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바람이 선선해져 서울 사당역 쪽에서 관악산에 올랐다. 등산로로 접어들려면 주택가를 지나야 하는데 길가에서 우연히 작은 안내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서정주의 집’이라고 써있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작은 안내판이다. 미당 서정주의 생가는 전북 고창에 있고 그곳에 시문학관이 세워져 있는 걸로 아는데 미당 선생이 이 근처에 살았나 보다.
하산길에 지도를 검색해서 찾아갔다. 사당초등학교 옆 빌라촌(관악구 남현동)에 아담한 2층 한옥 한 채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는데 바로 그 가옥이었다. 대문에는 ‘서울미래유산’이라는 인장 형식의 붉은 단청색 현판이 붙어있었다. 현관은 열려있었는데 관리인이 출타 중인지 아무도 없었다. 방문객마저 한 명도 없어서 혼자 조용히 둘러봤다. 내부는 정갈하고 조촐했다. 미당의 대표 시들과 생전 사진들이 걸려있고 시집, 친필 원고, 애용하던 모자 가방 지팡이 등 사물과 책상, 책장, 직접 그린 집설계도면 등이 전시돼 있었다. 서울시가 매입하고 관리하는 곳이어서 사람은 살지 않는다. 미당은 스스로 봉산산방(蓬蒜山房, 쑥과 마늘의 집)이라고 이름 지은 이 집에서 1970년부터 돌아가신 해인 2000년까지 30년간 부인 방옥숙 여사와 함께 살았다. 그해 10월 방 여사가 먼저 가자 큰 충격을 받고 쓰려져 두 달 만인 성탄 이브에 85세로 세상을 떠났다.
‘서울미래유산’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잘 알려지지 않았다. 관심이 생겨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봤다.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중에서 미래 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자산을 보존하고 관리한다는 취지로 2013년부터 지정되기 시작했다. 비슷한 취지의 ‘문화유산국민신탁’이라는 것도 있다. 서울미래유산은 문화예술(108개), 정치역사, 시민생활, 산업노동, 도시관리 5개 분야에 461건이 지정됐다. 종로구가 90개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중구가 84개다. 서울 시민이나 전문가, 자치구 등이 제안할 수 있고 매년 심사를 거쳐 지정된다.
그런데 이중 인물과 직접 관련된 가옥은 불과 22건뿐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 김성수, 문익환, 함석헌, 이상, 박경리, 변종하(화가), 서세옥(화가), 윤중식(화가), 김태길(학자), 윤극영(작곡가), 전뢰진(조각가), 장용학(소설가), 남정현(소설가), 이관(독립운동가), 손재형(서예가, 석파랑)이 살거나 작업한 집이다. 인사동의 카페 ‘귀천’(천상병 시인)이나 전태일 분신장소(청계천) 등도 해당될 수는 있겠다. 미당이나 김성수, 윤극영 가옥은 친일행적과 관련해 지금 논란에 휩싸여있다.
무언가 크게 부족하고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 가옥에서 태어나거나 자라거나 창작을 하거나 죽은 유명인사가 겨우 이 정도뿐일까. 무슨 일을 한 사람인지 잘 알려지지 않은 이도 포함돼 있다. 물론 대단한 인물이 살았다 해도 지금 그 집에 후손이 아닌 다른 사람이 거주하고 있고 그 사람이 거부하면 설사 미래유산으로 지정돼도 개방할 수도 없고 동판을 부착할 수도 없지만, 인물과 가옥과 관련한 미래유산의 면면과 운영이 왠지 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영국 런던에는 ‘블루 플라크(Blue Plague)’라는 게 있다. 파란색으로 칠해진 작은 명판에 짧은 인물 소개와 함께 ‘OO가 여기에 살았다’라고 적혀있다. 서양인이라 해서 더 가치가 있는 존재는 아니지만 아무튼 세계문명사에 나오는 사람들이다. 조지 오웰, 존 레논, 찰스 디킨스, 버지니아 울프, 뉴턴, 지미 핸드릭스, 처칠, 바이런, 예이츠, 랭보, 고흐, 마르크스, 히치콕, 애거서 크리스티, 프레디 머큐리…. 880여 가옥에 명패가 붙어있고 그들을 흠모하는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그림과 음악을 하는 한국인 부부가 런던에 살면서 쓴 책 ‘블루 플라크, 스물세 번의 노크’라는 책(2015년)을 보면 그 문화예술적 향기가 온전히 전해진다.
블루 플라크는 생후 100년 혹은 사후 20년이 지난 유명 인사를 대상으로 잉글리시 헤리티지(English Heritage)가 주관하는 위원회가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한다. 그 역사가 150년이나 됐다.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시민 참여를 통한 문화유산의 관리 보존에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알려지면서 세계 여러 도시가 벤치마킹했다.
우리나라든 외국이든 예술가나 역사 속 인물의 체취와 족적이 느껴지는 곳에 가게 되면 시공을 초월한 기쁨이 있다. 우연히 발견하면 마치 여행의 보너스를 얻은 것처럼 기쁨은 더 크다. 그곳이 인류의 걸작이나 대사건의 산실이었다면 그야말로 세렌디피티(serendipity, 뜻밖에 만난 행운)가 아닐까. 마치 그 주인공과 내가 전생에 어떤 연(緣)이라도 있었을까, 하며 억지로라도 접점을 찾아보려 하거나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파리에서 신문사 특파원으로 일할 때, 서울에서 손님이 오면 생제르맹데프레 거리의 명소인 ‘카페 드 플로르’나 ‘레 되 마고’에 커피를 마시러 가곤 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카뮈, 헤밍웨이, 아폴리네르, 랭보, 피카소 같은 당대의 문화예술인들이 앉아서 문학과 예술을 논하고 글을 쓰던 곳이다. 사르트르의 단골 좌석에 앉아 미천하나마 삶과 죽음과 예술과 철학을 사색해 보는 건 사치스러울 정도로 뿌듯한 정서적 만족감을 주었다. 장소 자체가 예술이요, 철학이요, 인류의 역사다. 그런 도시가 너무 부러웠다.
사람이 도시를 만든다. 도시는 결국 사람이다. 프랑스 아를은 고흐가 1년여 짧게 기거하며 그린 두 장의 그림 ‘밤의 카페 테라스’와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때문에 사람들이 찾아간다. 모네가 ‘수련’을 그린 지베르니, 밀레의 ‘만종’ 무대인 바르비종, 비틀스의 고향 영국 리버풀, 루이 암스트롱의 미국 뉴올리언스….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우리나라도 수원 나혜석 거리, 대구 김광석 거리 등 지자체들이 만든 명소들이 더러 있긴 하다. 꼭 서울처럼 유·무형의 미래유산을 지정하지 않더라도 생가를 보존하고 그 인물을 모티프로 삼은 축제나 이벤트를 하는 지자체도 많다. 하지만 왠지 전시용이나 상업적 목적, 지자체장의 치적 자랑 같은 인상이 드는 게 많다. 수원 나혜석 거리는 먹자골목에 다름 아니다.
인물이 품고 있는 시대적 의미와 정신적 가치, 그 스토리텔링, 개방과 전시와 홍보 방식, 그것을 보존 활용하는 애정과 공동체의식은 우리 사회가 아직 미흡하다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수백 년 전부터 안정된 외국 도시와 급속히 개발된 서울은 여건이 다르긴 하다. 하지만 서울은 긴 역사, 찬란한 문화유산, 모든 면에서 오늘날의 한국을 만든 주역들이 살던 곳이다.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서울에 사람 냄새 나는 문화유산이 너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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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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