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도 섬여행의 꽃은 섬길이다. 연화선착장에서 시작해 연화봉을 거쳐 출렁다리까지. 연화봉까지 오르막길이 제일 힘들다. 하지만 봉우리에 오르면 슬며시 미소가 피어오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생면부지 동행들도 봉우리에 올라 서로 얼굴에 맺힌 땀을 훔치며 바다보고 얼굴보고 서로 웃는다. 이런 것이 ‘염화미소’ 아닐까.
연화도는 통영시 욕지면에 속하는 섬으로, 통영여객터미널에서 뱃길로 한 시간 거리에 있다. 북쪽에 본촌(연화)마을과 동쪽 ‘동머리’, 연화봉을 사이에 두고 외등과 심리골이 있고, 동두로 넘어가는 길에 합목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지금은 여객선터미널, 학교, 보건소 등이 있는 본촌리와 동머리만 마을을 이루고 있고, 합목은 외딴집 몇 채만 남아 있다. 한 때 500여 세대가 살았던 섬이지만 지금은 100여 세대 200여명이 머물고 있으며, 등산객과 낚시꾼 10만 여 명이 찾고 있다.
배가 드나들 수 있는 선창은 동쪽 해안 본촌과 동머리 두 곳이다. 그 외 대부분 해안은 기암괴석과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본촌과 십리골은 물론 동풍과 남서풍을 안고 있는 동머리나 보덕암 주변에도 고구마와 보리를 심었던 흔적들이 층층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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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도는 비진도를 경계로 안섬과 바깥섬을 나눈다면 연화도는 바깥섬 경계에 있다. 통영사람은 물론 뱃사람들도 멀리 있는 섬으로 인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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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바다에 위치해 수 많은 세월을 견뎌야 했으니 단단한 갯바위가 아니면 그 많은 세월을 어떻게 견뎠겠는가. 논은 고사하고 밭도 변변치 않아 경사가 심한 산비탈을 일궈 고구마와 보리를 심어야 했다. |
절집과 민가
동머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복도 지났고, 비가 온 뒤끝이라 아침저녁으로 서늘하다고 얕잡아 본 것이 화근이었다. 내리막길은 자전거로 오르막길은 반은 타고 반은 밀고 갔다 오니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십리골새길 입구에서 멈췄다. 십리골이라는 지명보다 ‘심리골’이 훨씬 어울리는 이름이다. 우리말로 풀면 ‘깊은골’이다.
땀도 닦아야 했지만 이곳에서 보는 본촌마을 모습이 너무 좋았다. 수국이 활짝 핀 6, 7월이면 정말 멋진 꽃길이 되겠다 싶었다. 연화봉에서 내려오는 길과 마을에서 올라오는 길목이다. 너무 가파른 길이어서 ‘까꼬막길’이라 불렀다.
계곡에는 웅장한 절집 연화사가 자리를 잡았다. 연화봉 정상 미륵불도 그렇지만 마을 뒤 연화사도 규모가 엄청나다. 작은 섬마을이어서 일까. 절집은 더욱 커보였고, 작은 나무에도 가려진 민가 지붕은 더욱 낮아 보였다. 연화사는 불교계 큰 종단 살림을 맡아 일하시던 분이 들어와 지었다한다.
두 마을에 달랑 100여 가구 사는 섬치고 절집은 크다 못해 화려하다. 비슷한 상황을 서남해 섬에서 보곤 한다. 그곳은 절집이 아니라 교회다. 간혹 마을도 없는 곳에 솟아 있는 십자가를 보기도 한다. 역시 규모나 역할을 생각해보면 마땅찮다. 민가가 바닷가로 내려오기 전에는 절집 근처나 학교 주변이 중심이었으리라. 골짜기에는 민가 몇 집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나머지는 절집이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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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리골을 따라 나지막하게 자리를 잡았던 민가들은 대부분 선창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신 커다란 절집이 터를 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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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동쪽머리에 있어 ‘동머리’ ‘동두’라고 불리는 마을로 출렁다리가 만들어지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
섬 여행, 매력은 선창가 식당에서 뿜는다
첫배를 타지 못하고 다음 배를 타고 들어오니 아침도 아닌 점심도 아닌 끼니를 해결해야 할 상황이었다. 철이 지났지만 자리 물회를 한 그릇하고 싶었다. 마침 선창 식당마다 메뉴판에 자리물회를 적어 놓고 유혹을 했다. 게다가 수족관에 자리가 떼를 지어 다니지 않는가. 미안하다 자리야. 삼복더위에는 맛도 맛이지만 시원한 곳이 제일이다. 몇 년 전 고등회를 먹었던 집을 뒤로 하고 야외가 아닌 방이 있는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밖에 자리가 있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려고 문을 열려고 하는데 붙어 있는 쪽지를 발견했다.
