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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답지 않은’ 감정을 표현해 힙합의 금기 깨뜨리다

[한국힙합의 결정적 노래들 ⑫] 키비 ‘소년을 위로해줘’

2019.03.08 작성자 김봉현 힙합저널리스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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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비(Kebee)의 ‘소년을 위로해줘’가 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대학생이었다.

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대학생으로서 자유와 청춘을 누리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소년을 위로해줘’를 가리켜 그 시절 나의 감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노래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 시절 ‘소년을 위로해줘’는 곧 ‘봉현을 위로해줘’였다. ‘소년’과 ‘봉현’은 라임도 얼추 맞는다. 운명(?)이다.

키비. (사진=브랜뉴뮤직 제공,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키비(Kebee)의 콘서트 현장. (사진=브랜뉴뮤직 제공,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물론 10대와 20대 시절의 난 유약하거나 지나치게 감성적인 소년은 아니었다. 하지만 흔히 통용되는 ‘남자다움’이란 그 때부터 지금까지 늘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또 입고 싶지 않은 옷인 것만은 분명하다.

어릴 때부터 난 셋 이상 몰려다니는 걸 싫어했고 친구들이랑 목욕탕도 가지 않았다. 말에 괜히 욕을 섞지도 않았다. 누군가의 형 노릇하는 것도 체질에 안 맞기 때문에 지금도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존댓말을 통해 형성된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남자들이 쓸데없이 센 척 하거나 형인 척 하지 않고, 패거리 안에 속했다는 사실로부터 위안과 과시를 이끌어내지만 않아도, 세상은 지금보다 한결 더 나아질 것이라고.

때문에 ‘소년을 위로해줘’는 마치 내 이야기를 듣는 듯한 노래였다.

이 노래에는 ‘남자다움’에 대항하는 한 ‘소년’이 등장한다. 특히 후렴은 한동안 늘 외우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내 삶에서도 종종 벌어지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키비가 내 마음을 베꼈나?

내 친구들은 나에게 박력을 요구하고 / 친밀감의 표시라며 인사로 욕을 하고 / 그 모습을 보는 나도 어느 새 / 머릿속에 머쓱해지는 느낌만이 머물더라도

키비의 ‘소년을 위로해줘’를 돌아보는 나의 관점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한국힙합’의 관점이 있다. ‘소년을 위로해줘’는 한국힙합이 다루는 주제의 폭을 확장한 노래였다.

당시를 기준으로 한다면 ‘소년을 위로해줘’가 담고 있던 가사 내용은 그전까지의 한국힙합 음악에서는 잘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특히 힙합 음악에서 ‘소년’이나 ‘위로’ 같은 단어를 듣는 것이 새로웠다.

두 번째 관점은 첫 번째 관점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힙합의 근본적인 ‘마초성’에 관한 이야기다.

‘소년을 위로해줘’는 힙합의 ‘남자다워야 한다는 블문율’에 정면으로 반한 노래였다. 지금 돌아보면 과도한 남성성이 지배하는 힙합의 세계에서 ‘소년을 위로해줘’는 돌연변이나 미운오리새끼 같은 노래였던 것 같다.

어쩌면 한국힙합 역사에 키비의 ‘소년을 위로해줘’가 지니는 의의는 미국힙합 역사에 드레이크의 ‘Best I Ever Had’가 지니는 의의와 비슷한 것은 아닐까. ‘남자답지 않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 힙합의 금기를 깨뜨렸다는 점에서.

키비(왼쪽)는 래퍼 마이노스와 ‘이루펀트(Eluphant)’로도 활동하고 있다. 사진은 2016년 ‘K-POP 해외쇼케이스 참가뮤지션’에 참석한 이루펀트(Eluphant).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키비(왼쪽)는 래퍼 마이노스와 ‘이루펀트(Eluphant)’로도 활동하고 있다. 사진은 2016년 ‘K-POP 해외쇼케이스 참가뮤지션’에 참석한 이루펀트.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마지막 관점은 힙합의 세계를 벗어나, 그냥 ‘인간 세계’에 관한 것이다.

힙합을 떠나 ‘소년을 위로해줘’는 존엄을 지닌 개개인에게 큰 울림을 안겼다. 더 정확히 말하면, 존엄을 지녀야 하지만 부당한 이유로 존엄을 온전하게 지니고 있지 못한 이들에게 어깨동무를 했다고 할까.

위로해 달라고 하더니, 오히려 위로를 해준 셈이다. 실제로 한 페이스북 친구가 내게 해준 말은 꽤나 인상적이다.

“‘&’ 이렇게 생긴 남자도 있고 ‘@’ 이렇게 생긴 남자도 있는데 남자는 ‘!’ 이렇게 생겨야 한다는, 특히 힙합이라면 ‘!!!’ 이렇게 생겨야 한다는 ‘맨 박스(남자다워야 한다는 강박)’를 깨부순 역사적이고 선구적인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LGBT 성소수자에게도 큰 위로가 될 수 있는 노래였어요”

이런 힘 덕분일까. 소설가 은희경은 ‘소년을 위로해줘’를 듣고 한참을 울었다며 동명의 소설을 출간하기도 했다.

2010년 장편소설 <소년을 위로해줘>를 출간한 은희경 작가의 기자간담회.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0년 장편소설 <소년을 위로해줘>를 출간한 은희경 작가의 기자간담회.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소년을 위로해줘’는 힙합을 넘어 모두를 위로한 노래였다. ‘봉현’을 위로했던 것도 분명하다.

김봉현

◆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작가

대중음악, 특히 힙합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영화제를 만들고 가끔 방송에 나간다. 시인 및 래퍼, 시와 랩을 잇는 프로젝트 ‘포에틱저스티스’로도 활동하고 있다. 랩은 하지 않는다. 주요 저서로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한국힙합 에볼루션>, <힙합-우리 시대의 클래식>,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나를 찾아가는 힙합 수업> 등이 있고, 역서로는 <힙합의 시학>, <제이 지 스토리>, <더 에미넴 북>, <더 스트리트 북>, <더 랩: 힙합의 시대> 등이 있다. murdamuz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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