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는 크게 서부의 보헤미아와 동부의 모라비아 지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체코 제2의 도시이자 모라비아의 수도인 브르노(Brno)는 인구는 약 45만 명 정도밖에 안 되는 소박한 도시이다. 브르노는 체코가 합스부르크 왕조의 지배하에 있을 때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의 길목을 지키던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
소박한 브르노 시가지. 언덕 위에 세워진 슈필베르크 성은 브르노 시가지의 구심점을 이룬다. |
브르노 역에서 시내 중심부로 가려면 번화가 마사리코바(Masarykova)를 통과하게 된다. 마사리코바는 ‘마사리크 거리’란 뜻이다. 체코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합스부르크 왕조의 지배에서 벗어나 슬로바키아와 함께 ‘체코슬로바키아’라는 국명으로 1918년 10월28일에 비로소 독립국이 되었는데 마사리크는 초대 대통령이었다.
마사리코바가 끝나는 곳에는 브르노의 심장 자유의 광장이 펼쳐진다. 길쭉한 부채꼴 모양의 이 광장에서 몇 블록 서쪽에는 숲이 우거진 푸른 언덕이 솟아있고 그 정상에 세워진 슈필베르크 성은 브르노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시가지를 내려보고 있다.
야나체크의 동상. 그는 스메타나, 드보르작에 이어 체코의 음악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이끌어 올렸다. |
또 자유의 광장에서 몇 블록 북쪽에는 야나체크 국립극장이 있다.
그 앞 광장 한쪽에는 레오슈 야나체크(1854~1928)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그는 스메타나와 드보르작에 이어 체코의 음악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이끌어 올린 모라비아 출신 음악가이다.
일본과 한국에서 한때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1Q84에 나와서 엄청난 인기를 끈 음악 <신포니에타> 작곡자가 바로 그이다.
신포니에타(Sinfonietta)는 이탈리아아어로 ‘작은 교향곡’이라는 뜻이다.
이 곡은 다섯 개의 짧은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연주시간은 약 30분 정도이다. 제1악장 팡파르는 원래 1926년 6월 26일에 프라하에서 열린 체코슬로바키아 전국체전 개막식용으로 작곡된 것이다. 그후 야나체크는 네 개의 곡을 추가해 이에 <신포니에타>라는 제목을 붙였다. 추가된 4개의 악장은 모두 다음과 같이 브르노의 명소가 제목이 된다.
<2악장: 성(城)>, <3악장: 왕비의 수도원>, <4악장: 성(城)으로 올라가는 길>, <5악장: 시청사> 그렇다면 <신포니에타>를 테마로 브르노 여행코스를 잡아 보는 것은 어떨까? 제2악장과 4악장에서 말하는 성은 다름 아닌 슈필베르크 성이다.
이 성이 처음 세워진 것은 13세기 전반. 그 후 이 성은 30년 전쟁 중이던 1645년에 신교도 스웨덴 군이 브르노를 3개월 동안 포위했을 때 브르노를 방어하는데 진가를 발휘했다. 스웨덴 군이 물러간 다음 이 성은 신교도 신자들을 가두는 감옥이 되었고 특히 1829년부터 한동안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감옥으로 손꼽혔다. 현재는 브르노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 토마스 수도원. 야나체크는 이곳에서 소년성가대원으로 있었다. |
제3악장의 제목은 우리말로 ‘여왕의 수도원’으로 번역하기 쉽겠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왕비의 수도원>이다. 이 수도원을 처음 세웠던 왕비는 폴란드 출신으로 체코 이름은 엘리슈카-레이츠카(1288~1335)이고 이 수도원의 현재 이름은 성 토마스 수도원이다. 이 곳은 브르노에서 한때 종교 뿐 아니라 지식세계의 중심이었다.
‘유전법칙의 아버지’ 게오르크 멘델(1822~1884)이 활동했던 곳도 바로 이 수도원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사제로 있으면서 29세 때 2년간 특별허가를 받아 빈 대학에서 자연과학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돌아온 다음 1856년에 완두의 유전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7년에 걸쳐 정확한 실험을 통해 유전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발견하게 됐다.
그런가하면 야나체크도 바로 이 수도원에서 음악적으로 성장했다.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던 그는 어릴 때 바로 이곳의 소년 성가대원으로 있으면서 음악을 정식으로 공부했던 것이다.
골목에서 본 브르노 구시청사의 탑. 입구문 장식의 끝 부분이 구부러져 있다. |
그런데 시청사탑 입구 위 장식을 자세히 살펴보면 뭔가 이상하다. 끝부분이 구부러져 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이것을 만든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안톤 필그람(1460~1516)이 시당국으로부터 돈을 제 때 받지 못하자 화가 나서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이유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야나체크는 말년에 <신포니에타>에 대해 브르노의 한 신문에 다음과 같이 기고했다.
‘1918년 10월 28일, 이 도시 위에 자유의 빛, 재탄생의 빛이 마치 마술처럼 나타났다. 승리를 알리는 요란한 트럼펫소리, 수도원의 성스러운 고요함, 푸른 언덕의 밤 그림자와 숨소리, 나의 도시 브르노의 발전과 위대함의 비전이 나의 <신포니에타>에서 자라났다.’
그러니까 <신포니에타>는 그가 평생을 살았던 도시 브르노에 대한 찬가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찬가 뒤에는 한 여인이 있었다. 나이 60이 넘어서야 비로소 유명해지기 시작했던 야나체크는 38살 연하의 결혼한 젊은 여인에게 반해 1928년 7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에게 700통이 넘는 편지를 일방적으로 보냈다.
그녀는 이 노음악가에게 창작 욕구를 강하게 자극해 노년의 마지막 순간까지 뛰어난 작품을 쓰도록 예술적 영감을 주었던 뮤즈였던 것이다. <신포니에타>는 바로 이 시기에 탄생한 작품이다.
◆ 정태남 건축사
이탈리아 건축사이며 범건축(BAUM architects)의 파트너이다.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 미술, 언어, 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로마역사의 길을 걷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이탈리아 도시기행>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