‘방 안에 에어컨 가동되지 않습니다’
아니, 하루가 멀다 하고 폭서기에 주의를 요하는 문자가 인사하듯 날라 오는데 식당에서 에어컨도 켜지 않고 음식을 팔다니. 게다가 주인장은 선풍기가 있는 곳에 앉으라며 연인이 마주보며 식사하는 테이블에 동석을 권한다. 나도 싫지만 그들은 또 얼마나 불편할까. 자리가 많이 비어 있지만 선풍기가 부족하다. 달리 선택할 곳도 방법도 없으니 우선 자리물회를 주문했다.
잠시 후 식사가 나왔다. 빠르다. 살펴보니 이미 다 준비되어 있었다. 야채 넣고 육수 붓고, 썰어 놓은 회를 올렸다. 그래서 한사코 회덮밥과 물회만 주문을 받는 모양이다. 따뜻한 매운탕을 기대한 중년부부는 다른 식당을 찾아 떠났다. 주문한 물회를 먹으려 뒤적이는데 아무리 봐도 자리가 아니다. 식감도 색깔도 자리회가 아니다. 주인에게 물었다. 우럭이란다. 쫄깃한 뱃살을 많이 넣었단다. 잔소리하지 말고 먹으란 말인가. 반찬도 정말 야박스럽게 준다. 그리고 값은 2만원을 주니 5천원 거슬러준다.
섬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장사를 하는 섬사람들 인심이 점점 야박해지고 있다. 본시 야박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뭍에서 들어온 여행객들을 대하다 보니 ‘거칠지만 따뜻한 속정’도 사라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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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도를 찾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음식 중에 하나가 고등어회다. 연화도에서 양식하는 것도 잡는 것도 아니다. 욕지도에서 고등어 양식장에서 가져왔을 가능성이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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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마을 입구 몇몇 횟집에서 고등어회나 자리물회 등을 맛볼 수 있다. |
일제, 연화도 우무와 미역을 탐내다
연화사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문이 잠긴 분교 앞에 걸음을 멈췄다. 5학년 2명에 6학년 1명 학생 세 명이 다니는 연화분교다. 한 때 100여 명이 다녔음직한 규모의 교실과 운동장이 덩그렇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영영 문을 닫지 않았으니. 어떤 섬은 젊은 사람이 들어와 양식어업을 시작했지만 가족은 데리고 들어오지 못하고 도회지에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학교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섬을 살리기 위해 생각 있는 섬 주민들은 폐교가 아니라 휴교를 선택하기도 한다.
교문 옆에 나지막한 집 처마 밑에 할머니가 우무가사리, 불등가사리, 새우, 꼴뚜기, 합자, 미역을 팔고 계셨다. 지금은 우럭양식이 대세지만 할머니가 시집살이를 할 때는 갯바위에서 채취하는 우무가사리와 미역이 생계수단이었단다. 1929년 10월 24일 동아일보기사다.
“일 년간 우리 섬(연화도)에서 산출하는 해초가 약 삼천 원 가량 되는데 그 중 매년 몇 백원 씩 현 원량공업보통학교에 기부합니다. 그러고 남은 금액 중 제반 비용을 제하면 매호에 불과 얼마 되지 않는 데, 그로서 겨우 생명을 유지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 채취전용권을 현 동항리어업조합에 귀속하라는 그 심사는 알 수 없습니다.
