 쌓아왔다. 유행색으로 카키색이 어딘가 견실하고 단단하며 묵직하면서도 안정적이고 클래식한 느낌을 주는 건 군복의 기본 색깔이라는 사실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생활문화적 관점에서 같은 색이라도 국방색이라고 부를 때와 카키색이라고 지칭할 때 뉘앙스는 다를 수 밖에 없다. 국방색이라고 하면 은연 중에 군인의 제복을 상상하게 마련이다.

반면 카키색이라고 호칭하면 군복을 벗어난 혹은 군복보다 확장된 2차적 이미지들과 연계된다. 즉 카키색이라는 단어를 듣는 이나 말하는 이 모두 의식을 하든 하지 않든, 또 카키색이라는 단어의 연원을 알든 모르든 문화적 상징어로써 카키색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색만큼 상징성을 가진 소통 도구도 드문 탓에 색은 예술의 영역을 넘어서 문화전반은 물론 정치 사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그럼에도 색을 매개로 한 인간들의 다양한 행위 혹은 활동은 거의 완벽하게 과학의 지배를 받는다. 색의 존재 또 색에 대한 인간의 인식 그 자체가 크게 보면 자연현상인 까닭이다.

색은 빛의 반사 혹은 방출에 의해 그 존재를 드러낸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빛이 없으면 색이 있을 수 없다. 잘 익은 바나나가 노란색으로 보이는 건 바나나 껍질 그 자체가 노란 게 아니라, 파장 570~580나노미터의 빛이 바나나 껍질로부터 반사돼 나오기 때문이다.

안구에 연결된 시신경 말단은 이 빛을 두뇌에 신호로 보내고, 이 신호는 뇌에서 ‘노란색’으로 인식된다. 똑 같은 물체라도 시신경이 다르면, 같은 색깔로 인식될 수 없다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사람과 시신경이 다른 개의 눈에는 바나나나 사과가 사람과는 사뭇 다른 빛깔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색이 미술이나 디자인, 로고 등에서 그 나름의 상징성을 갖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면 파란색은 물이나 하늘을, 빨간색은 피나 불기운 같은 걸 연상시킨다. 또 색에서 사람들은 따뜻하거나 차가움을 느낄 수도 있고, 투박하거나 세련된 느낌까지도 받는다.

재미있는 점은 특정 색에 대한 사람들의 특정한 반응이 선험적이냐 후천적이냐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인종을 가리지 않고 대체로 가장 선호되는 색은 파란색이다. 이는 인간이라는 생물이 파란색에 대해 태어날 때부터 대체로 호감을 갖고 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보기에 따라 우중충하고 촌스럽고 투박한 색깔로 인식되는 카키색이 세련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의 눈으로 본 테니스 공과 개의 눈으로 본 테니스 공(오른쪽). 물체에는 특정한 색깔이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이를 보는 생명체의 뇌신경 신호 해석 특성에 따라 특정 색으로 보일 뿐이다. 사진=블러브레인닷컴(blurbrain.com)
사람의 눈으로 본 테니스 공과 개의 눈으로 본 테니스 공(오른쪽). 물체에는 특정한 색깔이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이를 보는 생명체의 뇌신경 신호 해석 특성에 따라 특정 색으로 보일 뿐이다. (사진=블러브레인닷컴/blurbrain.com)

단적으로 유명 여배우가 연출해내는 카키색 옷차림은 도시화와 섹시함을 대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똑 같은 색이 사람에 따라 혹은 시대에 따라 이처럼 다르게 인식될 수 있는 데는 합당한 근거, 즉 뇌신경의 색에 대한 다양한 해석 경로가 존재할 것으로 짐작된다. 다만 그 미묘하고도 오묘한 신경학적 인식의 변화를 과학적으로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뿐이다.

색은 사진이나 영화, 미술 등에서 가장 강력한 표현의 요소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색은 종종 예술의 핵심을 이루고 있음에도, 역설적이게도 사물의 본질이 아니다.

따라서 특정 색의 유행이나 특정 색깔의 상징성은 작동원리가 온전하게 규명되지 않은 인간 인식체계의 산물일 뿐이다. 같으면서도 다른 ‘국방색’과 ‘카키색’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김창엽

◆ 김창엽 자유기고가

중앙일보에서 과학기자로, 미주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장 등으로 일했다. 국내 기자로는 최초로 1995~1996년 미국 MIT의 ‘나이트 사이언스 펠로우’로 선발됐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문화, 체육, 사회 등 제반 분야를 과학이라는 눈으로 바라보길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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