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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혁명’과 음악

[클래식에 빠지다] 쇼스타코비치와 혁명

2021.10.29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 제정 러시아

1894년 알렉산드르 3세가 세상을 떠나고 로마노프가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가 즉위한다. 전제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20세기초, 차르가 지배하는 러시아는 이전부터 여러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무소르그스키와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초상화로도 유명한 국민 화가 ”일리야 레핀”의 그림 <볼가강의 인부들>은 당시 사회의 모습을 사실적이고 통렬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림 속 노동자들은 머리와 몸에 끈을 묶어 배를 육지와 가까운 곳으로 이동시키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습 뒤로 멀리 증기선이 연기를 내뿜고 있다.

실업자의 증가와 노동자들의 저임금, 장시간의 노동으로 인한 배고픔은 사회적 불만으로 이어졌고 국민들을 거리로 뛰쳐 나오게 만들었다. 또한 러일전쟁으로 자존심에 상처 난 러시아의 국민들은 1차 혁명의 도화선이 되어 “피의 일요일”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급료를 올려달라며 일요일에 성당을 가는 대신 평화롭게 국가를 부르며 페트로그라드(지금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황궁 앞에서 시위하던 농민들을 향해 황제의 군대는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많은 사상자를 낸 “피의 일요일” 사건은 괴승 라스푸틴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황제일가와 일반 국민들 사이의 인식차이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리야 레핀의 <볼가강의 인부들> 그림. (사진=기고자 제공)
일리야 레핀의 <볼가강의 인부들> 그림. (사진=기고자 제공)

◆ 드미트리(Dmitri)

“피의 일요일” 사건이 일어난 지난 1년 후 차이코프스키와 러시아 5인조의 대를 이어가는 음악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가 페트로그라드에서 태어난다.

어머니로부터 기초적인 피아노 교육을 받은 그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와 작곡에 재능을 보였다. 청년시절 음악원에서 체계적인 공부한 그의 피아노실력은 비록 입상은 못했지만, 1회 쇼팽 콩쿠르에서 특별상을 받을 정도로 뛰어났고 작곡실력도 일취월장하였다.

20세기초 격동의 러시아 시기에 태어난 드미트리는 어린 시절부터 연이어 터지는 사회적 사건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영화음악이나 재즈에도 관심이 있었으나 대부분의 작품들은 혁명과 전쟁, 평화라는 주제로 가득 채워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초창기를 제외하면 구스타프 말러의 낭만주의와 쇤베르크의 12음렬기법, 그리고 무조주의에 영향을 받아 대중에게 독특하면서도 쉽게 다가가는 자신만의 언어를 창조했다.

“이데올로기가 없는 음악은 있을 수 없다”라고 말한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 인물과 사상 그리고 시대정신을 담아 내려 노력하였는데, 특히 “혁명”은 그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다.

그의 교향곡 2번은 초창기 작품으로 실험적이며 급진적인 느낌을 주고 있으며 볼세비키의 10월혁명을 표현하고 있고, 시간이 흘러 교향곡 12번 역시 같은 주제를 담고 있다. 그의 교향곡 중 가장 유명하며 자주 연주되는 5번역시 부제가 “혁명”이라고 불린다.

◆ 10월 혁명에 바침

쇼스타코비치가 11살되던 해인 1917년, 어린 그는 2월에 300년간 지속되어온 로마노프왕가가 무너지고, 10월에는 다시 볼세비키의 공산주의가 혁명에 성공하는 것을 본다.

유년시절 세계1차대전과 2월, 10월 혁명을 모두 경험한 그가 이데올로기적 철학적 사고를 작품에 투영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의 교향곡2번의 부제는 “10월혁명에 바침”이다.

교향곡1번으로 젊고 이제 막 명성을 쌓기 시작한 그에게 소련의 음악국 선전부는 10월 혁명 10주년기념으로 심포니를 위촉한다. 이 곡은 쇼스타코비치가 작곡한 교향곡 중 가장 길이가 짧은 곡으로, 연주시간이 20분내외이며 전작과는 다르게 상당히 전위적이라 볼 수 있다.

선전부는 베지멘스키가 써놓은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시를 작품에 넣어주길 원했는데, 쇼스타코비치는 그의 시를 싫어했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상당히 고심했다고 한다.

결국 합창을 연주 뒷부분에 집어넣었고, 혁명의 상징이 될 수 있는 공장의 사이렌 역시 선전부의 제안 받아서 곡의 극적인 부분으로 활용했다.

이 곡은 베이스드럼의 여린 트레몰로로 시작해서 바이올린솔로와 여러 관악기들이 무질서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이어서 13개의 성부가 서로 각기 연주하다가 금관악기의 팡파르로 첫 번째 클라이맥스를 표현하고 있다.