만일 오백주민의 생명인 이를 강탈하여간다면 연화도 주민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것과 다름없으니 어찌 무사히 보고 있겠습니까라며 적극 대항하겠다고 하더라.”
그랬다. 할머니가 팔고 있는 우무가사리나 미역은 일제강점기에는 연화도 섬주민의 목숨줄이었다. 그걸 옆에 큰 섬 욕지도 동항리에 귀속하라 했으니 주민들 불만이 극에 달했을 것이다.
당시 욕지도는 자부포에는 일본인 어업주만 28호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일본인 상점과 수산회사가 만들어지고 건착망, 권현망, 분기망, 타뢰망, 연승 등 발달한 그물과 어법으로 멸치, 고등어, 정어리, 삼치, 장어 등을 잡아 본국으로 가져갔다. 이를 기반으로 1921년 일본 어민들과 조선인 어업자들이 함께 동항리어업조합을 설립했다.
1931년 조합 구성원을 보면, 조선인 75명에 일본인 34명이었다. 이미 멸치잡이 전용어업권을 가지고 있었고, 고등어와 전복 통조림 공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문제가 되는 해조류 채취도 병행했다. 당시 설립한 어업조합들은 일본인 이주어민의 조선 어업진출을 보증하는 역할을 자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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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거칠고 갯바위가 많은 연화도 미역은 품질을 물어볼 필요가 없다. 이미 배를 타고 오면서 본 바다가 그 답을 일러준다. 오죽했으면 일제강점기 연화도 해초를 탐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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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무가사리와 미역은 일제강점기는 물론 해방후까지 연화도 주민들이 목숨줄이었다. 지금도 노인들은 해초를 뜯어 여행객들에게 팔고 있다. |
우럭양식을 시작하다
해방 후에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바다에서는 멸치가 대세였지만 주민들이 멸치어장에 나서지는 못했다. 일제의 멸치잡이 기술과 자본을 그대로 물려받은 통영사람들 몫이었다. 주민들은 여전히 우무가사리, 톳, 미역, 문어, 해삼을 채취하는 것이 생업이었다.
농사를 지을 땅이 넉넉했던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학비며 생활비는 객주들에게 해초를 주기로 하고 ‘고리채’를 끌어다 쓸 수밖에 없었다.
1960년대 상황이다. 당시 5.16 쿠데타로 들어선 군사정권이 단행한 고리채정리 내용을 보면 호당 1만환 정도 고리채가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 연화도를 국제낚시터로 개발해 일본 태공들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 도서개발촉진법에 의해 본격적인 도서정책이 추진되었지만 연화도는 욕지권에 묶여있는 탓에 ‘도서개발’ 혜택도 주변이었다.
경상남도 도서개발은 보통 욕지권과 한산권으로 구분한다. 가장 공평한 방법이라고 알려진 인구수에 따른 구분이란다. 어디 섬과 바다 가치를 주민들 수로 평가한단 말인가. 눈만 뜨면 해양주권을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연화도 포구는 자부포만은 못했지만 그 자체가 천연어항 구실을 하는 곳이다. 남해 고성 통영 거제 창원 선적들이 거센 폭풍우를 피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통영 외해에서 문어와 장어를 잡은 배들은 연화도에서 통영에서 온 활어 배에게 넘기고 조업을 다시 나가는 관문이었다. 이를 어민들은 ‘키로띠기’라고 한다. 저울로 달아서 도매보다 싼값으로 넘기는 것이다. 그래도 냉동보다는 활어로 팔아야 이문이 컸던 탓이다.
