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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과의 이별, 그 정한(情恨)을 노래하다

[노래, 시를 만나다] ②대중가요의 큰 축을 이룬 소월의 노래들-1

2021.08.30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문학과 음악은 서로를 연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들의 꿈은 아마도 동심일체가 되는 것이다. 

시와 노래는 본디 한몸이었다. 시와 노래의 원형질은 운율이다. 중세유럽의 음유시인들은 시에 리듬을 붙여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했다. 신라의 향가는 시이자 노래였다. 고려부터 조선까지는 가사문학(歌辭文學)과 시조가, 개화기에는 창가(唱歌)와 시가(詩歌)가 있었다. 고대 이래 시는 노래였다. 

현대에 들어와 많은 시인들의 시가 노래와 한몸이 됐다. 가사도 쓰고 작곡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싱어송라이터가 없던 시절에는 특히 적지 않은 시가 노랫말의 자양분이 됐다.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소월의 사진. 왼쪽은 남강 이승훈이 세운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 재학 시절 모습이다. 여기서 평생의 시 스승 김억을 만난다.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소월의 사진. 왼쪽은 남강 이승훈이 세운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 재학 시절 모습이다. 여기서 평생의 시 스승 김억을 만난다.

소월(1902~1934)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고 애송하는 불멸의 서정시인 김소월은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한과 슬픔, 님과의 이별, 그 정한과 그리움, 민중의 정서와 삼라만상의 생성과 소멸을 시로 치환했다. 

그는 100년 전인 1920년대 5, 6년 남짓한 짧은 창작생활에서 154편의 주옥같은 시를 남겼다. 20대 초반에 쓰인 그의 시들은 근대 시로 넘어오기 시작한 시기에 쓰인, 어찌 보면 시조와 시의 중간쯤 되는 형태다. 126편이 실린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은 그의 나이 스물셋인 1925년에 나왔다. 그의 시들은 정형성, 짧은 길이, 반복적 운율과 리듬감으로 노래로 만들기가 좋았고 향토적 시어와 민요풍의 정감으로 대중의 심금을 울리기에 적합했다. 수많은 작곡가와 가수들이 소월의 시에 노래를 헌정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소월 연구의 전문가인 구자룡 시인의 조사에 따르면 대중가요로 작곡돼 불린 소월의 시는 59편이다. 그의 시 10편 중 4편이 노랫말이 된 것이다. 시인들 중 단연 1위다. 장르도 팝, 발라드, 재즈, 모던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부른 가수만 해도 원곡과 리메이크를 포함해 32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주로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에 가장 많이 노래로 만들어졌다. 소월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죽어서 한국 대중가요의 큰 축을 이룬 것이다.

한국 최고의 시인 소월의 삶은 진실로 불행했다. 일제 하의 좌절과 사업 실패(동아일보 지국 운영)에서 온 비관, 실연, 자기파괴의 광기가 드리운 일본 유학파 인텔리 소월은 나이 서른두 살, 한 해가 저무는 1934년 12월 24일 아침 8시 아편 과다복용으로 인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전날 밤늦게까지 아내와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가 죽은 지 5일 후, 동아일보는 이렇게 부고를 전했다.

‘소월은 1927년 유일한 지기였던 나도향의 부고를 받고 충격이 컸으며, 2년 뒤 또 다른 지인  고월 이장휘의 자살 소식 이후로 술에 취한 날이 많았다. 그 역시 다량의 아편을 먹고 그들의 뒤를 따랐으니, 요절한 시인들의 나이가 너무도 아깝다.’  

