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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그림, 두 명의 ‘구스타프(Gustav)’에 대해

[클래식에 빠지다] 구스타프 말러와 구스타프 클림트

2021.10.08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 세기말 빈

19세기말 비엔나는 시대의 변화와는 동떨어진 고답적이고 보수적인 분위기가 도시를 지배하고 있었다. 

1866년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공국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그 여파로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으로 재탄생 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헝가리가 대 타협을 이룬 1867년 이후 자유주의가 팽창하고 있었으며 이는 귀족주의와 국제주의에 맞서는 게르만 민족주의를 촉발시켰다.

하지만 그들에게 되돌아온 건 슬라브계 민족주의자의 자치권을 확립해달라는 요구였고 이들의 대립은 발칸반도를 세계1차대전의 화약고로 만들어 놓았다.

당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12개가 넘는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었고,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가는 인구가 많은 나라이자 강대국이었다. 또한 오스트리아의 사회는 자유주의 안에서 질서와 진보라는 시대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대혁명을 통해 귀족 계급을 몰아낸 프랑스의 부르주아와 중상주의를 통해 귀족의 권위를 대체한 영국 부르주아와는 다르게 오스트리아의 부르주아들은 귀족계급에 동화되고 싶어하는 모순성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귀족정치를 없애버리지 못했고 귀족들에게 완전히 녹아 들어가지도 못했으며, 독점적인 권력을 가지지 못한 탓에 국외자 같은 존재였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등장은 유대인과 이민자들의 인구증가와도 연관성이 있는데, 보헤미아계의 이민자 출신이자 후손인 구스타프 말러와 클림트 또한 성공한 예술가이자 부르주아였다. 

◆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언젠가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

말러는 부인인 알마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19세기 당시 말러는 지휘자로는 명성을 얻고 있었지만 작곡가로는 인지도가 별로 없었다.

부르크너에게 대위법을 배우고 그의 교향곡에 깊은 감명을 받은 말러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지루하고 긴 시간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그의 3번 교향곡은 영화 한편과 맞먹는 100분정도의 러닝타임을 갖고 있다.

반면 당대 라이벌이었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오히려 작곡가로 젊을 때부터 인기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BBC 설문조사에서 현재 세계적으로 활동중인 지휘자 151명이 뽑은 최고의 교향곡 순위 10위안에 그의 교향곡은 3곡이나 들어가있다.

또한 매년 공연장에서 자주 연주되는 교향곡중 하나가 말러 심포니인 것을 보면 그의 예언은 적중한 것이다.

말러는 당시 오스트리아였지만 지금은 체코가 된 보헤미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4개월만에 부모는 좀 더 큰 도시인 모라비아의 이글라우로 이사했는데 15세에 비엔나 음악원으로 유학 떠나기 전까지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말러는 빈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화성학, 작곡을 배웠는데 이후 빈 대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안톤 브루크너와 만나게 되고 역사와 철학에도 빠져들었다. 아마 이 시기가 말러의 음악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쳐 그의 음악을 심오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열정적인 작곡가로서의 삶에 전념하고 싶었던 말러였지만 인생의 경로는 지휘자로서의 커리어가 성공적으로 풀려나갔는데, 독일 함부르크 오페라단을 거쳐 37세에 결국 최고의 영예인 비엔나 오페라단의 음악감독이 된 것이다.

당시 음악감독직은 황실의 지위였기 때문에 법으로 유대인은 할 수 없었고, 때문에 말러는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나는 삼중으로 고향이 없다”, “오스트리아 안에서는 보헤미아인으로, 독일인 중에서는 오스트리아인으로, 세계 안에서는 유대인으로서. 어디에서도 이방인이고 환영 받지 못한다”

그가 느꼈을 외로움과 자괴감은 음악적으로 승화되었겠지만 시대의 혼돈과 모순성 또한 나타내주는 반증이기도 했다. 또한 유대인을 적대시했던 바그너의 사상과 음악을 숭배하다시피 하며 자주 연주한 말러 또한 한 개인의 아이러니함을 보여주고 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시내거리에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서명이 적힌 표지석이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시내거리에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서명이 적힌 표지석이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화가로서 나를 알고 싶다면 내 그림을 주의 깊게 살펴보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클림트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보헤미아의 이민자 출신의 7형제중 둘째로 태어난 클림트는 어린 시절 유복하지 못한 생활로 일찍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금 세공사이자 조각가인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재능이 있었던 클림트는 14살에 빈 응용미술학교에서 모자이크와 이집트의 부조 등 다양한 장식기법을 익히며 자신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는 천장화 제작들의 일을 하며 학비를 조달했고 21살에 역시 재능 넘치는 자신의 동생 에른스트와 친구 마츠와 함께 <쿤스틀러 콤파니>라는 회사를 차려 본격적으로 장식화가로서 활동을 해나갔다.