연화도에 지금처럼 우럭 가두리 양식이 시작된 것은 20여 년 전이다. 통영 안바다에 더 이상 가두리양식이 어렵게 되면서 밖으로 양식장이 진출을 하게 된 것이다. 내파성이 있는 양식자재들이 만들어지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가능하게 된 것이다. 연대도, 학림도, 곤리도 등 안섬에서 발달한 가두리 양식이 밀식과 어장오염 등으로 외해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통영바다의 안섬과 바깥섬 경계는 비진도다. 연화도나 욕지도는 먼 바다에 속하는 섬이다. 그런데도 연화도 북쪽 본촌과 동머리 앞 바다는 수온도 차지 않고 조류소통이 좋아 가두리 양식의 적지이다. 태풍만 피할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장소를 없을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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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럭 양식을 위해서 많은 사료가 필요하다. 정어리나 고등어 등을 얼려서 분쇄한 후 양식사료로 제공하고 있다. 어민들은 사료값이 비싸 우럭 양식도 옛날 같지 않다며 걱정이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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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 오염과 밀식 등으로 통영 안섬에서 가두리 양식은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대안으로 연화도가 20여년 전부터 가두리 양식 적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 |
염화도인, 어디에 있을까
섬에 가장 높은 봉우리가 연화봉이다. 연화봉에는 아미타불이 세워져 있다. 그 아래에는 사명대사가 정진했다는 토굴이 있고, 바다로 내려서면 보덕암이 자리를 잡았다. 조선의 억불정책이 죽도록 싫은 고승이 섬에 들어 암자를 짓고 정진해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 고승은 입적을 앞두고 제자에게 ‘수장해 달라’는 유지를 남겼다. 입적 후 스님의 뜻대로 수장을 하니 그 자리에서 커다란 연꽃이 피어올랐다. 주민들은 고승을 ‘염화도인’이라 불렀고, 섬은 연화도라 했다. 그 도인이 사명대사라는 설도 있다. 전하는 이야기일 뿐이지만 사실처럼 지명과 함께 섬은 불교성지가 되어 순례객들이 찾고 있다.
섬 동쪽으로 매물도, 서쪽으로 물미기 고향에 떠 있는 사량도와 추도, 남쪽으로 욕지도가 떠 있다. 그 외 비진도, 장사도, 가왕도, 소지도, 국도 등 통영 다도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전하는 이야기를 받아쓰자면 바다에 연꽃봉우리가 떠 있는 형국이다. 연화봉 정상 보덕암에서 보는 용머리는 연화도 풍경의 백미다. 파도와 바람과 세월이 바위를 깎아내 만들어낸 걸작품이다. 섬 여행객이 원하는 탁 트인 바다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 생각보다 적다. 있다고 해도 멋진 바다와 섬이 펼쳐지는 곳은 더욱 적다. 이 모든 것을 갖춘 곳 중에 하나가 연화도이며 연화봉이 그곳이다.
5층석탑과 전망대로 이어지는 연화도 섬길은 443m 출렁다리를 지나면서 마무리된다. 2011년 다리가 완공되면서 연화에서 동머리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이었다. 연화봉 정상에서 보았던 용머리를 출렁다리에서 보면서 섬산행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산행을 하지 않고 셔틀버스를 이용해 동머리까지 타고와서 출렁다리만 올라보고 가는 사람들도 꽤 많다. 그 동안 연화사를 중심으로 돌아보던 여행패턴이 이제 출렁다리가 생기면서 동머리까지 연결시켰다. 덕분인지 어장만 매진하던 마을주민들이 최근에는 펜션과 스쿠버 등 해양레저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제 동머리에서 연화마을에 이르는 3㎞ 남짓 되는 길이다. 이 길은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어 피로도가 더 크다. 버스는 없지만 셔틀버스(봉고차)를 이용할 수 있다. 출렁다리에서 연화마을까지 오가는 셔틀버스가 수시로 다니기 때문이다. 최근에 포장길 중간에 커피와 음료를 파는 미니카페도 생겼다. 돌아오는 길에 연화사와 연화분교장을 들려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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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봉과 동두마을을 잇는 출렁다리, 본촌마을과 연화봉만 찾던 여행객들의 발길이 출렁다리가 완공된 후 동두마을까지 이어지고 있다. 덕분에 동두마을에도 펜션 등 숙박시설과 해양레저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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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창에서 시작된 트레킹은 연화봉에서 정점을 찍는다. 연화봉에서 바라보는 용머리와 바다가 연화도 제일경이다. |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27년 동안 섬 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관광, 섬여행, 갯벌문화, 어촌사회, 지역문화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을 하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
문의처 :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포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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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삭제 <2011. 6. 30.>
6. 삭제 <2011.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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