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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곁에 아무도 없다, 혼자면 혼이 살아난다

[김창엽의 과학으로 보는 문화] ‘혼자 문화’

2017.11.30 김창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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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바라보는 여성을 그린 그림. 홀로 있을 때는 창의성이 증진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예술가들이나 과학자들이 홀로 스튜디오나 실험실에서 일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는 분석이 있다. (제공=하이퍼리얼)
바다를 바라보는 여성을 그린 그림. 홀로 있을 때는 창의성이 증진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예술가들이나 과학자들이 홀로 스튜디오나 실험실에서 일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는 분석이 있다. (제공=하이퍼리얼)

“밥 먹고 난 다음에 갈게요. 케이크 자를 때 시간 맞춰 건너 갈 터이니, 그쪽 식사 끝나면 바로 전화주세요.” 50대 후반의 K씨는 최근 노모의 생신 때 저녁 식사를 가족들과 함께 하지 않았다. 그의 집에서 노모가 사는 곳까지는 차로 3분 거리에 불과했지만, 아내와 딸을 먼저 보냈고, 1시간쯤 뒤이어 혼자 노모의 집으로 갔다.

“매번 그러는 건 아니죠.  그러나 어떨 때는 밥을 혼자만 먹고 싶거든요. 그런 날은 일가친척으로 북적거리는 상황에서 수저를 들면 소화가 안되고 이상하게 여러모로 마음 또한 편치 않더라고요. 부모님이나 형제들 모두 저를 이해하기 때문에 식사 한끼쯤 같이 하지 않아도 흔쾌히 받아들입니다.”

저녁 8시 좀 넘어 부모님 댁을 방문한 그는 그날 밤 12시가 다돼 귀가했다. 졸음이 쏟아진 아내와 딸은 앞서 10시쯤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오랜만에 부모님 댁을 방문한 동생, 매제 등과 함께 자정이 다 될 때까지 세상 돌아가는 얘기 등을 하며 웃음 꽃을 피웠다.

최근 수년 사이 혼자 밥상, 술상 앞에 앉는 이른바 ‘혼밥족’, ‘혼술족’ 등에 대해 이런 저런 말들이 많다. 과거 같으면 보통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 했던 일들을 최근 들어서 혼자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문화라면 문화이고, 세태라면 세태라 할만한 이런 현상은 최소한 한동안은 지속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나 홀로’  부류가 과거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 예로 K씨 경우 성년을 전후한 나이, 즉 1970년대말~80년대초부터 종종 식사 등을 혼자 했다고 한다. 친구 혹은 식구들과 함께 식사하는 재미와 혼자 음식을 먹을 때 만족감 등이 전적으로 다른데,  그는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양자 중 하나를 택하곤 했다고 털어놨다.

한 여성이 홀로 하이킹을 하고 있다. 나 홀로 산책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걷는 것과는 또다른 만족감을 준다.(제공=케이케이엠디)
한 여성이 홀로 하이킹을 하고 있다. 나 홀로 산책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걷는 것과는 또다른 만족감을 준다.(제공=케이케이엠디)

여러 사람과 평소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고, 흔히들 ‘비사교적’이라고 한다. ‘비사교성’의 한 극단에는 ‘반사회성’이 자리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K씨는 스스로를 비사교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오히려 성격도 활달한 편이고, 친구도 아주 많은 편이어서 사교성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 자신은 사교적인 쪽에 가깝다는 것이다. 반사회성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사람은 대표적인 사회적 동물이다. 한자 인간(人間)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존재를 의미한다는 뜻풀이도 있다. 그러니 비사교적이라는 말에는, 왠지 부정적인 듯한 뉘앙스가 풍기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같은 부정적 인식은 자칫 오류로 귀착될 가능성도 적다고 할 수 없다. 사람만큼 능동적으로 ‘나 홀로’를 즐기는 동물도 찾아보기 힘든 탓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어울림에서 즐거움을 찾는가 하면, ‘고독’을 즐길 줄도 아는 입체적, 다면적인 존재이다. 최근 TV 등에서 이른바 ‘자연인’ 프로그램이 적잖은 인기를 모으고 있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깊은 산골이나 외진 시골에 둥지를 튼 세칭 ‘자연인’들 가운데는, 홀로여서 만족한다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다.