일제 치하는 천재 청년작가의 요절시대였다. 소월과 같은 나이였던 ‘뽕’ ‘물레방아’의 나도향은 24세(1902~1926), ‘봄봄’ ‘동백꽃’의 김유정은 29세(1908~1937), 이상은 27세(1910~1937), 윤동주는 28세(1917~1945)에 생을 마감했다. 병으로 죽거나 옥사하거나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소월은 말년에 술에 취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날마다 개여울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그 무엇을 생각했을까. 떠나간 내 님, 이루지 못한 사랑에 눈물을 흘렸을까. 그는 세상 모르고 살았을까. 아니다. 그러기엔 세상과 인생을 이미 너무 알아버렸다.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만수산을 나서서/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도/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고락에 겨운 입술로는/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오히려 세상모르고 살았으면!/돌아서면 무심타는 말이/그 무슨 뜻인 줄을 알았으랴/제석산 붙는 불은/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의/무덤에 풀이라도 태웠으면’ (시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전문)

그룹사운드 활주로 시절 배철수가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를 부르고 있다. 이 노래로 1978년 연포해변에서 열린 제1회 동양방송 주최 ‘해변 가요제’에서 인기상을 받았다. (유튜브 캡처)
그룹사운드 활주로 시절 배철수가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를 부르고 있다. 이 노래로 1978년 연포해변에서 열린 제1회 동양방송 주최 ‘해변 가요제’에서 인기상을 받았다. (유튜브 캡처)

배철수가 이끌던 한국항공대학교 캠퍼스 록 밴드 활주로는 1978년 8월 연포해변에서 열린 제1회 동양방송 주최 제1회 ‘해변 가요제’에서 이 시를 노래로 지어 인기상을 수상했다. 작곡은 지금 CF감독으로 활약하는 지덕엽이 했다. 지덕엽은 두 달 후 열린 제2회 MBC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받은 ‘탈춤’도 작곡한 빼어난 기타리스트였다.  

소월의 짧은 삶은 마치 휘도는 ‘개여울’ 같다. 개여울은 ‘개울의 여울목’이다. 여울은 바닥이 얕거나 구부러지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이다. 개여울에 앉은 소월을 생각한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그런 약속이 있었겠지요/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가도 아주 가지는/않노라심은/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시 ‘개여울’ 부분)

노래가 된 소월 시 중에서 아마도 이 노래가 멜로디나 가사가 가장 아름답고 슬픈, 대중에 가장 많이 각인된 노래 중 하나일 것이다. 노래 좀 부른다는 가수나 가수 지망생들은 경연에서 이 노래를 많이 불렀다. 32명의 가수가 녹음했다고 한다.

1972년 정미조의 ‘개여울’이 실린 음반. 이희목이 작곡한 이 노래의 오리지널은 기실 정미조가 아니다. 그보다 6년 앞서 김정희란 가수가 불렀으나 잘 알려지지 못했고 다시 정미조에게 리메이크시킨 것이 크게 히트했다.
1972년 정미조의 ‘개여울’이 실린 음반. 이희목이 작곡한 이 노래의 오리지널은 기실 정미조가 아니다. 그보다 6년 앞서 김정희란 가수가 불렀으나 잘 알려지지 못했고 다시 정미조에게 리메이크시킨 것이 크게 히트했다.

이 노래의 오리지널은 정미조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은 그녀보다 6년 앞서 김정희란 가수가 불렀다. 1966년 작곡가 이희목은 KBS 전속 신인 가수 김정희에게 이 노래를 주었으나 별로 알려지지 못했다. 아쉬움이 컸던 이희목은 1972년 이화여대 서양학과를 졸업한 정미조의 데뷔 앨범에 이 노래를 리메이크시키며 비로소 큰 인기를 얻었고 정미조란 대형가수의 탄생을 알렸다. 

심수봉, 최백호, 우순실, 왁스, 아이유 등 적잖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했고 2006년 저음 가수 적우의 버전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도쿄 국제가요제에서 수상하며 음악 인생의 정점에 선 정미조는 1979년 돌연 파리로 13년간 미술 유학을 떠나고 귀국 후 수원여대 교수로 재직하다 정년을 맞은 2016년 정규앨범 ‘37년’을 발매하며 다시 이 노래를 부르고 가요계에 컴백했다.

