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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릴 듯 말 듯, 창문 아래서 부르는 사랑의 노래 ‘마레키아레’

[정태남의 클래식 여행] 이탈리아/나폴리(Napoli)

2017.02.14 정태남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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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를 봐라, 그리고는 죽어라”는 말이 있듯이 나폴리는 예로부터 아름다운 항구도시로 손꼽힌다. 물론 요즘 그 명성은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로 좀 시들어졌지만, 그래도 나폴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황홀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이 풍경을 잘 감상할 수 있는 곳은 나폴리 시내 중심에서 서쪽으로 좀 떨어진 바다에 면한 포질리포 지역이다. 포질리포 지역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조성된 테라스에서는 눈부신 지중해의 태양을 머금은 탁 트인 바다와 멀리 베수비오 화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베수비오 화산이 멀리 보이는 마레키아로의 바다. 왼쪽 건물의 창가에는 카네이션이 놓여져 있고 그 아래에는 노래비가 있다.
베수비오 화산이 멀리 보이는 마레키아로의 바다. 왼쪽 건물의 창가에는 카네이션이 놓여져 있고 그 아래에는 노래비가 있다.

포질리포는 그리스어 파우실뤼폰(Pausilypon)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위험, 또는 고통이 끝나는 곳’이란 뜻이다. 이런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이 곳에서 내려다보는 나폴리의 풍경이 모든 위험이나 고통을 잊게 할 정도로 장관이기 때문이었으리라. 이 곳에서 멀리 나폴리 앞바다를 지나는 배들을 바라보니 까마득한 오디세우스 이야기가 떠오른다.

트로이아 전쟁이 끝난 다음 오디세우스는 부하들과 귀향하던 중 풍랑을 만나 지중해를 한참 방랑하면서 별의별 모험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지금의 나폴리 앞바다를 지나게 되는데 그 곳에는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 부르는 파르테노페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파르테노페의 노래를 듣는 자는 누구나 넋을 잃고 그만 바다에 빠져죽게 된다는 것. 오디세우스는 그 노래를 정말 한번 듣고 싶었는지 노 젓는 부하들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도록 모두 밀랍으로 귀를 틀어막도록 하고 자신의 몸은 돛대에 밧줄로 꽁꽁 묶도록 했다.

오디세우스 일행이 탄 배가 지나가자 파르테노페는 어김없이 유혹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노래를 듣는 순간 오디세우스는 혼이 빠진 듯 온 몸이 뒤틀리기 시작했지만 다행히 몸이 돛대에 묶여 있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었다. 물론 파르테노페는 자존심이 상했겠지만. 

카네이션이 놓여진 마레키아로의 창문. 그 아래에는 <마레키아레> 노래비가 있다.
카네이션이 놓여진 마레키아로의 창문. 그 아래에는 <마레키아레> 노래비가 있다.

파르테노페의 또 다른 이름은 그리스어로는 세이렌(Seiren), 라틴어와 이탈리아어로는 시레나(Sirena)이다. 시레나는 영어로 넘어가서는 ‘사이렌’이 되는데 경찰차나 앰뷸런스의 ‘사이렌’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다.

어쨌든 이러한 전설에서 보듯 나폴리는 그리스의 문화적 전통이 깊게 배어있는 도시이다.

사실 이 곳은 원래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주해서 개척한 ‘새로운 도시’, 그리스어로 ‘네아 폴리스’(Nea Polis)였다. ‘나폴리’라는 지명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다. 
 
나폴리라면 요리로 유명한데 그 풍부한 전통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또한 나폴리라면 음악애호가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도시이다. 사실 이 곳처럼 그토록 많은 유명한 노래들이 탄생한 도시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이러한 노래의 전통은 어떻게 보면 파르테노페의 신화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유명한 나폴리의 노래 중에서 포질리포 지역 서쪽의 작은 어항이 제목이 된 곳이 있다. 어항의 이름은 이탈리아 표준어로는 마레키아로(Marechiaro), 직역하면 ‘맑은(chiaro) 바다(mare)’라는 뜻이다.

옛날 로마인들은 ‘잔잔한 바다’라는 뜻으로 이 곳을 마르 플라눔(Mar planum)이라고 했다. 어쨌든 이곳의 바다는 맑고 잔잔하다. 한편 마레키아로는 나폴리 토박이 방언으로 Marechiare라고 하고 ‘마레키아르’에 가깝게 발음하는데, 국내 음악출판물에서는 <마레키아레>라고 표기되어 있다. 

마레키아로에서는 멀리 베수비오 화산, 소렌토 반도, 카프리 섬까지 보인다. 또 바다에 접한 건물 창가에는 항상 빨간 카네이션이 꽂혀있고 그 아래는 <마레키아레> 노래비로 장식되어 있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의 노래에는 창문이 자주 등장한다. 그것도 그냥 창문이 아니라 열릴 듯 말 듯한 창문이다.

창문은 사랑하는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방해물이기도 하며 사랑을 전달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창문은 보여주는 것보다는 더 감춘다. 그리고 창문은 사랑의 욕망을 낳게 하고 마음의 상처를 주기도 하며 사랑을 약속하게 하면서도 지속되지 못하게 한다. 닫힌 창문 아래에서 한줄기의 희망이나 또는 괴로움은 노래로 바뀐다. 

지중해가 펼쳐져 보이는 마레키아로 레스토랑.
지중해가 펼쳐져 보이는 마레키아로 레스토랑.

나폴리의 향토시인 살바토레 디 쟈코모는 카네이션이 항상 놓여져 있는 이 창문 아래에서 솟아오르는 사랑의 감정을 시에 담았고 그가 쓴 시에 작곡가 파올로 토스티는 1886년에 곡을 붙였다.

이렇게 탄생한 사랑의 노래 <마르키아레>는 웬만한 성악가라면 한번 쯤 불러보고 싶은 노래가 될 정도로 세계적인 명곡이 되었다. 아울러 가난한 어부들이 살던 작은 어항 마레키아로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마레키아로는 특히 1960년대에 이탈리아의 유명 연예인들이 즐겨 드나들던 낭만적인 장소로 각광 받았다. 현재 이 곳 바닷가에는 해산물 레스토랑이 더러 있는데 지중해의 낭만적 분위기 속에서 그야말로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입맛을 유혹한다.

바다 위로 달이 떠오르고 <마레키아레> 노래가 어디선가 흘러나오면 더욱 더 그렇다. 마치 유혹하는 파르테노페의 노래처럼.

정태남

◆ 정태남 건축사

이탈리아 건축사이며 범건축(BAUM architects)의 파트너이다.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 미술, 언어, 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로마역사의 길을 걷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이탈리아 도시기행>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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