어울려야 할 때 다른 사람과 함께 하고, 혼자만 있고 싶을 땐 나 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 것도 자유자재로 그 같은 여건을 그때 그때 만들 수만 있다면야, 더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산골에서 혼자 삶을 꾸리는 자연인들이나, 복잡한 일상을 살아야 하는 도시인들이나 십중팔구 어느 한쪽인가는 희생해야 한다. 직장인이나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나 홀로 시간을 마련하기도, 오지의 자연인이 어느 순간 주변에 친지나 동료가 득시글거리는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제공=한국관광공사)
(제공=한국관광공사)

물론 혼술이나 혼밥 등 ‘나 홀로’ 행태가 자발적이냐, 비자발적이냐에 따른 차이는 적지 않다. 직장 동료나 친구와 같이 식사하고 싶은데 여러모로 여건이 되지 않을 때 하는 혼밥은 내키지 않는 일이다. 반면 스스로 원해서 느긋하게 식탁에 혼자 앉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여유롭게 하는 식사는 즐거움과 홀가분함, 단출함 등의 만족감을 줄 수 있다.

최근 수년 사이 뚜렷한 ‘나 홀로’ 문화 혹은 세태는 파편화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일상이란 시각에서 보면 대체로 부정적이다.  그러나 일정 정도는 자연스런 흐름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점심을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혼자 하고 싶은 날, 부서원들과 어쩔 수 없이 함께 나가야 한다면 그날 식사의 효용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딱 어울리는 비유는 아니지만, 한국이나 일본이나 과거 ‘단체 여행’이 크게 유행했던 시절이 있다.  우르르 함께 몰려다니는 여행은 물론 그 나름의 맛과 편리함 등이 있다. 헌데 최근 들어 국내 해외 할 것 없이 나 홀로 방식의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 났다. 도시를 중심으로 한 한국인의 그간 일상이 여행으로 치자면 ‘단체 방식’과 유사한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인간이 ‘나 홀로’를 즐길 줄 아는 동물이라는 점은 직관적으로는 물론이지만 이런저런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최근 미국 뉴욕주립대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예컨대 창의성의 경우 나 홀로인 시간에 훨씬 더 빛을 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들이나 음악 작곡가, 또는 과학자들이 스튜디오나 실험실에서 홀로 작업하는 것은 한마디로 창의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이다.

확립된 이론은 아니지만, 성인 이전의 시기, 즉 유아기나 청소년기에는 사교적인 것이 심신 발달에 보다 도움이 된다. 초등학생이나 중고등학생들은 가능한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고, 또 이런 저런 활동에 참여하는 게 그렇지 않은 것보다 훨씬 이득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발달적’ 관점일 뿐, 홀로 산책하고 홀로 여행하고 홀로 식사할 때 누릴 수 있는 특유의 효용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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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시쳇말로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교적인 시간도 갖고, 또 홀로 지낼 수 있는 공간이나 시간도 때론 확보해야 한다. 사교성은 일정 부분 천성이지만, 후천적 노력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길러질 수 있다. 혼밥과 혼술이 유행 아닌 유행을 하는 요즈음, 이런 세태를 꼭 부정적으로만 볼 일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동양과 서양으로 거칠게 구분하면, 양 사회는 그 나름의 속성들이 있다. 아무래도 동양사회는 단체주의가 도드라지고, 서양사회는 개인주의가 눈에 더 띈다. 단체주의나 개인주의는 서로의 장단점이 대비된다. 현대 사회는 여러 면에서 다양성을 동력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단체주의와 개인주의가 적절한 조화를 이룰 때 건강한 문화가 싹틀 수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나 홀로’ 행태에 대한 관대한 시각은 한국 사회의 다양성 증진에 아마도 도움을 줄 것이다. 또 개인 차원에서는 비사교적인 사람들이 숨쉴 공간을 늘리는 효과도 기대된다. 부끄러움을 잘 타거나 성격상 대인관계에서 불편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에게 단체주의적 풍토는 사회생활이나 사교생활을 더 어렵게 하는 경향이 있다.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먹는 게 스스럼이 없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라면 사교성이 다소 결여된 사람들로서는 일상의 부담이 그만큼 줄어들 수도 있다. 우리 사회가 ‘나 홀로’ 행태를 포용할 수 있다면 돈 들이지 않고, 사회 전체의 효용을 키우는 효과를 불러올 것 같다. 혼술 혼밥이 일과성 세태나 반짝 문화로 치부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창엽

◆ 김창엽 자유기고가

중앙일보에서 과학기자로, 미주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장 등으로 일했다. 국내 기자로는 최초로 1995~1996년 미국 MIT의 ‘나이트 사이언스 펠로우’로 선발됐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문화, 체육, 사회 등 제반 분야를 과학이라는 눈으로 바라보길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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