성공적인 사업과 더불어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그림은 시의회 의뢰를 받은 “부르크 극장객석의 풍경”이다. 극장 철거 전 역사적 사실을 남긴 작품으로 황제의 애인과 작곡가 브람스 등 유명인사들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의 섬세하고 뛰어난 능력을 볼 수 있는 고전주의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이후 새로운 창작에 대한열망이 있었던 클림트는 전통적인 형식을 거부하는 아르누보 사상을 접하고 공예를 회화에 접목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열게 된다.

금 세공사인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금박을 얇게 펴서 장식에 이용하는 독창적인 방식을 회화에 적용하게 되는데 이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다.

이후 빈 분리파(Wien Secession)을 결성하며 고답적이고 판에 박힌 사상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고 회화, 건축, 공예 등의 상호 교류를 통하여 인간의 내면적인 의미를 미술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고자 했다.

◆ 베토벤 프리즈(Beethoven Frieze)

말러와 클림트는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막역한 사이였다. 1902년 14회는 베토벤을 추모하는 전시회에는 그의 합창교향곡을 악장 별로 표현한 “베토벤 프리즈”가 공개되었다.

교향곡의 환희의 송가부분을 34m의 길이로 표현한 클림트의 프레스코 벽화가 같이 전시되었는데, 벽화에서 기사로 나오는 사람의 얼굴은 말러를 그린 것이다. 아마 클림트는 말러를 시대를 구원해줄 영웅으로 생각하였던 듯하다.

그리고 답례였는지는 모르지만 몇 명의 빈 필하모닉 단원들과 말러는 전시회가 열리는 장소에서 환희의 송가를 연주했다고 한다.

말러와 클림트는 서로 유사한 면이 있다. 이 둘은 음악가로서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선장인 지휘자와 시대저항정신을 이끌어야 했던 빈 분리파의 수장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리더십을 발휘했다.

또한 베토벤이 합창을 교향곡에 적용하였던 것처럼 말러는 자신의 교향곡에 합창을 적용해서 후기낭만주의 음악에 새로운 독자적 시도를 했고, 클림트도 독창적이며 고전주의 화풍에 장식공예적인 요소를 결합하는 시도를 했다.

이는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자신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문구처럼 두 명의 구스타브가 자신의 세계를 깨뜨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움과 개혁을 추구하는 빈 분리파의 전시회에 사후100년이 지난 베토벤의 등장은 그들이 지닌 시대적 한계성도 명확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지난 2009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렸던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베토벤 프리즈’를 감상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난 2009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렸던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베토벤 프리즈’를 감상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영광스러운 손님”

오스트리아의 휴양지인 아터호수는 물 빛깔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곳에서 클림트는 호수의 풍경을 그렸고 말러는 교향곡을 작곡했다. 이곳 클림트 박물관을 방문하면 말러가 그곳에서 작곡했던 교향곡3번이 흐르고 있다.

한편 예술로 지상주의를 꿈꿨던 두 명의 구스타프는 사랑과 간절함을 통해 자신들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다.

말러가 정치적인 이유로 비엔나악단의 감독에서 내려오고 뉴욕 필을 지휘하기 위해 떠나던 날 기차역에는 클림트가 나와있었다. 지금은 뉴욕 필의 위상이 세계적이지만 당시에는 음악적으로 변방이었다. “모든 것이 끝났어” 영웅의 퇴장을 쓸쓸하게 지켜보던 클림트가 한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음악과 그림은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마니아 층과 역사적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그들의 예술은 줄탁동시가 되어 말러의 음악은 쇤베르크와 베베른으로, 클림트의 회화는 오스카 코코슈카와 에곤실레에게 이어지며 시대의 종말과 다음세대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모더니즘의 다리가 되었다.

구스타프(Gustav)는 슬라브조어 어휘로 “영광스러운 손님”이라는 뜻이다.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며 뛰어넘으려고 노력했던 그들의 정신은 다음세대에게 선물을 들고 온 영광스런 손님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제 빈 분리파의 표어는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말이 되었다.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 추천음반

세상은 말러 음악의 미니아들을 “말러리안”이라고, 부르고 명망 있는 지휘자들은 말러의 교향곡 전곡연주에 도전적으로 나서고 있다.

말러리안들 사이에 많은 이견들이 있겠으나 개인적인 취향과 부담스럽지 않은 현대적 레코딩을 고르라면 번스타인의 음반과 아바도를 추천하겠다. 

아울러 하이팅크나 텐슈테드 그리고 인발과 샤이 모두 각각의 해석이 훌륭하다. 텐슈테드가 NDR오케스트라와 연주한 2번교향곡 “부활”도 꼭 들어보시길 권한다.

김상균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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