소월의 시 중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개여울의 노래’란 시가 있다. 1968년에 신세기레코드에서 발매한 ‘가요로 듣는 소월시집’에 노래로 등장했다. ‘웨딩드레스’로 유명한 한상일이 불렀다. 이 앨범에는 소월 시 노래 중 가장 유명한 ‘부모’(서영은 작곡, 유주용 노래)도 실려있다. 

‘개여울’ 이 애틋하다면 ‘개여울의 노래’는 처절하다. 

‘그대가 바람으로 생겨났으면/달 돋는 개여울의 빈들 속에서/내 옷의 앞자락을 불기나 하지/우리가 굼뱅이로 태어났으면/비 오는 저녁 깜깜한 냉기슭의/미욱한 꿈이나 꾸어를 보지/만일에 그대가 바다 난곳의/벼랑의 돌로나 생겨났으면/둘이 안고 굴러 떨어나지지/만일의 나의 몸이 불귀신이면/그대 가슴속을 밤도와 태워/둘이 함께 재 되어 쓰러지지’ (전문)

소월의 시를 관통하는 핵심은 ‘님’이다.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나 ‘개여울’도 님을 그리워한다. 그의 시에 사랑의 환희나 격정은 없다. 님과의 이별과 사랑의 부재에서 오는 상실감과 체념, 정한, 그리움, 재회의 갈망이다. 그 ‘님’은 뭐로 해석하든 좋다. 

이별과 그리움을 읊은 소월의 시는 특히 마야 노래로 많이 알려진 ‘진달래꽃(최초 버전은 1958년 박재란이 손석우 작곡으로 불렀는데 음원은 실종됐다)부터 ‘못잊어’(장은숙, 패티김의 ‘못잊어’는 소월 시가 아니다), ‘실버들’(희자매), ‘먼후일’(최진희),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스트포인트) 등까지 상당히 많이 노래가 됐다. 여기, 안 잊히는 구절들을 써본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진달래꽃),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시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먼후일),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못잊어),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한갓되이 실버들 바람에 늙고 이 내 몸은 시름에 혼자 여위네’(실버들) 

못다 이룬 사랑은 ‘초혼’으로 마지막 불꽃이 되어 타오른다. 그의 시 ‘초혼’만큼 절절한 이별을 읊은 시가 어디 있을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75년 이은하가 처음으로 불렀다(장윤정의 ‘초혼’은 소월 시가 아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부분)

소월은 오산학교 다닐 때 세 살 많은 동네 누나 ‘오순’을 사랑했다. 첫사랑이었다. 하지만 집안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하고 열네 살 때 다른 처녀와 혼인했다. 소월은 그녀를 한순간도 잊지 못했다. 오순은 다른 남자와 결혼한 3년 후 의처증이 심한 남편한테 맞아죽었다. ‘초혼’은 소월이 오순의 장례식에 참석한 후 헌사한 시로 알려져 있다. 그 후 소월은 창작에 뜻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2002년 발매한 윤상의 4집에는 음악적으로 출중한 평가를 받은 노래가 실렸다. 정훈희가 부른 ‘소월에게 묻기를’이다. 윤상은 이 곡을 만들 때부터 정훈희를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노랫말은 ‘진달래꽃’과 ‘초혼’ 일부 구절을 섞어가며 ‘그래서 이 사랑을 정녕 어쩌라는 말이냐’며 소월에게 따지고 묻는다. 2021년 ‘팬텀싱어 시즌1’에서 백인태-유슬기가 듀엣으로 불러 많이 알려졌다. 

‘산산히 부서진 세월들이 어디로 나를 데려 가는지/가르쳐주오, 왜 당신은 저 꽃잎을 밟으려 하는지/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죽어도 죽어도 죽어도 할 수 없네/허튼 눈물을 감출 수 없네/대답해 주오, 시인이여/정녕 이것이 마지막인지…말없이 말없이 말없이 어쩌라는 말인가요’(부분)

한기봉

◆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과 신문윤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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