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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되지 않는 이야기, 움베르토 디

[영화 A to Z, 시네마를 관통하는 26개 키워드] ⓤUmberto D. (움베르토 디)

2020.10.13 이지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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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네오리얼리즘(neorealism) 영화사조가 유행한다. 애초 ‘문학의 진실주의’에서 출발한 이 사조는 이후 완전히 영화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는다.

네오리얼리즘의 핵심은 말 그대로 ‘사실’에 대한 아이디어에 있다. 대개의 학자들은 네오리얼리즘의 시작을 루치노 비스콘티의 <강박관념>(1942)이라고 말하는데, 당시 신문을 들춰보면 <강박관념>이 “거리로 내려가야만 한다”는 슬로건을 드러내며 시민들을 움직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이탈리아 파시즘 정권 하에서 주류 영화들이 선전용으로 제작되거나 로맨스 장르로 점철된 것과 다른 양상이었다.

◈ 데 시카와 자바티니의 심플한 구성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은 한 마디로 ‘참여’ 모델을 지향한다. 비토리오 데 시카의 이 시기 영화들도 마찬가지다. 네오리얼리즘 특유의 기본적 ‘직선 구조 이야기’(혹은 빈약한 이야기)를 선호하면서, 동시에 ‘열린 결말’을 통해 관객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든다.

<구두닦이>(1946), <자전거 도둑>(1948), <밀라노의 기적>(1951), <움베르토 디>(1952) 등 데 시카의 주요 영화들은 모두 시나리오 작가 ‘체사레 자바티니’와의 공동 작업으로 탄생했다.

영화학자 마리오 알리카타와 주세페 데 산티스에 의하면, 작가로서 자바티니의 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남자의 인생을 90분 분량의 영화에 담아내는 것”이었다고 한다.

<자전거 도둑> 등 다른 영화들도 마찬가지지만, <움베르토 디>는 특히 자바티니의 단독 극작이었다는 점에서 주인공의 상황이 더 특별해 보인다.

평론가 앙드레 바쟁이 “나는 인간이 된다고 하는 것이 무언가를 자각하도록 하는데 이토록 깊이 들어간 영화는 흔치 않다고 주저 없이 단언하겠다”고 평한 영화 <움베르토 디>. (포스터 출처=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http://www.kmdb.or.kr)
평론가 앙드레 바쟁이 “나는 인간이 된다고 하는 것이 무언가를 자각하도록 하는데 이토록 깊이 들어간 영화는 흔치 않다고 주저 없이 단언하겠다”고 평한 영화 <움베르토 디>. (포스터 출처=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http://www.kmdb.or.kr)

영화의 이야기는 거리의 ‘연금시위’ 과정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30년간 공직에 몸담았던 주인공 ‘움베르토 도메니코 페라리’는 월세조차 낼 수 없는 국가의 연급 시스템에 항의한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시위 도중 애지중지하던 회중시계를 팔아 월세를 마련하려 애쓰지만 그조차 쉽지 않다.

출구 없는 답답한 상황은 영화 말미까지 이어진다. 가난하고 혼자 살며, 사회적으로 할 일 없는 늙은이에게 현실은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의 배경일 따름이다.

그 결과 주인공은 스스로 죽는 것을 선택한다. 숙명처럼 불행한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인물의 현대적인 비극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움베르토 디>는 마냥 우울한 영화가 아니다. 아마도 영화를 끝까지 본 관객이라면 이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마지막 장면, 강아지 ‘플라이크’와 함께 뛰는 주인공의 뒷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은 우려하는 마음과 안도하는 마음을 동시에 가지게 된다. 불행과 행복을 결정할 수 없는 상태에 다다른다. 감독의 언급처럼 ‘중단되지 않는 이야기’의 견본을 이 마지막 장면은 보여주는 것 같다.

◈ 현대영화의 시초

<움베르토 디>에는 주인공이 아닌, 또 다른 주요인물 한 명이 더 등장한다. 가끔 움베르토의 말동무가 되는 어린 가정부 ‘마리아’이다.

마리아는 주인공의 자택을 배경으로 자주 나타난다. 영화학자들은 그녀가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 유력한 조력자임에도 불구하고, 실상 움베르토에게 주는 도움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주인공 움베르토와 마찬가지로, 데 시카는 마리아의 역할을 ‘관찰할 수 있는 인물’로만 활용한다.

카메라는 특별한 이유 없이 몇 분간 마리아가 부엌에서 움직이는 ‘자질구레한 가사 행위’를 비춘다. 고전 영화문법이 ‘이유 없는 행동을 보여주지 않는 것’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군더더기 디테일들이 쌓여서 영화 <움베르토 디>의 전반적인 관찰 범위는 이상하리만치 무기력한 상황까지 나아간다. 계속해서 눈앞에 보이는 일말의 행위들에 대해, 관객들이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은 실상 거의 없다.

캐릭터가 행동하는 이유를 드러나지 않기에, 액션과 리액션을 연결하는 리얼리즘의 기본구조는 서서히 파괴된다. 인과성을 기반으로 완성된 리얼리즘 드라마의 플롯은 결국 해체되고 만다.

비토리오 데 시카는 <움베르토 디>를 자신의 영화들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주인공의 절망을 흐릿한 유머로 물들인 뒤, 현실 속 관객들의 마음과 만나게 한 그의 전략은 보기 좋게 성공한 듯이 보인다.

이 시기의 영화에 대해 철학자 질 들뢰즈는 네오리얼리즘이야말로 현대영화의 시초라고 말한다.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가 더 이상 현실이나 형식, 배경의 수준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관객들의 생각이 인식이나 행동으로 연장될 때, 진정한 네오리얼리즘 드라마는 완성된다. 현실을 발전시키고 재현하고 해석하도록 만드는, 새로운 예술로서의 표본을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은 보여준다.

이지현

◆ 이지현 영화평론가

2008년 '씨네21 영화평론상'으로 등단했다. 씨네21, 한국영상자료원, 네이버 영화사전, 한겨레신문 등에 영화 관련 글을 썼고, 대학에서 영화학 강사로 일했다. 2014년에 다큐멘터리 <프랑스인 김명실>을 감독했으며, 현재 독립영화 <세상의 아침>을 작업 중이다. 13inoch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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