마치 힘없는 대중들이 각각의 목소리를 내다가 하나의 생각으로 합쳐서 혁명의 불씨가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는듯하다.

첫 번째 클라이맥스 이후 비올라와 클라리넷 그리고 바이올린의 연주로 잠시 조용히고 차분한 분위기가 이어지는데 이 부분은 쇼스타코비치가 사과를 훔치다가 죽임을 당하는 소년을 보고 연출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후반부는 사이렌소리와 함께 합창으로 마무리 하고 있는데, 새로운 작곡기법으로 역사적 사실을 확실히 묘사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쇼스타코비치는 이 작품에 대하여 교향곡3번과 함께 젊은 날의 실수라며 만족스럽지 않은 작품으로 회고하고 있다.

이후 같은 주제로 교향곡12번을 작곡했지만 그가 버티다가 결국 공산당에 가입한 시점의 작품이라 어용예술이라는 평가와 함께 다른 교향곡의 위상만큼은 갖지 못했다.

러시아 근현대 대표하는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사진=저작권자(c) TASS /Vladimir Savostyanov/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러시아 근현대 대표하는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사진=저작권자(c) TASS /Vladimir Savostyanov/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1936~1937

레닌의 사망 이후 트로츠키와의 권력투쟁에서 성공한 스탈린은 겉으로는 온화해 보였지만 본색이 드러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1936년, 그는 공포정치로 악명 높은 대 숙청을 시작했는데, 인민의 적으로 낙인 찍힌 쇼스타코비치의 지인들과 친척들도 희생당했다. 쇼스타코비치 그 자신도 비밀경찰로부터 취조를 당하며 많은 모욕과 비판을 당하던 시기였는데 4번교향곡의 초연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1937년 5번교향곡을 4개월만에 완성했는데, 레닌그라드필이 연주한 초연의 엄청난 성공으로 그는 다시 재기할 수 있었다. 가장 인기 있는 교향곡 중 하나인 5번은 4악장의 전통적 형식과 베토벤 풍의 고통을 넘어서 환희로 나아가는 느낌이 당의 입장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1악장는 어둡고 우울하게 시작하고 2악장은 솔로악기들의 연주로 춤추는듯하다. 3악장은 라르고답게 느리면서 뭔가 서정적이며 애절한 느낌을 주며 클라이맥스를 고조시키고 있다. 마지막 4악장은 베토벤심포니의 마지막 악장처럼 고난을 극복한 승리를 노래하는듯하다.

소련당국은 이 곡을 자신들의 선전용으로 많이 이용했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5번에 대하여 함구하며 해석에 대하여 모든 것은 자신의 음악에 있다고 말했다.

그의 사후 회고록이 발간이 되었는데, 이 곡에서 느껴지는 해방감과 환희는 '소련 정권으로부터 강제된 것'이라는 내용으로 체재를 찬양하는 의도는 처음부터 아예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반대편의 시각도 있지만 작품 속 자신의 저항정신과 의도를 숨겼던 그였기에 상당히 신빙성 있는 사실이라 추측한다.

◆ B와 D사이

한때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듣는 것이 금기 시 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의 음악을 공산주의 선전용 음악으로 치부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이 흘러서 지금 그의 작품은 전혀 다른 맥락에서 해석되고 연주되고 있다.

그의 음악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천부적 음악성에 기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중 하나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순간의 선택이 크게 실패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가로서 포기할 수 없었던 자의식과 현실과의 괴리 사이에서 그는 소련의 어용예술가가 되는 것을 경계했고, 어느 정도 정부에도 협조하며 자신의 권리를 지켜나갔다.

또한 당시 유행하던 전위적이고 아방가르드적인 음악만을 추구하지 않고 대중과의 음악적 소통에도 신경을 썼기 때문에 숙청의 칼날에서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역사에서 만약은 존재하지 않지만 군주제가 무너져가던 20세기초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2세에게는 수많은 선택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가 낡은 가치관에서 벗어나 국민들과 소통을 했더라면, 또 사촌인 영국의 조지5세처럼 시대적 상황과 왕정의 역할을 조언을 해주는 스탐포덤(lord stamfordham)경 같은 대신이 곁에 있었더라면 지금의 러시아는 어땠을까?

실존주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라고. 물론 B와D사이에 A(Answer, 정답)은 없다.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과 차르의 비극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 추천음반

러시아를 대표하는 현존하는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에브 (V.Gergiev)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2번을 명곡인 4번을 있게 만든 의미 있는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키릴 콘드라신(Kirll Kondrashin) 의 연주를 추천한다.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은 레닌그라드 필과 므라빈스키(Evgeny Mravinsky)연주로 들으면 후회가 없다. 5번 역시 그들의 연주를 추천하고 솔티(G.Solti)와 베를린 필의 연주도 훌륭하다.

김상균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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